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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구실은 '시한폭탄'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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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13일 18:00 프린트하기

  “예전에 한 번 황산 시약의 온도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아무 생각없이 뚜껑을 열었다가, 시약이 순식간에 기화되면서 코로 들어와 기관지까지 다친 적이 있어요. 교수님께 따로 보고하진 않았어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건 제 잘못이니까요.”

 

  올해 초까지 서울 ㅇ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던 K씨(여·26)는 지난해 여름 연구실에서 당했던 사고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실험의 특성상 냉방장치를 가동할 수 없어 진땀을 흘리며 실험을 하다가 무심코 방호 마스크를 벗은 것이 사고로 이어진 것.

 

  이 같은 실험실 안전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시약을 다루는 이공계 전공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고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연구실 안전환경조성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지난 달 19일 세종대 식품공학과 연구실에서 황산 유출로 실험 중이던 학생 7명이 다치는 등 법 시행 이전보다 연구실 안전사고가 10배 이상 증가한 상태다.

 

  직접 연구실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서울, 수원 등에 위치한 대학 7곳에서 화학 관련 학위를 받은 11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대학 연구실의 안전불감증 실태를 알아봤다.

 

연구실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제대로 분류·보관하지 않으면 화재 등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 동아일보DB 제공
연구실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제대로 분류·보관하지 않으면 화재 등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 동아일보DB 제공

● 위험한 화학약품도 방치 "보관장소 마땅찮아"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화학약품 분류 기준이 실제 연구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시약을 위험물과 비위험물로 나누고 다시 독성, 화기성 등 특성에 따라 세부분류를 해야 하는데 실험을 할 때마다 정리하기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ㅎ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G씨(여·27)는 “실험을 편하게 하려고 시약의 특성별로 분류하지 않고 알파벳 순서대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렇게 하면 같이 있어서는 안될 시약끼리 나란히 놓여있는 경우가 생기는데 다들 그러려니하고 넘어간다”고 고백했다.

 

  시약의 분류 뿐만 아니라 보관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G씨는 “인화성 시약인 아세톤은 하루에도 몇 리터씩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한 번에 많이 구입한다”며 “그런데 아세톤을 보관하는 방화 방지용 캐비넷은 넣을 수 있는 용량에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외부에 쌓아놓고 사용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서울 ㅇ대학에서 석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S씨(남·28)는 우리나라 대학의 시약 폐기물 관리에 대해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S씨는 “미국 대학은 액체 시약 폐기물을 5종류로 분류해 수거하는데,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2종류로만 분류해 수거한다”며 “이럴 경우 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시약끼리 섞일 확률이 높아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K씨는 “심지어 시약이 들어있던 공병을 화학물질 안전교육이 제대로 안 돼 있는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이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실제로 한 아주머니가 황산이 들어있던 병을 만졌다가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연구실에서 실험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안전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다. - 동아일보DB 제공
연구실에서 실험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어야 안전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다. - 동아일보DB 제공

 

 ● 안전교육은 '대충', 실험복은 '더운데 뭘'

 

  사실 정부는 위험한 화학물질을 자주 다루는 학생들을 위해 대학에서 온·오프라인을 통해 안전교육을 일정시간 이상 의무 수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학생은 거의 없으며, 학교도 강제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것이 인터뷰 대상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수원 ㅅ대 박사 과정 L씨(남·32)는 “매 학기마다 안전교육을 온라인으로 수강해야 하지만 다 아는 내용이라 틀어두고 다른 일을 한다”며 “교육이 끝나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연구실 막내 연구원들에게 풀라고 시키거나 다 함께 모여서 풀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교육도 유명무실하다. 서울 ㅇ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J씨(여·30)는 “약 2주간 하루 3시간씩 안전교육을 들어야 했지만 안 가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학교에서는 강제라고 했지만 교육에 빠져도 졸업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K씨처럼 연구실에서 가운이나 고글, 마스크 등 실험복장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고 실험하는 것도 안전사고 피해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 복장을 제대로 갖춰입지 않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실험하는 경우가 많아 사고 위험은 더욱 높아졌다.

 

  미래창조과학부 연구환경안전과 전영희 서기관은 “정부 차원에서 불시 점검을 수시로 하고 있지만 1차적으로는 현장에서 실험을 하는 학생들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며 “각 대학도 자체적으로 규제와 점검의 강도를 높여 안전사고 피해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준범 기자

bbe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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