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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17] 영화관: 다른 인생을 느껴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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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12일 17:30 프린트하기

연일 폭염의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내달린다(라고 엊그제 썼는데, 어젯밤부터 열대야가 사라졌다. 그래도). 하차할 수 없는 모든 남녀노소가 집 안팎에서 시원한 곳을 찾는다. 에어컨이면 좋고 선풍기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매미 소리 가득한 느티나무 그늘 아래 손부채만으로도 공간이 트여 마음만은 시원하다. 해발 600m쯤 되는 강원도 산속이나 심심산중 그늘진 계곡이거나 종유석이 자라는 동굴 속이라면 이 더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 피서에 마침맞겠지만 그 밖의 야외에서는 인체 온도에 다다른 폭염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에어컨이 가동된 곳을 피서지로 삼는다. 동네 카페에 혼자 앉아 한나절 노트북을 열고 있거나 여럿이 마주 앉아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기도 하고, 공공 도서관을 찾아가 방학 숙제며 입시 공부를 하는가 하면, 평소라면 대출해서 곧바로 집으로 가져올 책을 펼쳐놓고 그곳에서 독서를 즐기기도 한다.

 

GIB 제공
GIB 제공

무더운 날에 또 다른 문화를 찾아 가는 곳은 영화관이다. 굳이 서스펜스 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관은 냉방이 잘 돼 있어서 금세 더위를 잊을 수 있다. 그러니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도시에서 더위를 피하기에는 영화관만 한 곳은 드물다. 더구나 장르를 불문하고 관객으로서 흔쾌히 선택한 영화라면 영화에 몰두해 있는 시간만큼은 계절마저 잊을 수 있는 장점이 그곳에 있다. ‘영화에 몰두’한다는 말을 꺼내놓고 생각해보자니, 실제로 영화 산업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돌이켜보면, 20여 년쯤 되지 않았을까. 그 양상은 한국 영화의 제작 수준이 다양하게 진일보하고, 동시에 영화 산업이 활기를 띠고, 영화관의 시설이 좋아지면서 관객의 호응을 받기 시작했던 1990년대와 나란히 걸어왔을 테다.


그것은 이전과의 비교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이 돼서야 우리나라는 ‘감시와 통제’에서 ‘시장 개방’으로 영화 정책이 바뀐다.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이념 대결과 신파 일색에서 벗어나 문화산업 자본에 힘입어 전문적인 영화 기술과 새로운 표현력으로 연출, 제작이 발전한 것도 영화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돌이켜보면, 인구 30만 이상 지역은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와의 교호 상영을 연간 상영 일수 2/5 이상으로 의무화한 스크린 쿼터제가 발효된 1980년대 중후반 이전에 영화관에 걸렸던 상당수의 영화는 외화였다. 실제로 내 경우엔 그 이전에 보았던 한국 영화는 ‘고교 얄개’ 시리즈 몇 편 말고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전 나의 선친께서는 종종 지인에게 초대권을 얻어오셨다. 그것으로 나는 누나 형과 함께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영화를 무료 관람했다. 지방 도시였지만 제법 큰 영화관이었던 ‘시민관’에서 우리는 모세의 기적을 다룬 <십계>에서부터 이소룡 주연의 <정무문>까지 당시 흥행했던 영화들은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당시 꼬마 아이는 영화관 좌석에 앉아 커다란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해놓고 숨죽여 관람했다. 간혹 뒷자리에 앉으면 차르륵 차르륵 하며 영사기에서 필름이 감기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영사막을 비추는, 곧게 뻗는 아날로그 빛줄기는 담배연기를 통과하고 있었기에 영화관 공중에는 늘 희뿌연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래도 영화는 잘 재현됐지만 간혹 필름이 낡아 끊어지면 한동안 어둠 속에서 항의하는 휘파람과 야유 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다.

 

GIB 제공
GIB 제공

그래도 잠시 후면 필름을 이어 붙여 영화는 계속되었기에 괜찮았다. 그보다는 어린 관객으로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경사가 낮은 좌석 배열 때문에 앞사람의 뒤통수를 좌우로 피해가며 영사막을 찾아다녀야 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막이었다. 세로로 쓰인 자막이 좀 길다 싶으면 번번이 영상을 놓쳤고, 영상에 빠져 있다 보면 자막은 기다려주지 않고 이내 사라졌다. 훗날 알게 된 친구 역시 유년시절의 영화관 얘기를 하면서 ‘그래서 외화는 늘 두 번 봤다’며 맞장구를 쳤다. 당시 나는 영화를 ‘한 번 반’ 봤다. 영화관 앞에 가서야 상영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 시작 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지루해 우리 남매는 곧장 검은 커튼을 젖히고 유일한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는 이미 상영 중이었고, 더듬더듬 빈자리를 찾아 앉아 맥락을 알 수 없는 앞부분 내용을 상상하며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면 우리가 보기 시작한 대목을 지나칠 때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퇴장했다.


문학으로 치면 영화는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 줄거리를 보는 게 아니라 장면을 보는 것이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여러 날 동안 머릿속에서 맴도는 감흥은 절제된 인상적인 장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처 내가 몰랐던 삶의 비밀을 그 장면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내가 다 살아볼 수 없는 다양한 인생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 맛에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영화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하는, 세상의 모든 궁금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영화 속 인물들은 관객과 함께 영화관에서 산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마따나 “호랑이가 담배를 끊으면 사람은 살맛이 안 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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