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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과학계 기반 닦은 거목...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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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9일 18:10 프린트하기

 

2014년 과학기술포럼 이사장 재직 당시 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 - 동아사이언스 제공
2014년 과학기술포럼 이사장 재직 당시 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 - 동아사이언스 제공

“과학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가장 필요한 때에 과학기술계 리더께서 돌아가셨다. 후배를 위해서도 진심으로 애쓰셨던 분인데 안타깝게 떠나셨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과학기술인의 권익 증진과 과학기술계 화합을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을 하셨는데…….”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김시중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29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국내 1세대 화학자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 왔으며, 1993년 14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활동하며 과학 발전과 과학자 권익 신장에 애썼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 전 장관과 30년 이상 인연을 이어온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전 대한화학회장)는 “김 전 장관님이 병환으로 5달 정도 거동을 못하시고 누워 계셨다”며 “일주일 전 병문안을 갔을 때 5일만에 깨어나신 그분을 뵐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 교수는 “저를 본 김 전 장관님의 첫 마디는 ‘원자력은 어떻게 됐어?’였다”며 “신고리 공론화위의 결정이 나오던 시기 병상에서도 나라에 대한 걱정을 놓지 않으셨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 중장기적 관점 과학정책 펴…생명과학, 해양과학, 우주기술 발전 토대 마련

 

고인은 1932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화학석사를 받았다. 고려대에서 무기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전임강사를 거쳐 교수로 임용됐다. 1992년에는 국내 무기화학 발전의 기반을 조성한 공로로 과학기술상을 수상했다.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 초대 회장(1990~1992년)을 거쳤으며,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동시에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임명됐다. 1994년 12월 개각으로 물러날 때까지 1년 10개월간 국내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했다.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 다목적 실용위성 개발계획, 소프트웨어기술 중장기계획 등 굵직한 과학기술 정책들이 그의 재직 기간 중 빛을 봤다.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한 과학로켓(KSR-I)이 당시 발사됐고, 이어도해양과학기지 구축과 중소형 원자로 개발, 무인탐사정 개발 계획도 이때 진행됐다.

 

특히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 일명 ‘바이오텍 2000’을 수립하는 등 생명공학 산업화의 기틀을 다졌다. 바이오텍 2000은 국내 생명공학 기술 수준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올린다는 계획으로 유전공학, 의용생체공학, 기초생명과학 등 바이오 기술 산업화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기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김 전 장관님은) 자연과학 분야의 화학을 전공하셨음에도 과학을 통한 산업 혁신에 관심이 크셨다”며 “어떻게 하면 과학의 연구개발 성과를 사업화해 생활과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과학계 요직을 두루 거쳐왔다. 대한화학회 제28대 회장 (1993~1994년), 사단법인 과학기술포럼 이사장 (1995~1996년),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 (1996~2001년), 영남대 석좌교수, 국민원로회의 위원, 제14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2002~2005년)·명예회장을 역임했다.

  

14대 국회 경과위의 과학기술처 국감에서 러시아의 핵폐기물 동해 투기와 관련한 질의에 답변하는 김시중 과기처장관 - 동아일보 DB 제공
14대 국회 경과위의 과학기술처 국감에서 러시아의 핵폐기물 동해 투기와 관련한 질의에 답변하는 김시중 전 과기처장관 - 동아일보 DB 제공

● 과학기술은 국가 발전의 주인공…경제 원리에서 벗어나야

 

고인은 한국 과학계의 사정이 어렵던 1955년 처음 고려대의 조교로 연구계에 발을 디뎠다. 고인을 포함해 어려운 시절을 딛고 일어선 당시 과학 기술자의 노력이 지금 우리 사회의 발전에 큰 몫을 담당했다는 평가다. 

 

어려운 환경에서 연구를 시작했던 고인은 늘 "과학자의 꿈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이 있어야 국가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까지도 과학계 원로로서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과학기술 정책을 펴야하며, 과학자가 제대로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고인은 지난 2014년 과학기술포럼 이사장 재직 당시 본지와 인터뷰에서 “국내에서는 과학을 경제의 도구로만 여기고 있다”며 국내 과학계의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임 원장은 "여러 경제 논리로 인해 갈등 구조가 생기면 (고인은) 그 자리에서 늘 계시며 화합을 전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에 기여하자고 독려했다"며 "과학기술계의 분열을 막아 과학인들이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셨던 것"이라며 과학기술계에 대한 고인의 애정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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