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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되짚어보기] ‘농작물’ 진화 시작은 3만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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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6일 15:00 프린트하기

언론에는 많이 소개되지 않았지만, 논문 한 편이 조용히 출판됐습니다. 농작물의 진화가 시작된 때가 생각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연구 결과입니다. 언제냐고요? 무려 3만 년 전입니다. 빙하기가 한창 기세를 떨치던 시기로, 북반구 절반은 얼음에 덮여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의 상식과 부딪힙니다. 여러 연구를 통해, 농업은 빨라야 1만 2000년 전 전후에 시작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농작물의 진화도 그 무렵에 시작됐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새로운 연구가 맞다면 무려 1만 년 이상 앞당겨지는 셈이지요. 정말일까요. '뉴스 되짚어보기'에서 맥락을 짚어봤습니다.

 

 

농업의 시작은 과연 언제였을까?
농업의 시작은 과연 언제였을까? '농작물'의 생물학적 진화 자체는 훨씬 오래 전이라는 연구ㅜ 결과가 나왔다. - DIRECTMEDIA-publicdomain 제공

●리뷰 1 : 농업의 시작은 1만 2000년 전

 

2011년 봄, 전세계에서 농업의 기원을 연구하는 유전학자와 고(古)식물학자, 고동물학자, 고지질학자 등 25명의 학자들이 모인 학회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렸습니다. 농업과 가축 사육의 역사가 언제 시작됐는지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를 나누고 결론을 내려보기 위해서였지요.

 

논의된 내용은 이후 보강돼 2014년 봄에 논문으로 나왔는데요, 이에 따르면 주요 농작물이 경작되기 시작한 때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1만2000~1만1000년 전이었습니다. 또 농업은 어느 한 장소에서 발생해 차츰 전세계로 퍼진 게 아니라, 지구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주변으로 확산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장 빨리 농사를 시작한 곳은 흔히 ‘비옥한 초승달지대’라고 부르는 서남아시아 지역으로 밀과 보리, 렌틸콩을 처음 경작했습니다. 하지만 종류에 따라서는 다른 지역에서 가장 먼저 농작물이 된 식물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쌀 같은 경우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약 1만~8000년 전에 처음 경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가장 오래된 쌀의 연대가 약 8000년 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옥수수는 북아메리카에서 약 1만~9000년 전부터 경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http://www.pnas.org/content/111/17/6139
http://www.pnas.org/content/111/17/6190

 

주요 농작물이 탄생한 지역과 시기. 녹색 부분이 초기 농작물(밀, 보리, 쌀 등)이 탄생한 지역이고, 보라색은 시기적으로 조금 뒤에 탄생한 다른 작물의 발상지다. 화살표는 농업의 전파 경로다. - PNAS 제공
주요 농작물이 탄생한 지역과 시기. 녹색 부분이 초기 농작물(밀, 보리, 쌀 등)이 탄생한 지역이고, 보라색은 시기적으로 조금 뒤에 탄생한 다른 작물의 발상지다. 화살표는 농업의 전파 경로다. - PNAS 제공

 

●리뷰 2 : 농업 초창기를 해부하다

 

농업의 연대를 밝히는 연구는 기본적으로 고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합니다. 고식물학자들은 과거의 유적에서 식물 잔해를 찾은 뒤, 이들이 어떤 종이고 어떤 비율로 존재하는지 등을 형질을 바탕으로 알아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2013년 7월 ‘사이언스’ 논문은 서남아시아 지역의 지층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농업 초기 ‘농작물들의 흥망성쇠’를 상세히 분석했습니다. 흥미 있는 분들을 위해 조금만 설명해 보면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1만2000년 전쯤의 지층에서 토양 203L를 분석해 2만 1000개의 생물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상들의 식단을 재구성한 결과, 1만 1700년 전부터 1만 700년 전 사이에는 야생 보리가 많이 발견되고 야생 밀이 조금 발견됐습니다. 이 무렵 렌틸콩 경작을 짐작케 하는 흔적이 나오고, 이후 보리의 비율이 줄어들다 야생의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에머밀이라는, 초창기 경작용 밀이 등장합니다. 9800년 전의 일이죠. 비록 약 1만 년 전 전후의 일이지만, 인류가 어떤 식물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유행을 알 수 있는 연구입니다.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41/6141/65?sid=72a295d0-e890-408a-a179-5179db46d209

 

●리뷰 3 : 농업시대 초기 인구이동 경로 밝힌 고(古)게놈학

최근에는 유전자 해독, 분석이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지요. 재미있게도 대상이 농작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특히 고게놈학이 발달하면서, 화석이나 유골에서 직접 과거에 살던 사람의 게놈을 해독해 그 안에 숨은 유전자의 변화 양상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초기 농업을 주도했던 시기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유골에서 DNA를 읽어내고 이를 현대인의 DNA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초기 농민들이 어디로 이주해 어떤 사람들과 섞였는지를 DNA 변화를 통해 추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정보를 잘 재구성하면, 최초의 농경이 생긴 시기에 인류가 어떻게 퍼지면서 농업이라는 ‘혁신’을 전파했는지 더 자세히 밝혀낼 수 있습니다.

