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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유력 연구의 비결...박남규 교수 “모두가 외면해도 가능성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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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5일 14:00 프린트하기

(데스킹 전) 박남규 교수 “기초과학이 노벨상 받는다는 생각도 이제는 편견”
21일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박남규 교수. 안정적인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관련 연구의 물꼬를 튼 공로로 최근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前 톰슨로이터 지적재산과학사업부)가 예측한 ‘노벨상 수상 유력 후보’로 선정됐다. - 수원=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때 어렵게 ‘나노스케일’에 발표한 2011년 논문이 가장 의미가 깊습니다. 당시만 해도 광전환 효율이 실리콘 태양전지에 비해 너무 낮아 관심을 끌지 못했고, ‘사이언스’ ‘네이처’ 등에서도 연구 결과를 폄하했었습니다. 모두가 외면할 때도 계속 연구한 이유는 제가 발견한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前 톰슨로이터 지적재산과학사업부)가 예측한 ‘노벨상 수상 유력 후보’로 선정된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57·사진)는 연구를 하는 데 있어 긍정적인 믿음 외에는 특별한 비결이 없었다며 이처럼 말했다. 21일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의 연구실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2007년 등장과 동시에 사장되다시피 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꾸준히 연구해 태양전지 분야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로브스카이트 물질은 AMX3(A는 양이온, M은 금속 양이온, X는 음이온)형 큐빅 구조를 갖는 물질로, 1839년에 발견됐지만 태양전지에 활용된 것은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 “사이언스, 네이처가 외면한 첫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논문이 가장 의미 깊어”

 

2009년 1편, 2010년 0편, 2011년 1편….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 관한 논문은 세계적으로도 단 2편뿐이었다. 하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처음 제안한 미야사카 스토무 일본 토인요코하마대 명예교수의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광전환 효율을 기존 대비 2배 높인 박남규 교수의 논문이다.

 

하지만 박 교수가 2012년 세계 최초로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해 안정성과 효율을 동시에 높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후 후속 연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올해만 약 3000편, 누적 700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그는 “처음부터 결과가 잘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며 “실패한 것 같은 실험이라도 1%의 잠재적 가능성에 집중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성능을 뛰어 넘어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와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물질을 X선 의료영상 장비, 고효율 LED 광원 등 다른 산업 분야에 응용하는 연구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관련 기사: 노벨상 유력 후보에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 선정…안정적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개발 공로
 
이처럼 페로브스카이트 연구의 물꼬를 튼 덕분에 해외에서는 이미 2014년부터 박남규 교수가 유력한 노벨상 후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박 교수가 과학자로서 큰 주목을 받아온 것은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소속도 아닌 그가 노벨상 유력 후보에 오른 것이 의아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박 교수 스스로도 “그저 연구가 재밌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며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아니지만 유력 후보로 거론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박 교수는 1997년 미국재생에너지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염료감응 태양전지를 연구했다. 이후 1999년 귀국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2005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태양전지연구센터장을 지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한 건 2009년 성균관대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박 교수는 “좀 더 긴 시간 동안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과 후학을 양성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학으로 옮겨 오게 되긴 했지만,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 인프라와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연구자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학부 졸업 후 기업에 취직했다 뒤늦게 연구자의 길로...세계 과학자들과의 활발한 교류가 원동력

 

20년간 태양전지 연구에 매진해왔지만 그가 처음부터 과학자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박남규 교수는 “학부 졸업 후 당시에는 곧바로 기업에 취직했었다”며 “신입사원 연수 때 경영기획실로 갈 기회가 있었는데 연구가 하고 싶어 연구소를 고집했다”고 말했다. 결국 2년 뒤 서울대 화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페로브스카이트 물질을 처음 다룬 것도 석사과정 때 초전도체를 연구하면서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박 교수는 “박사과정 2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실험 결과가 논문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이미 결혼도 한 상태였고 마음에 부담이 돼 수료만 하고 다시 취직을 할까도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한 달 간의 고민 끝에 ‘1일 1실험’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매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나가 화학 분야 논문초록집을 뒤져 그날 그날의 실험 주제를 정하고 종일 실험을 했다. 박 교수는 “서로 다른 60여 가지의 실험을 했을 때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다양한 연구 방법론을 익히게 되면서 연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때 이후로 연구에 임하는 박 교수의 지론은 다양성과 개방성이 됐다. 그는 “한 분야를 깊이 있게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다른 학문이나 과학기술을 흡수해 응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끊임없이 세계 과학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기도 한다”며 “좋은 동료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성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남규 교수는 또 “꼭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세계 과학계가 주목하는 분야와 해외 연구 동향에 대한 정보력을 갖추는 것은 국가 과학경쟁력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국가의 ‘탑다운(Top-down)’ 지원은 그런 분야에서 고군분투 하는 젊은 과학자들을 발굴해 키우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연구자 개개인의 목표와 국가의 역할이 같은 곳을 바라볼 때 국가 과학시스템이 성숙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연구자 개개인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자율적인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좋은 논문과 노벨상, 기술이전, 인재양성 등 연구자들 각자의 다양한 욕구를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구자들 스스로도 철저히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연구보다는 사회와 국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연구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연구비만 있다면 계속 연구를 하고 싶다”며 “연구실에서 끝까지 실험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게 유일한 꿈”이라고 말했다.  우선 페로브스카이트 물질이 어떻게 이처럼 우수한 광흡수 특성을 갖는지 근본적인 원리에 대해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싶다고 했다. 박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물질이 광·전자 소자에 활용하기 좋은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된 게 없다”며 “언젠가 그 원리를 알게 된다면 새로운 물질을 디자인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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