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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⑭ 유방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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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12일 10:00 프린트하기

네 줄 요약
1.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유방은 강력한 성적 욕망의 대상이다.
2. 유방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담론의 상당 부분은 성적인 것이다.
3. 그러나 유방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이성의 유혹이라는 주장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4. 본질적으로 여성의 유방은 남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기를 위한 것이다.

 


여성의 유방은 아주 미스터리한 신체기관입니다. 포유류의 암컷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장기이며, 주 기능은 새끼에게 젖을 주는 것이죠. 그 뿐 입니다. 하지만 인류에게 유방은 아주 복잡한 진화적, 문화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방’이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상당히 경박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가슴’이라는 용어로 돌려서 표현하죠. 도대체 인간의 유방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수유 기관, 그 이상의 의미


2010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유방확대술을 받은 여성은 대략 500만명입니다. 20명 중 한 명은 유방에 보형물을 넣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방 확대술의 인기는 점점 높아지는데, 2007년 한 해에만 무려 40만명의 여성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유방암 등으로 인한 재건 수술입니다만(29%), 대부분은 단지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입니다.


유방 수술에 들어간 비용만 매년 20억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통가와 소말리아, 사모아의 국내총생산(GDP)를 합친 액수보다 더 많습니다. 매년 여성의 가슴에 들어가는 보형물의 양을 모두 합치면, 올림픽 경기용 수영장을 가득 채운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방 축소술도 매년 10만건이 넘게 시행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중 약 2할이 남성입니다. 유방확대술을 받는 남성은 거의 없겠지만, 축소술을 받는 남성이 매년 미국에서만 2만명에 달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남성의 유방축소술은 미용 목적의 수술이 아니라, 재건(!) 수술로 분류됩니다. 유방확대술을 받은 여성의 10%는 다시 보형물 제거술을 받기도 합니다. 도대체 인류는 왜 이렇게 유방을 못살게 구는 것일까요? 
 

유방확대술에 사용되는 보형물. 일부 유방성형술은 유방암 등으로 인한 변형을 복원하려는 재건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방수술은 원하는 크기와 모양을 만들기 위한 미용목적의 수술이다. - FDA 제공
유방확대술에 사용되는 보형물. 일부 유방성형술은 유방암 등으로 인한 변형을 복원하려는 재건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방수술은 원하는 크기와 모양을 만들기 위한 미용목적의 수술이다. - FDA 제공

매력의 신호?


인간의 유방은 성적 신호와 관련되어 점점 커지게 되었다는 오래된 주장이 있습니다. 유방은 가슴에 달린 엉덩이라는 것인데, 인류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도발적 주장입니다. 그의 책이 너무 많이 팔리다 보니,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성의 시선이 여성의 엉덩이보다는 상반신에 더 많이 머물게 되었다. 따라서 여성의 유방은 점점 위로 올라가서 가슴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모양도 보다 엉덩이를 닮은 모양이 되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입니다. 심지어 여성의 둥근 얼굴이나 도톰한 이마, 둥근 어깨 등도 엉덩이를 흉내 낸 것이라고 주장하죠.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유방이 두 개 있는 것보다, 여섯 개쯤 있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유방의 크기나 모양, 대칭성 등이 좋은 유전자를 보증한다는 이른바 ‘정직한 신호’ 가설이 있습니다. 수유 여부와 무관하게 항상 상당한 크기를 유지하는 이유도, 가임력을 보증하는 신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크기가 작거나 비대칭인 유방이 신체적 결함과 관련된다는 실질적 증거는 부족합니다.


여성의 유방이 성적 매력을 나타내는 지표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오로지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 현재의 위치와 크기로 진화했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주장입니다. 

 

밀로의 비너스.. 여성의 유방은 성적 매력을 과시하기 위한 기관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유방이 성적 신호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주된 기능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 Sadat Shami 제공
밀로의 비너스.. 여성의 유방은 성적 매력을 과시하기 위한 기관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유방이 성적 신호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주된 기능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 Sadat Shami 제공

뇌의 진화와 유방


인류 진화사의 가장 중요한 두 사건을 꼽는다면, 바로 직립보행과 대뇌화입니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은 엄청나게 큰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적응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직립보행을 하려면 골반이 작아야 합니다. 그런데 큰 뇌를 가진 아기를 낳으려면, 골반이 커야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빠듯한 수준까지 임신을 유지하다가 출산합니다. 조금만 엄마 배 안에서 미적거리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제왕절개가 시행되기 전에는 수많은 엄마와 아기들이 이런 이유로 죽었죠).


