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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21] 오래된 사찰: 신앙 없이도 눈속말을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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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09일 18:00 프린트하기

화엄사 각황전 - 윤병무 제공
화엄사 각황전 - 윤병무 제공

어쩌다 낯선 지방에 갈 일이 생기면 나는 출발하기 전에 먼저 그 일대의 오래된 사찰을 검색해본다. 기왕이면 유적지(遺跡地)도 둘러볼 요량으로 말이다. 오래된 사찰 말고도 국내 유적지는 고분, 성터, 고인돌, 역사 인물의 생가 등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유적지는 오래된 사찰 자체이기 때문이다. 멀게는 삼국시대부터 가깝게는 조선시대에 창건한 사찰에 가보면 ‘시간’과 ‘문화’가 느껴진다. ‘시간 위에 앉아 서서히 늙어간 문화’가 유적이 아닐까.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그 현장인 오래된 사찰을 찾아가 아득한 시간과 그 기간에 인간의 정신과 손길이 이룬 문화를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그 배경에는 더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최초의 어머니, 자연생태가 있어 더욱 좋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내가 오래된 사찰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뿐이다. 우리가 유럽 여행을 할 때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탁월한 고딕 건축물을 보려고 중세 교회를 방문하는 이유와 같다. 그럼에도 오래된 사찰은 승려가 불도(佛道)를 닦는 곳이기도 하여 자신이 믿는 종교와 다르다는 이유로 방문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7년 전, 나는 가족 단위로 동네 지인 가족과 함께 강원도 평창에 가서 1박 2일로 여행한 적이 있다. 평창 산중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귀경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려 할 때, 그곳까지 갔으니 나는 오랜만에 오대산의 월정사와 상원사를 다시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훨씬 더 먼 경포대를 다녀와야 했다. 독실한 개신교도 한 분이 마땅찮아했기 때문이다.

 

쌍계사에서 - 윤병무 제공
쌍계사에서 - 윤병무 제공

사찰 등의 유적지에 갈 때는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동행인이 있으면 좋다. 그가 역사문화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지성인이면 더욱 좋다. 잘 몰라도 미리 관련 정보를 조금 찾아보고 가면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또는 부지런한 관심이 뜻밖의 명소로 데려가 주기도 한다. 5년 전에 우연히 처음 방문한 실상사(實相寺)가 그곳이었다. 간암에서 복막암으로 전이돼 남해에서 투병 중이던 지인을 찾아가 이튿날 지인의 차를 내가 몰고 함께 귀경하던 길이었다. 다음번 요양을 지리산에서 하고 싶다는 지인의 말에 지리산 몇 곳을 둘러봤지만 헛걸음하고 일단 상경하려고 한적한 지리산 지방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넓은 계곡물이 보기 좋아 속도를 줄였는데 ‘신라 고찰’이라는 도로변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 때도 아니고 신라? 나는 주저 없이 그곳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9월말이었고 평일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매표를 하고, 행인이라고는 우리 단둘뿐인 다리(해탈교)를 건너 들길을 따라가니 평지에 자리 잡은, 역사에 비해 소박해 보이는 실상사가 나타났다. 경내는 드넓지 않았지만 새로 손댄 것이 거의 없어 보여 고풍스러웠다. 높이가 70여 미터나 됐다는 목조탑은 오래전에 소실되어 간데없고 그 규모를 가늠할 만한 널찍한 목탑지만 세월을 다독이고 있었다. 단청을 하지 않아 더욱 수수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보광전(普光殿)도 좋았고, 그 앞뜰에서 지상의 번민 같은 굽은 나뭇가지를 갈래갈래 뻗은 반송(盤松)을 에둘러 보았다. 그러다가 당시에는 가건물 상태여서 볼 것도 없어 보였던 약사전(藥師殿) 자리로 우리는 다가갔다. 그저 흔한 창고에 지나지 않아 보였던 그곳에 우리는 왜 갔을까?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때 그 자리에 가보지 않았다면 그 후 4년이 지나서 내가 일부러 다시 실상사를 찾는 일은 없었을 테다. 그 창고 내부를 보고는 나는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실상사 철제여래좌상 - 윤병무 제공
실상사 철제여래좌상 - 윤병무 제공

철불(鐵佛)은 흔치 않다. 이전에 내가 철원의 도피안사와 청양의 장곡사 두 곳의 사찰에서 보았던 철제 불상의 규모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커다란 철불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앉은키가 3미터에 다다를 만큼 커다란 철제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을 마주한 순간 나는 본연의 초월적 위엄을 느꼈다. 크기로만 친다면 속리산 법주사의 청동미륵대불이 33미터나 되니 훨씬 웅장하지만 단번에 주눅이 들 만큼의 진지한 위엄의 분위기는 통일신라시대에 주조된 실상사의 철불이 압도적이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그 철제여래좌상 앞에서 간절한 마음을 꺼내놓은 중생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저절로, 난생처음 나는 불상을 향해 절을 했다. 삼배를 하면서 동행인의 투병이 성공하길 기원했다. 신앙이 없기로는 마찬가지인 동행인도 나를 따라 절을 하고는 불전함에 지폐를 넣었다.


얼핏 보기엔 거기가 거기 같아 보이는 오래된 사찰에 가서 찬찬히 둘러보면, 곳곳마다 다른 시대와 자연환경에서 이룬 문화가 조금씩 달라 다양한 세부가 보인다. 문틀마저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내소사의 대웅보전에 닿은 손길의 촉감은 누군가에게는 삐걱거리는 마음을 세워준다. 남해금산의 아찔한 암반 기슭에 세운 보리암에서 건너편의 아슬한 바위들을 바라보면,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라고 쓴 이성복 시인의 시구가 떠올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4년 후 다시 실상사에 찾아갔을 때 약사전에 제대로 모신 철제여래좌상이 여전한 눈길로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예전처럼 철불을 마주 보고는 투병에 성공한 지인이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고 눈속말로 소식을 전했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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