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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25] 처가: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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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07일 19:00 프린트하기

어떤 집을 ‘처가’(妻家)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집의 사위뿐이다. 그 사위의 아내에게 그 집은 친정이고, 그 부부가 낳은 자녀에게는 외가이고, 그 자녀의 외숙모에게는 시댁이고, 그 외숙모의 부모에게는 사돈집이다. 이처럼 그 집은 누가 일컫느냐에 따라 실체감이 다르다. 21년 전부터 내게도 처가가 있다. 우리 집에서 오백 리 거리에 있다는 핑계로 자주는 못 가는 처가에 나는 설, 장모 생신, 장인 제사, 추석, 장인 옛 생신 등의 명절이나 기념일에 찾아간다. 그렇게 1년에 대여섯 번 방문하니 그동안 백 번은 넘었겠지만 갈 때마다 모인 식구가 많아 늘 북적인다. 7남매의 배우자와 부부마다 둘씩 낳은 자녀까지 다 모이면 현관에 신발 벗어놓을 자리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니 대식구의 밥상을 차리는 일도 한 번에 되지 않는다. 밥상 두 개를 떼어놓고 바짝 붙어 둘러앉아도 두 번은 차려야 한 끼니가 해결되니 연로하지만 손수 하셔야 마음이 편하신 장모께서는 주방을 벗어날 틈이 없다.

 

GIB 제공
GIB 제공

더구나 모일 때마다 자식과 사위와 손주들에게 여러 가지 맛난 음식을 풍성히 만들어 주시는 장모의 정성 때문에 처가의 밥상은 늘 헤라클레스가 돼야 한다. 철에 따라 꽃게무침이며 간장게장이며 주꾸미며 갈비찜이며 불고기며 잡채며 도토리묵이며 미역국이며 우럭찜이며 갈치구이며 도라지무침이며 동치미며 총각김치며 파김치며 배추겉절이며, 마당에서 기른 풋고추며 애호박무침까지 밥상에 더 놓을 곳이 없게 가득 채우니 말이다. 맛도 좋을뿐더러 가짓수가 너무 많아 한두 번씩만 수저가 가면 밥그릇이 비워지고 마니 나로서는 수저를 내려놓을 수도, 안 내려놓을 수도 없어 늘 과식하게 된다. 약간 유치한 속담이지만 그래서 “처갓집에 송곳 차고 간다”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사위가 처가에 가면 장모께서 꾹꾹 눌러 담아 고봉밥을 퍼 주니 밥이 너무 단단해 송곳으로 쑤셔서 먹어야 할 정도로 사위 대접이 극진하다는 말이다.


이런 풍습에 착안해서 상차림의 정도를 가족 관계에 빗대어 메뉴 이름을 정한 한정식집도 있다. 그 음식점에서는 코스 메뉴에 가장 낮은 단계부터 고모밥상, 이모밥상, 엄마밥상 순으로 이름 붙이고는 최상위에 ‘장모밥상’을 두었다. 장모밥상이야 그럴듯하지만 이 메뉴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모밥상을 고모밥상보다 상위에 두었다는 것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고모는 아버지의 여동생이나 누나이고 이모는 어머니의 자매이니 부계보다 모계가 조카에게 더 잘 대해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고모에게서 어머니 같은 느낌을 받기보다 이모에게서 어머니의 느낌을 받곤 하니 그 메뉴 설정은 그럴싸해 보인다. 이모에게서 어머니의 느낌을 받으니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는 더할 나위 없겠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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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으로 장모는 왜 사위에게 극진할까? 사위를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고 이르는 이유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사위는 왜 백 년 동안이나 손님일까? 전통사회에서는 딸은 혼인을 하면 출가외인이 되었기 때문이겠다. 내가 낳아 기른 사랑하는 딸이 어느 날 신부가 되어 출가해 남의 집안사람이 되었으니 보고 싶어도 쉽게는 만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는데 그 딸이 어느 날 사위와 함께 친정에 왔으니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겠는가. 그런 살가운 딸과 동행한 사위는 또 얼마나 대견하고 예뻐 보였겠는가. 그러니 맛난 음식을 많이 대접하여 화답을 하고 그 화답은 사위에게 기쁨을 주어 다음번에도 흔쾌히 처가에 오게 할 좋은 기억의 심리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사위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장모는 찹쌀로 술을 빚고 씨암탉을 잡고 쌀밥을 앉혔을 것이다.


그런 장모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사위도 반가웠겠지만 멀리 시집간 딸이 어미의 손으로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것을 보면 친정어머니는 흐뭇했을 것이다. 옛말에,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나 지금이나 인류에게 사랑의 방향은 중력의 방향과 같아 ‘내리사랑’이어서 자신의 부모보다 자식에게 쏠리기 마련인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계를 둘러봐도 부인할 수 없으니 출가한 딸과 사위와 외손주에게 향하는 애틋한 마음의 물결은 급히 흐를 수밖에 없으리라.


펭귄이 혹한에 얼어버려 부화할 수 없는 자기 알을 계속 품고 있듯이, 오늘날은 전통사회가 아님에도 어미의 마음은 여전해 출가한 딸을 늘 안쓰럽게 여기기 마련인가 보다. 그리고 장모는 자신의 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해서 사위에게 누구보다 잘해주고 싶을 테다. 사위가 행복해야 딸도 행복해진다고 여기는 것이 틀린 생각은 아니겠지만, 잘해주려는 마음이 앞서 조심스러워질 때 장모에게 사위는 백년지객이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사위도 자식이니 아들처럼 대해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 요구는, 말은 다정하지만 장모에게는 또 다른 부담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로하신 장모일수록 그분에게 사위는 어쩔 수 없는 백년손님인데 아들처럼 대하기까지 해야 하니 얼마나 힘드시겠는가. 그러니 사위는 장모를 어머니와 같이 공경하고 장모는 마음이 가는 대로 사위 대접을 하면 될 테다. 좋든 싫든 우리 사회에서 처가의 풍경이 그러하니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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