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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17) 공생, 기생 혹은 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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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5일 10:00 프린트하기

네 줄 요약
1. 공생은 서로 이득을 얻는 안정적 관계다.
2. 기생은 한쪽만 이득을 취하는 관계인데, 끝없는 경쟁을 유발한다.
3. 악의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피해를 주겠다는 것으로, 불안정 전략이다.
4. 이타주의는 장기간에 걸친 지연 시간 공생으로, 인류가 이룩한 독특한 안정 전략이다.
 

 


모 교회에서 자선 바자회를 했다고 합니다. 아주 쓸 만한 옷들이 상당히 많이 기증되었는데, 헐값에 좋은 옷을 구하려는 쟁탈전이 엄청났다고 합니다. 아주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죠. 바자회 직전 예배에서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였는데 말이죠. 흥미로운 일입니다. 자신의 것을 내놓아 바자회를 여는 이타적인 마음도, 좋은 물건을 남보다 먼저 쟁탈하려는 이기적인 마음도 모두 한 인간이 공유하는 본성입니다.

 


공생


공생이란 서로 이득을 주는 관계를 말합니다. 같은 종 내에 존재하기도 하고, 다른 종 간에 상호 협력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닭을 키웁니다. 물론 계란과 고기를 얻으려는 ‘이기적인’ 목적이죠. 하지만 닭도 덕분에 사료를 얻어먹으며 크게 번성했습니다. 사실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닭의 숫자는 190억마리에 이릅니다. 인간의 수보다 더 많습니다.


인간은 닭을 키워 잡아 먹으니, 닭이 희생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닭을 키우기 위해서 ‘희생’되는지 모릅니다. 닭 세계의 번영을 위해서 인간이 치른 희생은 엄청납니다. 수많은 축사와 사료, 노동력, 종종 찾아오는 조류 독감의 위험성 등이죠. 금세기 초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도 닭이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이쯤 되면 닭이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애매합니다. 


사실 닭과 인간의 공생은 인위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상리공생이라고 하긴 어렵죠. 그러나 인류 사회에서 일어나는 공생은 대부분 문화적인 영향을 받아 일어납니다. 자연적 공생과 인위적 공생을 구분하기 쉽기 않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의 생존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그 유전자는 해당 개체의 몸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공생은 자신의 몸을 넘어서는 넓은 의미의 ‘이기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상리공생 관계는 자연에서 아주 흔하게 관찰된다. 꿀벌은 꽃에서 영양소를 얻고, 꽃은 꿀벌을 이용해서 수분한다. - John Severns 제공
상리공생 관계는 자연에서 아주 흔하게 관찰된다. 꿀벌은 꽃에서 영양소를 얻고, 꽃은 꿀벌을 이용해서 수분한다. - John Severns 제공

기생


종 간 혹은 종 내 협력 행동과 달리, 기생은 한쪽에만 비용을 전가하는 오롯이 ‘이기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폐렴균은 인간의 몸에 침범하여 자신을 복제할 뿐 아니라, 기침과 가래를 유발하여 타인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숙주를 조종합니다. 일종의 ‘확장된 표현형’입니다. 폐렴 환자가 기침을 하는 것은 ‘자기 방어’일 수도 있지만, 폐렴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일 수도 있죠.


기생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기생을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예를 든 인간과 닭의 관계도 그렇죠. 어떤 의미에서는 한쪽(인간)이 다른 쪽(닭)을 잡아먹으므로 기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란만을 취하는 경우는 좀 애매합니다. 어차피 암탉은 매일 낳는 알을 모두 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닭은 큰 손해를 입지 않고, 인간만 이득을 취하게 되는 편리공생이 일어납니다. 알을 잘 낳는 닭에게 더 좋은 사료를 주고 널리 번식시키면 상리공생이지만, 사위가 찾아왔다고 씨암탉을 잡아먹으면 포식-피식 관계가 될 것입니다.


동물 종의 약 절반은 생애 중 한번 이상 기생 단계를 거칠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숙주 역할도 하게 됩니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입니다. 물론 최대한 기생하되, 타 개체의 기생은 막아야 유리합니다. 기생충과 숙주의 치열한 진화적 경주가 시작되죠. 이를 어려운 말로 ‘붉은여왕 가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곱은 빨리 달려야 하고.”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두 나라가 치열한 군비경쟁을 했지만, 결국 어느 쪽도 절대적 우위에 서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죠. 하지만 경쟁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기기 위한 경쟁이었지만, 최소한 ‘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결국 한계점에서 군비경쟁이 끝나고, 점점 공생적 관계로 타협하게 되기도 합니다.

