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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노세보 효과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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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7일 15:00 프린트하기

우리가 약을 먹을 때 겪는 부작용은 대부분 역위약(노세보) 효과 때문이다.
- 조 머천트


지난해 여름 ‘기적의 치유력’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과학 관련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일탈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원서 제목은 그저 ‘Cure(치유)’로 의학박사 출신의 과학 저널리스트 조 머천트가 저자다. 이 책은 매뉴얼에 따른 치료(treatment)에만 매몰돼 있는 현대의료체계에서 환자 개인의 고유성과 삶의 질을 고려한 치유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몸이 이상해 큰 병원에 갔다가 여러 검사를 받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다면 오늘날 치료라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것이다.


물론 이처럼 환자들이 컨베이어벨트 위의 물건처럼 취급되는 현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있다. 제한된 의료진이 그 많은 환자들을 ‘처리’하려면 효율적인 시스템을 도입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환자가 느끼는 불안과 소외감은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대가라는 것이다. 사실 의사라고 예외는 아니라서, 환자가 됐을 때 이런 경험을 한 뒤 그동안 환자들을 무심하게 대했던 자신을 반성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날 병의 상당 부분이 만성질환이다. 그런데 만성질환 가운데 신경계와 면역계, 내분비계 쪽인 경우 환자의 심리(마음)가 병의 증세나 회복속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마음은 고려 대상이 아닌 오늘날 의료체계가 문제라는 것이다. 


‘기적의 치유력’의 주제는 한 마디로 현대 의료체계가 환자 개인의 ‘마음의 힘’을 제대로 인식해 치료 과정에 반영한다면 오히려 치료도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환자 역시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가 가짜 약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여전히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플라시보 약이 필요할 경우 인터넷에서는 살 수 있는데, 사진 속의 제품은 설탕으로 만든 작은 알약이 들어있다. - Universal Placebos 제공
환자가 가짜 약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여전히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플라시보 약이 필요할 경우 인터넷에서는 살 수 있는데, 사진 속의 제품은 설탕으로 만든 작은 알약이 들어있다. - Universal Placebos 제공

정직한 위약도 효과 있어


책에서 저자가 ‘마음의 힘’의 대표적인 사례로 드는 게 바로 플라시보(placebo), 즉 위약(僞藥) 효과다. 2장 ‘상식을 뒤집는 생각’에서 플라시보 효과를 다루고 있는데 부제가 ‘환자의 해석이 중요한 순간’이다. 즉 환자가 치료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치료의 효과가 달라지는 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현대 의학은 플라시보 효과를 인정하고 있다. 임상시험을 할 경우 대조(비교)군은 치료를 받지 않는 게 아니라 가짜 치료를 받는다. 즉 진짜 약과 똑 같이 생긴 가짜 약을 먹거나 가짜 수술을 받는다. 특히 투약의 경우 피험자는 물론 연구자조차 누가 진짜 약을 먹고 누가 가짜 약을 먹는지 모른다. 이를 이중맹검이라고 부르는데, 평가에 편견이 개입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막는 조치다.


그런데 문제는 때로 플라시보 효과가 너무 강력해 의료진조차 크게 당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몸에 침입한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 임상에서는 플라시보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진통제나 항우울제 임상에서는 진짜 약이나 위약이나 유의적인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실 이런 얘기야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책에는 필자가 생각지도 못한 위약 효과도 소개돼 있었다. 즉 환자들이 위약인 줄 알고 복용해도 약효가 있다는 것이다. 과민대장증후군, 우울증, 편두통 환자들을 대상으로 캡슐에는 유효성분이 들어있지 않지만 ‘심신 자가 치유 과정’을 통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해준 뒤 위약을 복용하게 했더니 아무 치료도 받지 않은 환자에 비해 효과가 뚜렷했다. 그리고 약을 끊자 증상이 재발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에는 위약을 판매하는 사이트도 있다(구글에서 ‘universal placebos’를 검색해보라). 저자는 이처럼 대놓고 가짜라는 걸 알린 경우를 ‘정직한 위약’이라고 불렀다.


지난해 12월 학술지 ‘통증(Pain)’에는 만성요통환자를 대상으로 한 정직한 위약 임상 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포르투갈의 연구자들은 석 달 이상 통증을 호소한 만성요통환자들을 대상으로 정직한 위약 효과를 보는 임상 참여자를 모집했다. 참가자들은 위약 효과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임의로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쪽만 3주치 위약을 받았다. 약통에는 ‘위약(placebo pills)’과 ‘하루 두 번 복용’이라는 문구가 잘 보이게 적힌 라벨이 붙어있다.


3주 뒤 참가자들을 불러 평가한 결과 위약을 복용한 그룹은 빈손으로 돌아간 그룹에 비해 통증 지수(강도에 따라 0에서 10까지)가 1.5점 낮았고 요통으로 인한 거동불편함도 3점 가까이 낮았다. 한편 이날 대조군에게도 위약을 주고 3주 뒤 조사한 결과 역시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다.

 


‘아는 게 병’인 경우


약효에 대한 기대가 진짜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도 효과가 나타나게 한다면 부작용에 대한 걱정 역시 진짜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부작용을 겪게 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을 노세보(nocebo), 즉 역위약 효과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심혈관계질환 치료제인 아테놀올(atenolol)을 처방받은 환자들을 추적조사한 결과가 있다. 즉 이 약물의 실체를 모르고 복용한 환자 그룹과 부작용으로 발기부전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은 그룹으로 나눈 결과 전자의 발기부전 비율은 3.1%인 반면 후자는 31.2%로 무려 열 배나 됐다.


