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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⑮ 인간은 왜 ‘수다’를 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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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19일 10:00 프린트하기

네 줄 요약
1. 잡담과 수다는 사회적 결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수다를 떨며 인류의 대뇌화와 언어의 진화가 일어났다는 주장이 있다.
3. 그러나 사회적 관계의 양적 증가가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은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4. 가십과 수다는 진화의 추동력이기보다는 유용한 부산물일 가능성이 있다.

 


동네 커피숍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서로 웃고 떠들며 속닥거립니다. 물론 대화의 주된 내용은 보통 영양가 없는 잡담이죠. 혼자 있을 때도, 사실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개의 단톡방을 가득 메운 재미있는, 하지만 알고 보면 ‘그저그런’ 이야기들. 그러나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이러한 잡담 본능을 이용해 성장한 회사죠.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수다’를 떨며 사는 것일까요?

 


사회적 결속과 잡담


원시인이 등장하는 싸구려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대충 걸친 가죽 옷과 부시시한 머리칼을 한 원시인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돌아다닙니다. ‘크어어억’ 같은 식의 괴상한 소리를 내며 대화합니다. 대화라기 보다는 고함이나 감탄사에 가깝죠. 거친 옷차림과 자세, 언어들은 문명 사회에 접어들면서 점점 세련되게 바뀌었다는 선입관을 반영한 것이죠. 그리고 인류의 진화를 추동한 원동력은 바로 ‘도구’의 사용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아주 흥미로운 주장을 발표합니다. 90년대 초반, 그는 인류의 진화가 도구의 사용이 아니라, 언어의 발달을 통해서 일어났다고 발표합니다. 언어의 원래 기능은 그리 고상한 것이 아니라, 단지 ‘수다떨기’에 가깝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언덕 너머에 맛 좋은 과일이 있고, 손도끼의 날은 이렇게 다듬는다’는 종류의 대화가 아니라, ‘A랑 B가 같이 잤대. 근데 B는 C가 좋아하거든. C가 불쌍하지만, 뭐 C도 D랑 잔 적이 있으니까….’라는 식의 대화가 언어의 기원이라는 것이죠. 좀 실망스럽죠?


하지만 수다떨기는 사회적 결속에 아주 효과적입니다. 기술적 정보는 종종 대상을 가리지 않고 전달됩니다. 예를 들면 ‘학교 수업’이죠. 하지만 사회적 정보는 ‘끼리끼리’만 공유됩니다. 이러한 정보의 편차는 집단 생활을 하던 인류의 생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던바는 대학 구내 식당에서 오가는 대화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학문적인 이야기는 고작 20%에 불과했죠. 나머지는 죄다 수다였습니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수다와 잡담이 인류의 대뇌화를 추동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상당한 시간을 ‘잡담’과 ‘수다’에 사용하는데, 이는 사회적 결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qwerty_gauri 제공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수다와 잡담이 인류의 대뇌화를 추동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상당한 시간을 ‘잡담’과 ‘수다’에 사용하는데, 이는 사회적 결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qwerty_gauri 제공

언어의 기원, 수다


유인원들은 털고르기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털고르기를 하는 유인원 두 마리는 서로 사랑하는 암컷과 수컷이 아닙니다. 상당수는 동성 간에 일어나며, 특히 같은 파벌 내에서 털고르기를 훨씬 많이 하죠. 서로 털을 고르며, 친소 관계가 구분되며 점점 공고한 결속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런데 집단이 어느 정도 이상 커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많은 상대와 털고르기를 하다 보면, 정작 먹이를 구할 시간이 없어집니다. 털고르기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의 상한선은 약 20%입니다 (개코원숭이가 제일 높은데, 19%죠). 인류는 다른 영장류보다 더 큰 집단을 이루며 삽니다. 20%의 시간으로는 충분한 세력을 만들만큼 털 고르기를 하기 어렵죠. 게다가 더 중요한 이유! 인류는 털이 별로 없습니다.

 
던바는 이 시점에서 인류가 언어를 발명했다고 주장합니다. 평균 54마리로 구성된 침팬지에 비해서, 2.7배나 큰 집단(평균 148명)을 유지하려면, 하루종일 털만 고르고 다녀야 합니다. 불가능하죠. 언어는 털고르기보다 평균 3배 정도 효과적입니다. 수다는 보통 4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거든요. 그러고보니 커피숍에서 가장 흔한 테이블은 4인용 테이블이네요.