 

모기는 숙주의 피를 빨아먹고, 종종 해로운 병원체도 옮긴다. 그러나 숙주가 얻는 이득은 전혀 없다. 이러한 형태의 기생 관계는 지속적인 군비경쟁을 유발한다. - JJ Harrison 제공
모기는 숙주의 피를 빨아먹고, 종종 해로운 병원체도 옮긴다. 그러나 숙주가 얻는 이득은 전혀 없다. 이러한 형태의 기생 관계는 지속적인 경쟁을 유발한다. - JJ Harrison 제공

악의


악의는 아주 드물지만, 가끔 관찰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바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네가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것입니다. 한겨울에 헛간에서 얼어 죽은 두 마리의 염소 이야기가 있습니다. 둘이 껴안았다면 추위를 견딜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따뜻해지는 것이 싫어서 차라리 추위를 감당하겠다는 의지, 즉 악의로 인해 둘 다 얼어 죽고 말았다는 우화입니다.


물론 해밀턴의 법칙에 의하면 악의는 진화하기 어렵습니다. 악의를 가진 개체는 점점 생존 가능성이 줄어들테니 말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상대 개체와의 유전적 관련성이 음수일 경우에는,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는 ‘악의적 행동’이 흔히 관찰됩니다. 시기와 질투로 인해서 본인이 손해를 입더라도, 상대에게 해코지를 하고 말겠다는 경우가 드물지 않죠.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쇼트트랙 경주를 들어보죠. 상대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면 보통 자신도 넘어집니다. 둘다 우승은 어렵게 되고,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얻게 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적인 방해가 종종 일어납니다. 첫째 악의적 행동의 결과를 잘못 계산하는 경우입니다. 상대만 무너뜨리고 자신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득의 가능성을 과다하게 계산하는 것이죠. 둘째 악의적 위협입니다. 악의적 행동을 몇 번 보이고 나면, 경쟁자들은 자신을 슬금슬금 피하게 됩니다. 굴복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악의는 자연의 세계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대개는 잠재적 이익을 오인하거나 혹은 악의적 위협 효과를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 뉴욕타임즈 Serge Block 제공
악의는 자연의 세계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대개는 잠재적 이익을 오인하거나 혹은 악의적 위협 효과를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 뉴욕타임즈 Serge Block 제공

지연 시간 상리공생, 즉 협력의 힘


 인간은 협력의 동물입니다. 인류가 일군 엄청난 문명은 모두 협력의 결과죠. 이는 단순한 공생의 결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호혜적 이타주의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네가 나에게 뭔가를 해주면, 나도 뭔가를 해주겠다는 계약’이죠. 이러한 계약을 통해서 인류는 복잡한 인간 관계를 만들고, 그러한 관계를 통해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호혜적 이타주의는 일종의 변형된 공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지연 시간 상리공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즉 당장의 손해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자신 혹은 자신의 가족과 친지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연 시간 상리공생은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념, 신앙, 조국,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집단을 결속시키고, 구성원 모두에게 큰 이익을 줍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연 시간 상리공생’의 확장된 표현형이죠. 비록 나는 죽더라도, 나와 연결된 모든 이에게 큰 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오직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놀라운 본성입니다. 
 

보노보 침팬지 무리. 보노보 사회는 아주 평화롭다. 수컷과 암컷의 갈등은 드물고, 수컷은 새끼들에게 친절하다. 위계질서는 있지만,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투쟁보다는 협력적 관계를 유지한다. - W. H. Calvin 제공
보노보 침팬지 무리. 보노보 사회는 아주 평화롭다. 수컷과 암컷의 갈등은 드물고, 수컷은 새끼들에게 친절하다. 위계질서는 있지만,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투쟁보다는 협력적 관계를 유지한다. - W. H. Calvin 제공

에필로그


호혜적 이타주의는 호모 속에서 독특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최소한 수백 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의 유전자에게는 긴 시간, 종종 몇 세대를 거쳐야만 돌려받을 수 있는 지연시간 상리공생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사람을 배척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장사꾼처럼 당장의 이리에만 밝은 사람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위인들의 자기 희생적 행동은,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적응적인 전략입니다.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희생과 공감의 유전자가 이를 증명합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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