책에는 노세보 효과와 플라시보 효과를 동시에 본 실험 사례도 나온다. 즉 등산을 할 때 고산증으로 두통이 심할 거라는 경고를 들은 그룹은 실제 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이는 단순히 심리적 현상이 아닌 걸로 밝혀졌다. 즉 이들 그룹에서 혈관을 확장하는 작용을 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수치가 더 높았다. 경고를 들은 사람들의 불안감이 산소 공급에 도움이 되는 생리변화를 증폭시켰고, 지나친 혈관확장이 심한 두통을 부른 것이다. 그 뒤 아스피린이라며 위약을 줬는데, 흥미롭게도 경고를 들은 그룹에서만 프로스타글란딘 수치가 떨어지고 두통이 완화됐다.


병원에서 의료진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특히 통증 관련 언급이 그렇다. 드라마에서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이다.


“꽤 아플 겁니다. 정 못 견디겠으면 얘기하세요.”
(잠시 뒤) “선생님, 못 참겠어요. 너무 아파요..”
(머뭇거리며) “아직 치료 시작도 안 했는데요...”

 

약물이 비쌀수록 플라시보 효과나 노세보 효과도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독일의 연구자들은 비싼 약물 치료를 받았을 때 부작용에 대한 노세보 효과가 더 큰 이유를 설명하는 뇌의 활동을 포착했다. 이에 따르면 전두엽의 rACC와 뇌간의 PAG, 척수가 관여해 통증이 증폭된다. - 사이언스 제공
약물이 비쌀수록 플라시보 효과나 노세보 효과도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독일의 연구자들은 비싼 약물 치료를 받았을 때 부작용에 대한 노세보 효과가 더 큰 이유를 설명하는 뇌의 활동을 포착했다. 이에 따르면 전두엽의 rACC와 뇌간의 PAG, 척수가 관여해 통증이 증폭된다. - 사이언스 제공

비싼 약일수록 노세보 효과도 커


약물의 가격도 심리적 효과가 있다. 복용하는 약이 비쌀수록 약효가 더 크고(플라시보 효과) 한편으로는 부작용도 더 크다(노세보 효과). 과거 설탕이 귀했을 때 유럽에서는 설탕이 약물로 처방됐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이해가 안 되지만 당시는 정말 약효(플라시보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효과는 화장품에서도 두드러진다. 20여 년 전 필자가 한 화장품 회사 연구소에서 일할 때 화장품 가격이 원가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나마 용기(case)는 저가제품과 고가제품에서 제작 단가 차이가 꽤 나지만 내용물(원료)은 정말 거기서거기다. 물론 고가 화장품에 유효성분이 몇 가지 더 들어가지만 워낙 병아리 눈물 만큼이라(많이 넣으면 제품이 불안정해지고 부작용(피부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평가를 보면 고가 화장품수록 효과(미백, 주름개선)에 만족해한다. 반면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 역시 고가 화장품 쪽이 더 많다. 이런 결과에 실제 제품 자체(피부에 바르는 내용물)가 얼마나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크면 부작용도 크다’는 생각을 하는 사용자들이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고 노세보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는 게 아닐까.


학술지 ‘사이언스’ 10월 6일자에는 약물의 가격에 따른 노세보 효과에 관여하는 뇌의 회로를 밝힌 연구결과가 실렸다. 독일 함부르크-에펜도르프의대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에게 아토피 환자의 피부 가려움을 완화하는 두 크림의 효과를 비교하는 임상을 실시한다며, 두 크림에 들어가는 유효성분은 동일하지만 제조사에 따라 가격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부작용으로 열감(화끈거리는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두 제품에서 그 차이를 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시험참가자들은 왼쪽 팔뚝 안쪽에 두 크림 가운데 하나와(임의로 지정) 비교 크림(성분이 없는)을 바른다(실제로는 모두 성분이 없는 같은 크림이다). 크림을 바르고 30분 뒤 통증 평가를 하는데 이때 몰래 아토피 크림을 바른 곳엔 열을 가한다. 평가 결과 비싼 아토피 크림을 바른 그룹이 열로 인한 통증을 더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노세보 효과가 두드러졌다.


연구자들은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의 활동을 분석해 비싼 크림을 바른 쪽이 노세보 효과가 큰 이유를 알아봤다. 그 결과 싼 크림을 바른 쪽에 비해 전전두엽의 입쪽전방대상피질(rACC)이라는 부위의 활성도가 낮은 반면 뇌간의 수도관주위회백질(PAG)의 활성도는 높았다. 그리고 통증 신호가 전달되는 부위인 척수의 경우 예상대로 활성도가 높았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즉 두 제품 가운데 비싼 크림을 바른 사람들은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할 경우 rACC의 활성이 낮아지고 그 결과 rACC의 억제 작용에서 벗어난 PAG의 활성이 커지면서 척수의 통증 회로도 활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노세보 통각과민 효과에 관여하는 이 회로를 ‘rACC-PAG-척수 축’이라고 이름 붙였다. 즉 제삼자의 눈에는 노세보 효과가 엄살처럼 보이지만 당사자는 정말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서울대병원이 진료시간을 5분에서 15분으로 늘리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서울대병원은 아니지만 수년 전 한 대학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예약시간표가 정말 5분 단위로 짜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로또에 뽑힌 환자들’(예전에도 치료받기 어려웠는데 3분의 1로 줄었으니)은 권위 있는 의료진의 세심한 치료에 자기 의견도 얘기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그 결과 치료 자체의 질이 높아지는 건 물론이고 플라시보 효과도 최대로 누릴 수 있고 반면 노세보 효과는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병원이야 국립이니 이렇게 하다 적자가 나도 세금으로 메워주니 무슨 걱정이냐는 냉소적인 시선도 있지만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 머천트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온전히 이해할 날이 올 것이며, 인간적인 치료가 사치품이 아니라 핵심 원칙이 되리라 믿는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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