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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영의 마이너리티 리포트-3] 어느 뇌과학자의 ‘대학원 제도’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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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02일 11:00 프린트하기

*과학과 기술을 다루는 글은 대개 화려합니다. 새로운 발견과 개발을 주도한 학자의 이야기는 언뜻 영웅 서사를 연상하게도 하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고 묻히는 과학이나 사람 이야기는 없을까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과학 주변부를 살펴봅니다.

 

송민령 씨(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는 뇌과학자다. 도파민 회로를 중심으로 인간의 의사결정과 행동, 학습 등을 연구한다. 인터뷰를 한 날(28일) 막 저서(‘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를 발간한 과학 작가기도 하다. 자신의 표현마따나 “모든 사람이 그렇듯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기자의 관심사는 또다른 정체성에 있었다. 그는 9년째 미국과 한국의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이공계 대학원생이자, 해외의 대학원 정책을 수집, 소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대학원생을 살리는 해외 대학원 제도’의 제안자다.

 

이공계 대학원생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과도한 행정 업무, 교수의 개인 비서처럼 부림 당하는 현실, 대가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노동들, 부당한 저자권 문제 등 다 꼽기 힘들다. 학생이기도 하고 연구원이기도 한 애매한 신분,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지만, 또 연구비 조로 돈을 받는 노동자이기도 한 복잡한 정체성도 이들을 힘들게 한다.

 

 

'대학원생을 살리는 해외 대학원 제도' 페이스북 페이지 제안자 송민령 뇌과학자 - 윤신영 제공

 

송 씨는 ‘대학원생을 살리는 해외 대학원 제도’를 6월 중순 개설했다. “박사과정 때 겪은 힘든 일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 주셨어요. 그 중에 참고가 될 만한 해외 사례를 소개한 것도 여러 개였죠. 읽다 보니 혼자만 알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카이빙(수집) 목적으로 페이지를 개설했어요.”

 

시작은 소박했다. 하지만 때마침 연세대에서 교수에게 텀블러 수제 폭탄을 터뜨리는 테러 사건이 발생하며 대학원생의 열악한 처지가 화두가 됐고, 회원 수가 급격히 늘었다. 28일 현재 799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상당수는 대학원생이지만,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연구자와 교수들도 다수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각국에서 일어나는 대학원생 관련 뉴스를 공유하고, 참고가 될 만한 해외 제도를 소개한다. 가끔은 국회의원 보좌관이 대학원 정책을 조사하기 위해 의견을 물어오기도 한다. 이공계 대학원생이라는 주제로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론장 중 하나로 인정 받은 셈이다.

 

20대~3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루는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날것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의의지만, ‘ㅇㅇ대나무숲’ 류의 게시판과 달리 주로 참고할 만한 좋은 해외 제도를 알리고 국내 적용을 고민한다는 게 독특하다. “국내 소식은 다루지 않고 있어요. 요청이 있어서 다룬 적이 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같은 대학원생이라도 지역이나 학과마다 사정이 달라요.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죠.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못 견디는 거예요.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으니 참아라’라고 쉽게 이야기한다던지…. 이래서는 공론장이 만들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되도록 발전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뜻에서 고심 끝에 해외 제도를 타이틀로 내세웠죠.”

 

이 말에서 뇌과학자로서의 송 씨가 보였다. “의식과 사고, 가치관을 바꾸면 같은 문제라도 진단과 해결책이 달라져요. 즉 새로운 해결책을 찾으려면 생각부터 바꿔야죠. 우리나라 대학원 상황을 다루면 주로 현실의 문제만을 이야기하며 맴돌 뿐이에요. 의식적으로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하며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어요.”

 

교수가 함께 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보통 대학원생 문제를 이야기할 때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갈등’을 문제의 뼈대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 씨는 이 구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갑을 관계라는 말은 교묘한 말이에요. 교수가 갑이고 대학원생이 을이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구도에서는 대학원생이 무조건적인 약자가 되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져요.” 대학원생에게 자신이 약자라는 일종의 ‘내면화’가 일어난다는 게 송 씨의 생각이다. “대학원생은 외부에 중재를 요청하는 등 ‘행동’을 할 수 있는데, 갑을 관계 프레임에서는 무기력해지죠.”

 

또 교수를 무조건 갑질하는 존재, 대학원 문제의 근원으로 몰고 가게 되는데, 이는 현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원생이 무조건 약자가 아니듯, 교수 역시 절대적인 갑이 아니에요. 대학원생 인권을 높이려면 교수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해요. 함께 어떻게 길을 만들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 페이지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에요.”

 

송 씨가 이 주제에 천착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처음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원하는 연구 주제를 좇아 KAIST로 자리를 옮겼다. 보통 한국의 대학원생들이 한국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뒤 유학을 가는 것과 반대였다. 자연히 한국 대학원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보였다. “그나마 KAIST는  인권센터가 구축돼 있는 등 상대적으로 제도가 잘 돼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대학원생을 살리는 해외 대학원 제도' 페이스북 페이지 제안자 송민령 뇌과학자 - 윤신영 제공

 

그에게도 말 못할 힘든 시절이 있었다. 말을 아꼈지만, 연구 이야기를 할 때 언뜻 그 때의 심정이 거울처럼 비쳤다. “사람들은 적극적인 걸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쥐를 물에 빠뜨리는 실험이 있어요. 피할 곳은 없고, 쥐는 만성적인 괴로움에 끊임없이 발버둥치다 결국 무기력에 빠지죠. 그런데 적극적으로 발버둥치는 쥐일수록 무기력증에 빠지는 경향이 더 심해요. 때로는, 에너지를 비축하며 웅크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거죠.”

 

한 때 자신이 물에 빠진 쥐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에너지를 비축하며 웅크리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 사람과 함께 나은 제도를 고민하며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소위 ‘갑질’을 당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어요. 그 사람은 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만 명의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라고요. 누군가 저 이전에 갑질을 당한 적 있지만, 아마 넘어갔을 거예요. 이로 인해 그 사람의 갑질은 (뇌과학 용어로) ‘강화학습’을 통해 점점 심해졌고, 그 결과가 제게 영향을 미친 거죠. 부당한 상황이 닥쳤을 때 물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결과로 미래의 누군가가 강화된 갑질을 당할지도 모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지금 힘든 분들, 그 자신이 누군가의 갑질을 형성하는 만 명의 사람 중 하나라는 걸 생각하고 더 나은 대학원 제도를 꿈꾸며 ‘작은 균열’을 만드는 데 동참하면 좋겠어요.”

 

실험용 쥐를 상자에 둔다. 이 상자에는 때때로 강한 전기 충격이 온다. 쥐는 괴롭다. 괴로움은 공포로 이어진다. 바로 옆에 전기가 흐르지 않는 상자가 있지만, 처음에는 쥐가 이 사실을 알 리 없다. 하지만 쥐는 곧 안전한 상자의 존재를 알고 그쪽으로 탈출한다. 이 과정을 ‘적극적 회피’라고 부른다. 특이하게도, 적극적 회피를 한 능동적인 쥐들은 공포를 곧잘 잊고 정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공포소거’). 적극적 회피를 하지 않고 순응한 쥐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전기 충격을 상상하며 끊임없는 공포에 시달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나’ 역시, 뒤에 만 명의 사람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왜 하필 만 명일지 곰곰히 생각했는데, 다시 뇌과학의 은유가 어른거렸다. 우리 뇌에 있는 860억 개의 뉴런과, 뉴런 하나 하나가 갖는 평균 만 개의 시냅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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