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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죄악인가? 질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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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02일 09:00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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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팩트체크] 주변에 동성애자 있으면 동성애자 늘어날까?

 

1974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아주 긴박한 결정을 내린다. 1968년 발간한 DSM-II의 6쇄에서 진단명 하나를 아예 삭제해 버린 것이다. 이는 정신의학회 이사회에서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고, 다시 전체 정신의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한 투표로 확정되었다. 이후 동성애, 즉 호모섹슈얼리티(Homosexuality)라는 진단명은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DSM이란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을 줄여부르는 말이다. 1952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책인데, 판을 거듭하면서 전세계의 정신의학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한때 동구권에서 DSM에 대항하여 자신들만의 진단기준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중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모든 정신과 의사들이 DSM을 이용하여 환자를 진단하고 분류한다. 정신의학의 바이블로 불리는 이유다.

 

어떤 기준이 널리 공신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신중함과 보수성이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개정된 DSM-5의 경우는 1999년에 처음 연구 계획이 수립되어, 2013년 최종판이 발표될 때까지 무려 15년동안 개정 작업이 지속되었다. 정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한번 정해진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동성애는 DSM-II판과 III판의 중간, 6쇄에서 수정도 아니라 아예 ‘삭제’되어 버린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DSM-II 표지. DSM-II는 이례적으로 판이 바뀌기 전에 동성애를 진단명에서 삭제하였다. - TraumaAndDissociation 제공
DSM-II 표지. DSM-II는 이례적으로 판이 바뀌기 전에 동성애를 진단명에서 삭제하였다. - TraumaAndDissociation 제공


● 사면받은 동성애

1957년 서독정부는 나치의 희생자에게 보상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희생자 중에는 5만명에 이르는 동성애자도 있었다. 그러나 보상 신청을 한 동성애자는 고작 14명에 불과했다. 왜 이렇게 적은 수의 동성애자만 보상을 신청했을까?

 

나치 독일은 패망했지만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한 독일의 형법은 건재했다. 그런데 나치로부터 받은 피해에 대해 보상을 받으려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처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1969년까지 동성애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은 독일 남성은 무려 6만명에 달했다.

 

서구 사회는 오랫동안 동성애를 심각한 범죄로 취급했다. 사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동성애를 금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종종 찬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4세기경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구약의 레위기 20장 13절은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였다. 이제 동성애는 명실상부한 국법 상의 ‘죄’가 되었다. 

 

사실 레위기 20장은 이외에도 ‘남의 아내, 아버지의 아내, 며느리, 장모, 짐승, 아버지의 딸, 이모, 고모, 숙모, 형제의 아내’와의 동침하는 자도 모두 죽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배우자 외에는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말하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동성애와 외도는 분명 다른 문제다. 그러나 이 구절은 동성애 혐오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버렸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피해자가 없으면, 죄도 없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동성애는 이단이나 마법, 신성 모독과 더불어 죄의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 물론 이후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20세기 중반 무렵 대부분의 구미 국가에서 동성애는 형법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또다른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동성애가 마귀의 시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동성애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나치가 건설한 부헨발트 수용소에는 650명의 동성애자가 강제로 수감되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유태인이 가슴에 다윗의 별 문양을 단 것처럼, 동성애자들은 가슴에 핑크색 삼각형을 달고 다녀야 했다. - Gorodilova 제공
나치가 건설한 부헨발트 수용소에는 650명의 동성애자가 강제로 수감되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유태인이 가슴에 다윗의 별 문양을 단 것처럼, 동성애자들은 가슴에 핑크색 삼각형을 달고 다녀야 했다. - Gorodilova 제공


● 동성애라는 진화적 운명

동성애는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경우만 들어도, 최소 14종의 동물에서 명백한 동성 교미의 증거가 관찰되었다. 이견이 좀 있지만, 동성애를 전혀 하지 않는 종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동성애는 대부분의 민족에서, 그리고 꽤 많은 동물에서 관찰되는 보편적인 성적 관습이다.