 

고게놈학 분야의 석학인 데이비드 라이히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은 2016년 44명의 서남아시아인 화석(연대 1만4000~3400년 전)에서 일부 DNA의 변이를 측정하는 연구를 했습니다. 또 1만 년 전에 살았던 여성 한 명의 게놈을 해독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최초로 농업이 발생한 지역의 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파헤칠 수 있었는데요. 먼저 같은 서남아시아 지역 안에서도 이란 쪽(자그로스 산맥)과 이스라엘-요르단 쪽(레반트 지역)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농업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또, 이들의 후손이 주변으로 이주하면서 농업을 전파했는데, 레반트 지역 농민들이 동아프리카에, 이란 쪽 농민들이 유라시아 북부 스텝 지역에 퍼져 농업을 전파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536/n7617/full/nature19310.html?WT.feed_name=subjects_archaeology

 

 

이번 연구를 주도한 로빈 앨러바이 영국 워릭대 교수. - 위릭대 제공
이번 연구를 주도한 로빈 앨러바이 영국 워릭대 교수. - 위릭대 제공

 

●리뷰 4 : 3만 년 전, 농작물의 탄생

 

이제 이번 연구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로빈 앨러바이 영국 워릭대 생명과학대 교수팀은 10월 23일, ‘영국왕립학회 철학회보B’ 온라인판에 “곡식의 진화가 최대 3만 년 전부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만 2000년 전에 최초의 농업이 등장한 것과 언뜻 배치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팀은 ‘농업의 시작’이 아니라 ‘곡식 진화의 시작’ 시점을 추정했거든요.

 

자연에 이미 존재하던, 볼품없이 작은 열매를 맺는 풀들은, 인간의 손길을 만나 점차 지금 우리가 아는 곡물로 진화해 갔습니다. 이 때 진화는 생명체의 유전자 구성이 변화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전자 구성이 어느 정도 변화했을 때를 ‘농사’의 시작으로 볼지는 무척 애매한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야생의 밀이나 보리가 서서히 오랜 세월에 걸쳐 농업용 밀과 보리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집약적 농업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서서히 등장했습니다. 1990년대에 이야기되던 '농업의 느린 탄생'입니다. 이 말은, 집약적 농업이 등장하기 이전에 야생 상태에서 막 벗어나기 시작해 인간의 손을 타기 시작한 농작물 원종은 고고학적 증거보다 한참 전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연구팀은 이런 원종의 등장 시점을 수학 모형을 이용해 추정했습니다.

 

야생 원종과의 구분을 위해, 연구자들은 자연 상태에서 씨앗이 흩뿌려진 패턴(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멀리 뿌림)과 인간이 개입했을 때의 패턴(채집을 통해 인위적으로 ‘선택’했을 때로, 식물은 멀리 씨앗을 흩뿌릴 필요가 없어져 이삭의 형태로 열매를 품는다)을 비교했습니다. 그 뒤 실제로 농업 발상지 유적에서 씨앗이 흩뿌려진 형태를 조사하고, 이를 통해 이삭을 품는 유전자의 출현 빈도를 계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체적으로 개발한 수식을 통해 ‘최초’로 이런 유전자가 나타난 시점을 역으로 계산했습니다. 예를 들어 에머밀의 경우 약 1만 300년 전에는 약 26%가 이삭을 지녔는데, 이를 바탕으로 최초로 인간의 선택압이 작용한 때를 역산해 보니 약 1만 8000~2만 5600년 전에 개입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보리(최고 약 2만 년 전), 쌀(1만 3000년 전), 아인코른밀(약 3만 년 전)의 '시작'을 계산했습니다.

 

'최초의 농작물 탄생은 3만 년 전'은 바로 이런 계산에 의한 결과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집약적) 농업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훨씬 이른 시기의 인류는, 비록 일부러 파종과 수확을 하지는 않았지만 ‘채집’이라는 행위를 통해 야생 식물들 일부에게 일종의 인위적 선택압을 가했습니다. 점차 인구밀도가 높아지며서, 이 선택압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다다른 때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 윈난성의 계단식 논. 한 번 시작된 농업은 인류 문명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관여한 동식물의 유전자도 바꿨다. - Jialiang Gao-www.peace-on-earth.org 제공
중국 윈난성의 계단식 논. 한 번 시작된 농업은 인류 문명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관여한 동식물의 유전자도 바꿨다. - Jialiang Gao-www.peace-on-earth.org 제공

 

그 결과 야생 원종 유전자의 변화가 일어났고, 진화로 이어졌습니다. 진화는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변화를 동반하지 않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외형과 생태를 변화시켰습니다. 그 어느 시점에서 인류는 씨를 뿌리고 수확하며 품종을 더 빨리 개량하는 육종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바로, 우리가 아는 집약적 농업의 시작일 것입니다. 농사의 시점을 1만2000년 전보다 이르게 당겨 봐야 할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농작물’의 탄생 시점은 (그게 꼭 3만 년 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앞당겨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겠습니다.

 

http://rstb.royalsocietypublishing.org/content/372/1735/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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