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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자란 아이가 '사랑의 매' 더 신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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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8일 15:00 프린트하기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뭔가 실수를 저지르거나 잘못했을 때마다 맞았던 기억이 있다. 옆집에 살던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발가벗겨진 채로 문 앞에 서있기도 했다. 한 번은 중학교 자습시간에 뒤에 앉은 친구가 뭘 물어봐서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따귀를 때렸다. 상황 판단이 안 되어 채 반응하지도 못하던 내 눈 앞엔 자기를 무시하냐며 씩씩거리던 교사가 있었다.

 

팝뉴스 제공
GIB 제공

또 다른 선생님은 출석부로 퍽 소리가 나게 아이들의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체육교사였던 담임 선생님 한 분은 어디서 구한 건지 알 수 없는 긴 막대로 남자 아이들이 엉엉 울 정도로 패기도 했다. 머리채를 잡던 교사도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데에 정당한 이유 같은 건 애초에 성립하지 않지만 어떤 이유로 그렇게 때린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교실이 소란스러웠던 것? 시험을 잘 못 봤던 것?


고등학교 때 한 교사는 한자 1800자를 외우지 못했다고 (테스트도 정말 이상해서 1800자 중 어떤 글자를 보여주고 3초 안에 무슨 글자인지 떠올리지 못하면 탈락이었다.) 아침 7시인가에 나오게 해서 전교를 오리걸음으로 돌게 했다. 오리걸음을 하던 친구 한 명은 그로 인해 허리 디스크가 생겨 수술을 받고 학교를 몇 달 동안 쉬었어야 했다. 당시 허리디스크를 얻었던 친구는 지금도 허리가 좋지 않고 혹시라도 그 교사를 다시 만난다면 8번 디스크를 밑장빼기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진 모르겠지만, 나의 10대는 야만과 폭력들이 일상 속에 별 일 아니라는 듯 섞여 있었다. 내게 학교 폭력은 아이들 간의 싸움이라기보다 교사들의 폭력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아이들 사이의 폭력은 어쩌면 적어도 일부 폭력 가정, 폭력 교사들로부터 온 것은 아닐까? 본인들은 폭력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는 일을 일삼으면서 아이들에게 ‘하지만 너희는 항상 사이 좋게 지내야 하고 절대 폭력을 써선 안 된다’고 하면 설득력이 없는 법이니 말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이 신체적 고통, 불안과 공포를 통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없애려는 방식의 교육은 별 효과가 없음을 보여주었다(Ferguson, 2013). 효과가 나타나도 공포 자극이 존재할 때에만 나타나는 등 ‘단기적’이고 (무서운 사람이 있을 때만 조심한다던가), 정작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지 않고 또 어떤 행동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대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진짜 변화를 이끄는 효과는 적다는 발견들이었다(Gershoff, 2013). 또한 체벌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들도 있었다(Gershoff, 2002).

 

GIB 제공
GIB 제공

최근 미국에서 약 3300명의 어린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Altschul et al., 2016). 연구자들은 아기가 태어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살, 세살, 다섯 살 때 네 번에 걸쳐 양육자의 체벌 유무와 체벌의 빈도, 아이들의 공격성 (반항, 짜증이나 화를 잘 냄, 이기적, 성미가 급함 등)을 측정했다.


그 결과 아이의 기본적인 성격, 건강상태, 성별, 양육자의 스트레스, 양육자의 정신건강 상태, 인종, 양육자의 나이, 교육 수준, 언어 능력, 소득, 가족 구성 등과 상관 없이 양육자의 체벌 빈도가 많을수록 아이의 공격적 성향이 높은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 양육자가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따듯한 말이나 칭찬을 잘 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아이들의 사회성(공감능력,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 관계에서의 적극성, 높은 인기 등)이 높은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연구에서는 양육자의 50% 정도가 매가 가장 효과적인 양육법이라고 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연구자들은 매보단 부모 쪽의 사랑과 이해심, 끈기, 차분함, 대화를 통한 설득이 아이들을 더 행복하고 사회성 좋은 아이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폭력이 적고 사랑과 격려가 좀 더 많았더라면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까? 적어도 10대 시절이 좀 덜 험난했을 거 같긴 하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로 어렸을 때 맞고 자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랑의 매’를 더 옹호한단 보고가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한 고생을 ‘나쁘고 아무 의미 없었던 일’로 생각하기보다 어떻게든 좋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고생을 했는데 그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힘빠지는 일인가. 그러다 보니 불합리한 일을 ‘원래 그게 옳다’거나 ‘(맞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진 모르지만) 맞았던 게 확실히 도움이 됐다’는 등의 합리화 또는 이상화(idealization)를 하게 된다.


또한 겪어본 만큼 안다고 ‘매’ 이외의 교육 방식을 경험해 본 적 없다면 자연스레 ‘교육 = 매’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더 좋은 교육법들이 아주 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다음 세대는 아직 더 행복하고 건강한 유년시절을 보낼 기회가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조금은 달리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 참고문헌
Altschul, I., Lee, S. J., & Gershoff, E. T. (2016). Hugs, not hits: Warmth and spanking as predictors of child social competence.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78, 695-714.
Ferguson, C. J. (2013). Spanking, corporal punishment and negative long-term outcomes: A meta-analytic review of longitudinal studies. Clinical Psychology Review, 33, 196–208.
Gershoff, E. T. (2002). Corporal punishment by parents and associated child behaviors and experiences: A meta-analytic and theoretical review. Psychological Bulletin, 128, 539–579.
Gershoff, E. T. (2013). Spanking and child development: We know enough now to stop hitting our children. Child Development Perspectives, 7, 133–137.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부탁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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