 

털 고르기를 하는 침팬지. 인간의 언어는 털 고르기의 세련된 형태라는 가설을 이른바 사회적 뇌 가설이라고 한다. - Dsg-photo 제공
털 고르기를 하는 침팬지. 인간의 언어는 털 고르기의 세련된 형태라는 가설을 이른바 사회적 뇌 가설이라고 한다. - Dsg-photo 제공

던바의 무리수


던바의 주장은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회적 관계를 많이 맺는 사람이 보다 진화한 사람이다’, ‘적절한 친구의 숫자는 150명이다’, ‘잡담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라는 이상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이용되었죠. 그러나 그의 주장은 허점이 많습니다. 일단 두뇌 크기와 (언어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신피질 크기는 비례하지 않으며, 집단의 크기와 신피질 크기가 비례한다는 증거는 더욱 없고, 털 고르기 시간과 집단 크기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근거가 부족합니다. 이 세 가지 전제가 모두 성립해야만 던바의 가설이 들어맞게 됩니다.


언어는 털 고르기보다 아주 복잡합니다. 단지 가십을 나누기 위해서, 고도로 복잡한 문법적 구조와 발화를 위한 후두의 구조 변화, 전두엽과 측두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언어 중추의 진화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곤란합니다. 특히 인간 언어의 구조는 아주 정교한데, 이는 사회적 관계보다는 물리적 현상을 기술하는데 더 적합합니다.


평균 네 명이서 나누는 수다가 털 고르기보다 세 배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애매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진짜 핵심적인 가십은 반드시 ‘일대일’ 관계에서만 일어납니다. 주로 네 명이서 수다를 떨기 때문에 4인용 테이블이 많은 것이 아니라, 4인용 테이블이 많아서 그저 네 명이 대화하는 일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죠. 
   

던바의 주장은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나, 정말 수다와 무리짓기를 통해서 인류가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 Ariel Kanterewicz 제공
던바의 주장은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나, 정말 수다와 무리짓기를 통해서 인류가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 Ariel Kanterewicz 제공

수다는 단지 수다일 뿐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혹은 정치인이나 연예인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를 떠들며 행복감을 느낀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다와 잡담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무데나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은 경박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평가됩니다. 수다를 떠는 것이 정말 사회적 결속에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수다가 언어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론입니다.


물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광범위한 의사 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전략적 대화를 나누고, 여러 상대와 협력하며, 갈등을 조정하는 힘은 강력한 적응적 기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수다의 양과 빈도, 말동무의 숫자를 늘리는 식으로 달성되지 않습니다.


언어의 기원이 털고르기라는 던바의 주장은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진짜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은 잡담은 그저 ‘아무말 대잔치’일 뿐이죠. 아무렇게나 떠들고 다니는 수다쟁이가 더 훌륭한 사회적 평판을 얻고 집단을 결속시킨다는 주장은, 일상의 경험칙에도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철학자 토마스 칼라일은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란 내적인 힘을 통해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계를 통한 진화라는 마키아벨리적 뇌 가설은, 인간성의 바깥쪽 측면만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 P. Krämer 제공
철학자 토마스 칼라일은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진정한 영웅이란 내적인 힘을 통해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관계를 통한 진화라는 마키아벨리적 뇌 가설은, 인간성의 바깥쪽 측면만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 P. Krämer 제공

에필로그


수다도 잘 떨지 못하고, 자기 무리를 잘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왠지 무리에서 소외된 것 같고, ‘왕따’라도 된 것은 아닌지 불안합니다. 수천명의 페이스북 친구를 자랑하는 친구가 부럽습니다. 아무리 시시한 이야기를 올려도, 수백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죠. 그에 비해 나의 페이스북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벼운 결속은 가볍게 깨집니다. 적절한 친구의 숫자가 150명 혹은 300명이라는 식의 이야기에 우울해 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친구는 평생 한 명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팔로워와 페친의 숫자를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수다떨기와 무리짓기를 잘하지 못하는 당신.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 곁에 있는 친구와 더 진한 우정을 나누십시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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