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英 엄격한 법 규제에도 인간배아 연구 활발한 이유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08월 09일 18:00 프린트하기

한미 공동 연구진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한 후 이틀이 지난 인간배아(수정란). 교정된 수정란은 착상 직전의 배반포’단계까지 체외에서 정상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 네이처 제공
한미 공동 연구진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한 후 이틀이 지난 인간배아(수정란). 교정된 수정란은 착상 직전의 배반포’단계까지 체외에서 정상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 네이처 제공

최근 한미 공동 연구진이 미국에서 인간배아(수정란)에서 유전성 희귀질환인 비후성 심근증을 일으키는 변이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3일자에 게재됐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연구팀은 이번 연구의 핵심 기술인 고정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과 유전자 교정 검증 기술을 확보했지만, 미국으로 연구 원정을 가야만 했다. 국내에서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 따라 배아는 물론 난자와 정자에 대해서도 유전자 치료(교정)가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인간배아 연구 선도국 美·中·英…영국은 법 규제 속에서도 활발한 연구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유전자나 염기를 잘라내는 기술로,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적 결함을 교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맞춤형 아기’ 등 윤리적 문제로 치열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2012년 정확도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가 개발된 이후 인간배아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조금씩 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뤄진 유전자 가위 임상 연구는 미국 9건, 중국 5건, 영국 3건 순이다.


세계적으로 유전자 교정을 비롯한 인간배아 연구를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한 영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등 21개국이다. 미국은 연방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여기에 구속되지 않고 주법에 따른다. 일본과 중국, 인도 등도 규제는 하지만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이 중 특히 영국은 한국처럼 엄격한 법적 규제를 하고 있으면서도 미국, 중국과 함께 불임과 난임, 발달, 유전질환 등을 치료하기 위한 인간배아 연구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지난해 막달레나 제르니카-고에츠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리학과 교수팀이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인공 수정 후 13일간 배아를 체외에서 배양하는 데 성공, 역대 최장 기간 기록을 세웠다. 안정적인 체외 배양은 인간배아 유전자 교정 치료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영국 정부는 다른 규제국과 마찬가지로 배아의 체외 배양을 최대 14일까지 허용한다. 연구진은 기술적으로 14일 이상 배아가 생존할 수 있음에도 이른바 ‘14일 규정’에 따라 도중에 실험을 중단했다.

 
인간배아 대상 유전자 교정 연구를 정부 차원에서 처음 허가한 국가도 영국이다. 지난해 캐시 니아칸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박사팀은 난임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정부 승인을 받고 배아 유전체에서 ‘옥트4(Oct4)’ 유전자를 잘라낸 뒤 일주일 동안 관찰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부모 3명의 유전자를 결합한 ‘세 부모 아기’ 시술도 세계 최초로 합법적으로 허용했다. 인간배아 연구 규제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중국에서 강행된 실험들과는 윤리적, 사회적으로 대비된다.
 

GIB 제공
GIB 제공

● 구체적인 법 규정과 전문 관리·감독 체계가 윤리적 안전장치 역할 
 
법적 규제를 받으면서도 영국의 연구가 앞서나갈 수 있는 이유는 인간배아 연구를 둘러싼 규제 논의가 매우 구체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어떤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어떤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연구 목적과 기술, 실험 단위별로 각각 다른 규정에 따라 오랜 기간에 걸쳐 심사가 이뤄진다. 윤리적 안전장치를 제도적으로 먼저 만든 뒤에 연구를 허가하는 식이다.


영국이 지난해 세 부모 아기 시술을 처음 승인한 배경에도 ‘세 부모 아기 체외수정법’이 있다.  모계 유전질환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이 시술은 친모의 난자에서 핵만 추출한 뒤 핵을 제거한 건강한 난자에 주입해 인공 수정을 하는 방식이다. 영국 의회는 세 부모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이 법을 하원과 상원을 거쳐 2015년 통과시켰다. 
  

14일 규정 역시 영국에서 처음 제안됐다. 영국 정부는 1982년 영국의 철학자 매리 워녹을 위원장으로 체외수정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당시 워녹보고서는 배아를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배아가 홀로 생존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인 14일로 봤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규제국들은 워녹보고서의 14일 규정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영국의 과기계에서는 14일을 28일로 확대하기 위한 대국민 공론화 움직임도 이뤄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이 합법적으로 유전자 교정, 줄기세포 등 인간배아 연구와 세 부모 아기 시술을 허용한다고 해서 규제가 느슨한 것은 아니다. 규정이 구체적인 만큼 까다롭고, 인간배아와 관련된 모든 정책을 관할하는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을 중심으로 윤리적인 전문 관리·감독 체계를 잘 갖추고 있어 심사와 평가도 주의 깊게 이뤄진다.

 
문한나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배아정책팀 연구원은 “영국은 연구를 허가한 이후에도 실태조사단을 운영하는 등 모든 프로세스가 HEFA를 통해 통합적으로 관리되고 일반인에게도 공개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연구의 전 과정에서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 평가를 하는 제도를 ‘엘시(Ethical, Legal, and Social Implications·ELSI)’라고 한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기획팀장은 “엘시는 기술이 사회적으로 보편화 된 이후의 영향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연구 과정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한다”며 “영국에서는 엘시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윤리를 위한 제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유전질환 대부분 연구대상에도 포함 안 돼…생명윤리 법·제도 연구도 필요

 

국내의 경우 배아 연구계획에 대한 승인 절차는 있지만, 허가 이후의 모니터링 체계나 심사 절차는 미비한 상황이다. 줄기세포와 인간유전체를 중심으로 엘시 연구가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대학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를 풀게 되면, 배아 연구의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소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 부원장(의료법윤리학과 교수)은 “영국이 배아 연구 관리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생명윤리를 둘러싼 법과 제도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정책과 제도가 체계를 갖추려면 국내에서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명화 팀장은 “정책적인 준비가 이뤄진 뒤에 관련 연구를 허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그런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기술의 발달이 빠르고 연구가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바이오 분야의 경우에는 규제를 현실적인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도 있다”며 “좋은 연구 성과를 위해 연구자들의 연구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생명윤리법도 허용된 사항 이외의 행위를 포괄적으로 금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금할지 명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선 현재 유전자 교정을 제외한 배아 연구도 난임 시술 후 남은 배아(잔여배아)로 △난임 치료법, 피임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근이영양증,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연구 △국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한 연구에 한해 다른 치료법이 아예 없거나 훨씬 치료 효과가 월등할 경우에만 허용된다.

 

대통령령 희귀·난치병은 헌틴턴병, 백혈병, 뇌성마비, 척수손상 등 희귀병 13종과 심근경색증, 간경화, 파킨슨병,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시신경 손상, 당뇨병, 후천성면역결핍증 등 8종뿐이다. 김진수 단장은 “대부분의 유전질환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연구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실제 치료는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고 해도 기술 확보와 검증을 위해 연구까지는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윤 교수도 “생명윤리법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유전자 치료법은 바이러스를 통해 유전물질을 주입하는 방식뿐이었다”며 “기술이 발달한 만큼 법도 새로운 기준에서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08월 09일 18:00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14 + 2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