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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28] 우편함: 운명의 향방이 갈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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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8일 16:00 프린트하기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편지는 이메일이 아니라 손편지였던 걸 생각하면 오늘날의 인터넷 문화는 가히 혁명적이지만 이제는 너무 당연하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후로는 이메일조차도 번거로워져 보통 그것은 주로 사무적 용도로나 쓰일 뿐, 사적인 의사소통은 대개 문자메시지나 SNS를 통해 문자나 이모티콘으로 즉각 주고받게 되었다. 그 바람에 의사소통은 신속하고 간결해졌다. 더구나 송신한 메시지의 착신 여부까지 체크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예전으로 치면 한눈에 반한 여학생을 따라가 알아둔 집 우편함에 밤새 쓴 편지를 남몰래 넣어 두고는 아는 것이라고는 명찰의 이름뿐이었던 당사자에게 그 유치한 편지가 전달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어 애태우던 심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GIB 제공
GIB 제공

낯모르는 이의 마음을 나의 우편함에서 발견하는 일은 (받아본 적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쓰여 괜히 멋쩍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을 듯하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받는다는 것은 그가 스토커가 아니라면 언짢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이에게 받는 편지는 기쁘기 그지없을 테다. 그리움을 담아 보낸 편지에 대한 사랑의 화답일 때, 연인이 주고받는 연서(戀書)는 가장 행복한 감정의 흔적이고 표현일 테다. 그런데 간절하고 애틋한 러브 레터가 수년간 번번이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기막힌 노릇일까. 이달 초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읽고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반세기 만에 재회한 연인의 이야기에 대한 기사였다. 그 사연은 이렇다.


1967년, 당시 25세의 김판수 씨는 영국에서 유학하던 중 영화 공부를 하러 덴마크 헬싱외르로 건너가 1년간 유학했다. 그곳 대학에서 그는 22세의 핀란드 여학생 에텔 티칸데르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그해에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여인과 헤어질 때 그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엉엉 울었다니 참 애잔했겠다. 사랑은 이어져 두 사람은 머나먼 이국에서 편지만으로 그리움과 사랑을 주고받았는데 갑자기 김판수 씨가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자행된 유럽유학생간첩단 조작 사건에 엮여 억울한 누명을 쓴 채 5년형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 사실을 몰랐던 핀란드 여인은 여전히 러브 레터를 보냈지만 그 편지는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기사에서는, 영어를 몰랐던 가족이 편지 내용을 몰라 그에게 전해주지 않았다지만, 아마도 편지가 옥살이와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하는 가족의 피해의식 때문이지 않았을까? 혹은 그의 부모가 러브 레터인 줄 알았더라도 엄혹한 현실 앞에서 낯선 외국인과의 사랑이 사치스런 감정이라고 치부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여인의 편지는 수년간 그의 집 우편함에 당도했다.


1973년에 출소하고 나서야 몇 년이나 지난 편지를 가족에게 전달받았지만 김판수 씨는 이미 끊긴 인연의 매듭을 이을 수가 없었다. 9남매의 장남이었던 그는 풍비박산된 집안을 당장 일으켜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도금 기술을 배우고 결혼을 하고 사업에도 성공한 그는 형 집행 후 48년이 지난 2015년 말에야 오랜 기다림 끝에 대법원에서 확정 무죄 선고를 받고 나자 늘 마음속에 간직해둔 첫사랑을 찾았다. 다행히 2년 전에 페이스북을 통해 아득한 옛날 연인 에텔을 찾을 수 있었고 연락도 닿았다. 하지만 에텔의 답신은 1년이나 지나 받을 수 있었다.


“당신을 수천 번도 더 꿈꾸었던 나, 김판수예요”라고 보낸 메시지를 받은 그녀는 1년 후에야 이렇게 답신했다.


“나는 오랫동안 당신의 페이스북 메시지에 답장하는 것을 망설였어요. 왜냐하면 내 인생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어요. 나는 한 번도 성공적인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고, 정상적인 가족생활도, 또 좋은 직업도 누려본 적이 없어요. 홀로 있다는 것이 내 삶의 지속적인 벗이에요. 아이 둘도 내가 혼자서 키웠어요.”

 

GIB 제공
GIB 제공

마침내, 이국의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한 달 전 코펜하겐에서 재회했다. 22세와 25세에 만나 눈물로 헤어졌던 청춘이 72세와 75세의 노인이 되어 3일간 이미 베어져버린 나무 둥치의 나이테를 어루만졌다. 한창 사랑이 꽃 피던 나무의 그루터기를 바라보며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의 거리가 참 안타까웠겠다.


두 사람의 갈림길에는 두 개의 우편함이 있었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식이 날아드는 둥지였던 두 우편함에 ‘지중해의 물빛 같은’ 파랑새가 덴마크의 꽃을 물고 날아왔다가 한국의 꽃을 물고 날아갔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한국에 날아온 파랑새는 빈손으로 돌아갔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또 해가 가도록 파랑새는 편도로만 날아와 한국의 우편함에 점점 시드는 꽃을 내려놓고는 답신을 우두커니 기다리다가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애틋한 연인을 비극의 결말로 이끈 것은 강제적 이별과 그 상황에서의 오해였다. 추방되었음에도 목숨을 걸고 돌아온 로미오가 묘지에서 줄리엣이 죽은 줄만 알고 그 자리에서 자결하자, 약에서 깨어난 줄리엣이 곁에 누운 그를 보고는 비애에 싸여 자신도 삶을 끊은 이야기 말이다. 핀란드 여인 에텔도 한국에서의 연인 사정을 까맣게 몰랐기에 여러 오해도 했을 테다. 그녀의 애타고 답답한 마음의 그늘이 그녀의 인생을 자꾸 어둠 속으로 인도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모든 사랑이 이국의 우편함으로 모두 옮겨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그녀의 우편함은 내내 텅 비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 우편함에서 누군가의 사랑이 고갈됐을 때 그 운명의 향방은 전혀 달라지기도 할 테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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