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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23] 엘리베이터: 두 부류의 사람이 이용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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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3일 18:00 프린트하기

급한 성미가 종종 나를 못 살게 군다. 그것은 대형 매장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느릿느릿하게 작동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수화물처럼 마냥 무료하게 줄 지어 이동하는 게 싫은 나는 고층에 주차한 날에는 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지난 휴일에도 7층 옥상에 주차를 하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경험상 7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는 10분가량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의 매 층마다 멈추기에 만약 계단 통로가 있다면 내려갈 때는 그쪽을 이용할 텐데 웬일인지 그 매장에는 비상계단은 없다.

 

GIB 제공
GIB 제공

7층을 알리는 램프가 깜빡이자 빠른 속도로 엘리베이터의 미닫이문이 열렸다. 공수 교대하는 야구장의 선수들처럼 소비자와 예비 소비자들이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팎에서 위치를 바꿨다. 6층에서 문이 열리자 요즘은 동네 산책로에서조차 보기 힘든 유모차가 승강기 안으로 들어왔다. 첫돌쯤 돼 보이는 아기가 편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아기는 또릿또릿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모든 아기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을진대 아기가 아이가 되고 아이가 소년(少年)이 되고 청소년(靑少年)이 되고 성년(成年)이 되면서 갓난아기는 ‘어떤’ 사람이 된다. 생태 환경에 따라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휘어져 자라기도 하고 곧게 자라기도 하듯이, 사람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성장해 살아간다.


유모차 속의 아기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2층에서 문이 열렸다. 아기의 엄마가 뒷걸음질로 내리려다가 옆 사람의 발등을 살짝 밟았나 보다. 밟힌 사람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기 엄마는 그 사실을 인지한 표정을 지었지만 의도한 게 아니었기에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여겼는지 미안하다는 표정조차 짓지 않은 채 나릿나릿 문 밖으로 후진했다. 더구나 유모차가 엘리베이터를 다 빠져나가지 않아 누군가는 계속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했지만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간 아기 엄마는 2층이 자신이 내려야 하는 곳인지 확인하느라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승강기 내부의 시선들이 일제히 아기 엄마에게 향했다. 유모차 속의 천진한 아기는 영문도 모른 채 잠깐 만에 친해졌다고 내게 방긋 웃어주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본 것은 중학생 때였는지 그 후였는지 기억에 없지만 그 기능을 처음 본 것은 TV 외화 드라마 ‘타잔’에서였다. 아내 제인과 아들 보이와 함께 사는 타잔의 집은 커다란 나무 밑줄기 윗부분에 지어져 있었는데, 평소 나무 타기를 식은 죽 먹듯 하던 타잔은 웬일인지 자신의 집에 오를 때는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늘 지원해주는 코끼리 중 한 마리를 하인처럼 부려 나뭇가지로 만든 도르래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던 것이다. ‘유인원 타잔’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대중소설로 첫 선을 보인 때가 1914년이고, 미국 TV 드라마가 수입되어 국내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게 1974년이니 최초의 기계식 엘리베이터가 미국에서 발명돼 1854년에 박람회에서 선보인 지 딱 120년이 지난 후의 연출이었다.

 

GIB 제공
GIB 제공

이제는 엘리베이터에 너무 익숙한 나는 매일 몇 차례씩 그 기계를 이용한다. 우리 집이 19층에 있으니 그것이 없다면 얼마나 난감할까. 엘리베이터를 소재로 삼은 우스갯말도 있다. 20층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이 늦잠을 잤단다. 화들짝 놀란 그가 출근하려고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 하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운행 정지 상태였단다. 어쩔 수 없이 계단으로 뛰어내려와 주차장에서 승용차 문을 열려는데 아뿔싸, 차 키를 안 가져왔단다. 부랴부랴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가 차 키를 가지고 다시 헐레벌떡 내려와 시동을 걸었는데 어느 집 발코니에서 한 노인이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더란다. 3월 1일이었단다. 있을 법한 얘기여서 당사자는 헛웃음이 나왔겠지만 아침 운동은 제대로 했을 테다. 실제로 20층에 사는 나의 한 후배는 운동 삼아 일부러 계단을 이용한단다. 한번은 차 안에서 잠든 딸아이를 업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 귀가한 적도 있단다. 편리함을 버릴 때 얻는 것도 있다.


우리 집 라인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승강기가 15층에서 멈추면 나는 긴장한다. 목줄에 묶이긴 했지만 마구 짖어대는 반려견 한 마리가 15층에 살기 때문이다. 그 주인 할머니는 난처해 하지만 길들이지 못해서 나 같은 주민들은 번번이 깜짝깜짝 놀란다. 19층이어서 38가구당 한 대의 공동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 종종 승강기 안팎에서 이웃을 만난다. 아이들이니 떠들 수도 있지만 밀폐된 작은 공간에 동승한 사람들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 아이의 부모는 자녀에게 주의는 주어야 할 테다.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승강기를 이용할 때는 역한 냄새가 나지 않게 밀봉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이웃이 적지 않다. 입주민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이뿐 아니어서 엘리베이터 내부 벽면은 게시판이 되기도 한다. 세대별 화장실 환풍기로 담배 연기가 역류한다는 지적과 자제를 당부하는 게시물을 보는 일은 흔해졌다. 최근 포항의 한 공동주택에서 담배 냄새 때문에 게시한 주민의 호소문과 결백을 주장하는 다른 층 주민들의 릴레이 메모가 범인 색출 소동으로 비화돼 신문에까지 나올 정도니 말이다.


반면, 승강기에 동승한 잘 모르는 이웃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누군가 짐을 들고 들어올 때면 버튼을 대신 눌러주고, 내릴 때는 순서를 양보하는 예의바른 이웃도 있다. 이웃들의 상반된 모습을 보면서, 문명의 이기(利器)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단 두 부류, 즉 예의 있는 사람과 무례한 사람으로 구분하는 나는 인색한 사람일까.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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