그래서 인간의 모든 신생아는 사실상 ‘미숙아’에 가깝습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보통 3-4년간 수유를 합니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수유기간이 아주 깁니다. 심지어 7년 이상 수유를 하는 문화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아기는 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머니를 붙잡고 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잡고 있을 ‘털’도 사라졌습니다. 어머니는 수년 이상 자신의 팔로 아기를 안고 다녀야만 합니다. 팔로 안고 있는 아기의 얼굴은 가슴에 위치하게 됩니다. 유방도 그곳에 있는 편이 좋겠죠.


아기는 어머니의 유방을 빨고, 비비고, 만지며 성장합니다. 어머니의 숨소리와 목소리를 듣고, 폭신한 감촉을 느끼며, 고소한 냄새를 맡죠. 굳이 수유 중이 아니더라도, 어머니의 품에 찰싹 안겨 있는 자세는 마치 태반 속 태아를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인간의 임신 기간을 총 18개월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첫 9개월은 모체 내 수태, 출산 이후 9개월은 모체 외 수태 기간이라는 것이죠. 
   

유방의 본연적 기능은 모유 수유다. 특히 긴 양육기간을 가지게 된 인류에서 모유 수유는 단지 영양분의 공급 외에도 모자 교감 등을 통한 정서 발달의 역할이 있다. - Anton Nossik 제공
유방의 본연적 기능은 모유 수유다. 특히 긴 양육기간을 가지게 된 인류에서 모유 수유는 단지 영양분의 공급 외에도 모자 교감 등을 통한 정서 발달의 역할이 있다. - Anton Nossik 제공

유방을 아기에게


이런 점을 볼 때 유방의 진화가 단지 성 선택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여성의 유방이 현재와 같은 성적 심볼로 등장한 것은 그래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물론 여성의 유방은 성적 매력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날 공공장소에서 유방을 드러내면, 사회적 비난은 물론 처벌도 받습니다. 모두들 돋보이는 유방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금기의 대상입니다. 서구 사회에서 유방은 이미 ‘성기’의 일부입니다.


현대 여성에게 수유와 양육을 위한 기능은 상당 부분 인공 유방, 즉 젖병과 요람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유 여부는 전적으로 어머니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과연 어머니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지는 의문입니다. 최근 모 분유회사는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을 보장하지 않아 사회적 비난을 받았죠. 분유를 만들기 위해서 아기에게 수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여성의 유방이 이 정도로 강력한 성적 충동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그냥 노출하고 다니죠. 프로이트는 성적 대상이 변질되거나, 성적 목표가 바뀐 경우를 페티시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의 유방에 대한 성적 집착을 그 예로 들었죠. 서구 사회에서는 가장 강력한 성적 상징 중 하나는 단연 유방입니다.. 혹시 지난 백 여년간 만연하게 된 모유 대체식, 그리고 모자 애착의 결핍으로 인해서, 현대인의 마음에 유방에 대한 과도한 선망과 허기가 자리하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아른헴 지역의 아보리진 여성. 수렵채집사회의 여성들은 흔히 유방을 드러내고 다닌다. 물론 전통 사회에서도 유방은 성적 상징의 기능이 있지만, 현대 서구 사회처럼 ‘과도’하지는 않다. - National Museum of Australia 제공
아이를 안고 있는 아른헴 지역의 아보리진 여성. 수렵채집사회의 여성들은 흔히 유방을 드러내고 다닌다. 물론 전통 사회에서도 유방은 성적 상징의 기능이 있지만, 현대 서구 사회처럼 ‘과도’하지는 않다. - National Museum of Australia 제공

에필로그


수유 여부는 전적으로 여성의 권리입니다. 자유로운 의지, 혹은 의학적 이유로 수유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수유를 막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장애물이 없어야 합니다. 수많은 편견과 어려움 속에서, 종종 사회적 경력의 단절을 감수하면서도 아기를 꼭 품에 안고 돌보는 어머니들을 지지합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도리가 없어, 타인의 손에 아기를 맡기고 일터로 향해야 하는 어머니들도 같은 마음으로 지지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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