 

동성애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일 수 있다는 가설만 지금까지 적어도 7개 이상 발표되었다. 첫째 사회적 결속. 즉 우정이나 복종심의 표현으로 동성애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 연습. 이성 관계를 미리 훈련한다는 것이다. 셋째 친족 선택. 동성애를 통해 친족의 포괄적합도가 향상된다는 것이다. 넷째 성적 대립 선택. 이성에서 유리한 유전자가 다른 성에서는 동성애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다섯째 과지배성. 이형접합에서는 유리한 유전형질이 동형접합에서 동성애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간접적으로 정액을 옮긴다는 가설이나 보다 약한 성으로 위장한다는 주장, 성적 불균형이나 진화적 부산물 등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동성애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많다면, 점점 동성애가 널리널리 퍼져서 세상이 동성애자로 가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럴 일은 없다. 동성애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성애에 비해서 그 비율은 아주 낮다. 동성애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유전자가 인구 집단에 널리 퍼지는 것은 이론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 진화적 의미에서 동성애는 안정적 전략이지만, 또한 항상 ‘소수’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동성애는 어느정도 타고 나는 형질이다. 하지만 또다른 의혹이 일어났다. 동성애가 죄악도 아니고, 학습에 의한 것도 아니라면, 혹시 그냥 질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성적 행위를 하고 있는 두 마리의 청둥오리 수컷. 동성애는 동물의 세계에서 비교적 흔하게 관찰된다. 여러 진화적 증거에 의하면, 동성애는 진화적으로 안정적인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 - Gorodilova 제공
성적 행위를 하고 있는 두 마리의 청둥오리 수컷. 동성애는 동물의 세계에서 비교적 흔하게 관찰된다. 여러 진화적 증거에 의하면, 동성애는 진화적으로 안정적인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 - Gorodilova 제공


● 질병이 된 동성애

정신장애에 대한 의학적 치료방법이 정립된 것은 불과 수십년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의학은 가장 발전이 더딘 의학의 한 분야이다. 심지어 정신장애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논란도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의학의 후진성은 동성애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DSM 체계에 따르면, 정신장애는 주관적인 고통이 수반되거나 혹은 사회적, 직업적, 학업적 기능의 손상이 동반되어야만 진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된다면, ‘문제’라고 진단할 수 있다는 순환논리다.

 

이는 아주 애매한 상황을 낳는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이 동성애자를 차별해서 사회적 활동이 어려워진다면, 동성애는 정신장애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동성애자를 포용한다면, 즉 사회적 활동의 장애가 없다면 동성애는 정신장애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동성애가 질병이 되는지 여부는, 다른 사람이 그러한 정신적, 신체적 상태를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나치 독일에게 동성애는 아리안 족의 순수성을 해치는 심각한 범죄였다.  만약 내가 그 당시의 독일 정신과 의사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동성애는 ‘범죄’이 아니라, ‘질병’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분명 동성애는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정도의 ‘심각한 사회적 손상’이기 때문이다. 아마 ‘동성애는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니, 제발 그들을 죽이지 말라’고 항변했을 것이다.

 
● 진료실을 나간 동성애자


1973년 젊은 정신과 의사 로버트 스피처는 한 친구의 초대로 술집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술집은 사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동성애자, 특히 정신과 의사들이 모이는 비밀 술집이었다. 사실 스피처는 다른 정신과 의사처럼 동성애는 정신장애의 일종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술집에서 저명한 정신의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해 말 스피처는 미국 정신의학회 연례 학술대회에 참석해서, 동성애는 ‘주관적 고통을 동반하지도, 사회적 활동의 장애도 없으므로’ 정신장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당시로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발언이었다. 뜻밖에도 학회는 그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였고, 두 번에 걸친 투표를 통해서 동성애는 정신장애의 지위를 내려놓게 된 것이다.

 

로버트 스피처. 그는 DSM-II에서 삭제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스피처는 DSM-III의 편집위원장이 되었는데, 물론 DSM-III에는 동성애가 처음부터 들어가지 않았다. - Columbia University 제공
로버트 스피처. 그는 DSM-II에서 삭제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스피처는 DSM-III의 편집위원장이 되었는데, 물론 DSM-III에는 동성애가 처음부터 들어가지 않았다. - Columbia University 제공

 

물론 이러한 변화는 스피처 한 사람의 노력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70년대 미국은 게이 인권 운동이 한창이었고, 매년 정신의학회 학술대회장에는 게이 단체의 시위가 열리고는 했다. 이미 세상은 변해 있었고, 정신과 의사들도 동성애는 정신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누구도 목소리를 높여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동성애는 범죄도 질병도 아니다. 잘못된 양육에 의한 것도 아니다. 많은 동성애자들은 떳떳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중세 유럽보다 더 타락에 물들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동성애를 치료하지 않아서, 현대인의 건강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동성애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논의의 장은 열어 두어야 한다. 각자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분명 동성애자는 어떤 면에서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그릇된’ 것도, ‘병든’ 것도 아니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인류의 신체와 정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공부했다. 현재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개발하며,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신경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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