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돈테크무비] 시저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막 넘어섰나?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09월 10일 08:00 프린트하기

1970년 일본의 로봇 공학자 마사히로 모리는 유명한 저서 ‘불쾌한 골짜기’에서 ‘로봇이 인간과 닮아가는 정도가 높아지면 어떤 지점에서부터는 혐오도가 급격히 높아진다’라는 책 제목과 동일한 이론을 선보였다. 프로이트 등 저명한 심리학자들의 논문에 등장하는 불쾌함(The uncanny)의 개념을, 매우 초기 단계였던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분야에 적용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심리학에 기댄 비과학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대규모 제조업의 자동화 설비에 우선적으로 집중되었던 로봇 분야보다, TV, 게임, 영화 등 미디어 산업의 성장과 함께 급격히 기술적인 진보가 있었던 CG 분야가 그런 흐름을 주도 했다. 

 

모리 마사히로가 주창한 불편한 골짜기 이론
모리 마사히로가 주창한 불편한 골짜기 이론

특히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의 개봉은 결정적이었다. 1995년 개봉된 ‘토이 스토리’ 이래로 CG 애니메이션은 상대적으로 표현이 용이한 사물 또는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관행이 있어왔다. 그 걸 깨고 실제 배우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모사해, 실사와 최대한 가깝게 만든 사람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실상 첫 작품이 ‘폴라 익스프레스’였다.


특히 ‘포레스트 검프’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던 감독 로버트 저멕키스와 배우 톰 행크스 콤비가 축적된 CG기술을 무기로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불쾌한 골짜기’ 이론 따위는 무시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러나 극장을 찾은 상당수 관객들이 표출한 것은 감탄이 아니라 불쾌감이었다.


평론가들의 반응도 부정적이었다. 토론토 스타지는 “어린이에겐 악몽이었을 것”이라고 폄하했고, CNN은 “좋게 표현해서 당황스러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다소 소름 끼친다”라고 평가했다. 그 뒤로 CG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주류 애니메이션에서 실사에 가까워 보이는 사람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은 다시 금기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폴라 익스프레스’가 ‘불쾌한 골짜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의 한 장면

 


로봇 분야에서도 사람의 형상을 한 휴머노이드는 결코 주류가 되지 못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 소프트 뱅크, 혼다 등 비자동화 로봇 분야 선도 기업들조차도, 사람보다는 동물을 모사하거나 인간형이라도 기능성을 우선시하는 로봇을 제작하는데 집중했다. 그들이 만든 아시모, 아틀라스, 빅독, 페퍼 등이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증명하는 결정적 근거라는 주장은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론은 이론일 뿐, 진리일 수 없다는 주장은 다른 한 편에서 계속 제기되어 왔다. 심지어 이론을 창시한 마사히로 모리 조차도 불상을 예로 들며 사람보다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 더 호감을 주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로봇 안의 부처’ 등의 저서를 통해 추구했던, 로봇이 ‘불심’을 가질 수 있다는 개인적인 믿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휴머노이드와는 거리가 먼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들
휴머노이드와는 거리가 먼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들

그 연장선상에서, ‘불쾌한 골짜기’가 보편타당한 진리가 아님을 우회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인정받는 영화가 있다. 얼마 전 3부작의 마지막 편이 개봉된 ‘혹성탈출’ 프리퀄 시리즈가 그 주인공이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에 가장 가까운 동물인 유인원들이, 점차 사람과 똑같이 혹은 사람보다 더 사람다워지는 과정을 주인공 시저의 일생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 이전에 CG는 ‘정글북’의 곰,  ‘반지의 제왕’의 골룸, ‘아이언맨’ 시리즈의 아이언맨, ‘아바타’의 나비족 등 동물이나 인간의 형태를 닮은 가상의 등장인물을 실재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연기하도록 만드는데 집중적으로 활용되었다. 반면 인간을 CG로 직접 대체하는 일은, 최근에 개봉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증명된 것처럼 여전히 성공적이지 못했다.  

 

 

▲ 배우 엔디 서키스의 연기를 CG를 통해 시저로 변환하는 과정

 


‘혹성탈출’ 프리퀄 시리즈는 그런 한계를 완벽히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기 충분했다. 물론 CG로 만든 인간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시저를 위시한 유인원들을 살아있는 실체로 받아들이고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데 완벽하게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그 작업을 주도한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가 밝힌 가장 중요한 기술적 요소는 세 가지다. 우선 그린 스크린이나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모셥 캡쳐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로케이션 현장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직접 모션 캡쳐하는 방식의 도입이다. 배우를 CG캐릭터로 변환한 이후, 따로 촬영한 배경과 합성하는 과정이 사라짐으로써 현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블루나 그린 스크린이 아닌 촬영 현장에서 직접 유인원을 연기를 하는 배우들
블루나 그린 스크린이 아닌 촬영 현장에서 직접 유인원을 연기를 하는 배우들

두 번 째는 유인원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프리퀄 1편보다 두 세 배 많은 털을 표현했다는 것인데, 이는 특히 표정 연기를 많이 하는 시저의 얼굴을 클로즈업했을 때 더더욱 빛을 발했다. 마지막으로 자연광 조명을 최대한 흉내 낼 수 있는 특수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사용함으로써, CG로 그려진 유인원이 배경과 완벽하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한 사실이다.


그 결과에 탄복한 일부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시저(와 그를 연기한 배우 엔디 서키스)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을 정도다. 비록 사람 캐릭터는 아니지만, 시저가 ‘불쾌한 골짜기’를 건넌 최초의 CG 캐릭터로 평가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하는 인간 배우가 사라지고, ‘불쾌한 골짜기’가 사어(死語)로 취급 받는 세상은 그만큼 가까이 와 있는 것이다.
 

 

※ 필자소개
이철민. 학부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국내 IT기업들에 재직하다 미국 유수의 MBA과정에서 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국내 사모펀드(PEF)에서 M&A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씨네21』, 『동아일보』, 『한겨레신문』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인터넷 없이는 영화도 없다』, 『MBA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다.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09월 10일 08:00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5 + 10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