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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곳 30] 옥상: 웃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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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3일 10:44 프린트하기

[때와 곳 30] 옥상: 웃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 - amazone.com 제공
[때와 곳 30] 옥상: 웃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 - amazone.com 제공

 

아내가 글 쓰고 남편이 그림 그린 동화 ‘리디아의 정원’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의 평범한 가족 이야기다.

 

할머니, 부모와 함께 시골에 살던 소녀 리디아는 어느 날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빵집을 하는 외삼촌 집으로 떠난다. 아빠의 실직 기간이 길어진 데다 엄마의 옷 수선 일감마저 줄어 생계가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외삼촌의 권유 편지를 받고 가족과 작별한 리디아는 홀로 열차에 올라 낯선 도시의 외삼촌 빵집 건물에서 살게 된다.

 

그런데 외삼촌은 늘 무뚝뚝하다. 그런 외삼촌을 웃게 하기 위해 쾌활하고 바지런한 리디아는 빵집에서 일하는 엠마 아줌마 일을 도와가며 깜찍하고 기특한 일을 계획한다. 시골에서 할머니께서 매번 우편으로 보내주시는 꽃씨들로 3층짜리 빵집 건물 곳곳을 꽃으로 꾸미는 일이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폐품들을 화분 삼아 옥상을 꽃밭으로 꾸미는 일인데, 여름이 되자 이미 빵집 건물 앞, 창가, 외벽 계단에는 나열한 화분들이 만발한다. 삭막한 시절에 이 화려한 꽃들은 손님들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 빵집은 북새통을 이룬다. 그 바람에 외삼촌은 희미한 웃음을 보이고, 드디어 만반의 준비를 마친 독립기념일 오후에 엠마 아줌마 부부와 함께 리디아는 외삼촌을 옥상으로 초대한다.

 

쓰레기장 같던 옥상이 꽃밭으로 바뀐 모습을 본 외삼촌은 놀라고, 며칠 후에는 리디아가 옥상에 초대된다. 리디아와 엠마 아줌마 부부가 옥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외삼촌은 빵집 문 앞에 ‘휴업’이라고 써 붙이고는 꽃잎으로 장식한 멋진 케이크를 들고 옥상에 나타난다. 그것은 리디아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작별의 선물이었다. 리디아의 아빠가 다시 취업했으니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기쁜 편지가 함께 전달됐기 때문이다.

 

그 뒷장을 넘기면 기차역 플랫폼에서 쪼그려 앉은 외삼촌이 조카 리디아를 포옹하고 있다. 이 동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리디아의 정원 중에서 - 윤병무 제공
리디아의 정원 중에서 - 윤병무 제공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의 마음 밭에 꽃씨를 심는 이 동화는 묘사도 대사도 없이 가족에게 부치는 리디아의 편지글로만 씌어져 있다. 그 편지 내용의 풍경을 군더더기 없이 절제해 그려낸 서정적인 수채화는 글과 독립적으로 진행됨에도 완벽한 앙상블을 이뤄낸다.

 

글은 리디아의 예쁜 마음과 당일의 날짜를 드러낼 뿐, 정작 이야기는 그림이 이끌어가는 이 작품을 나는 그림동화의 탁월한 모범으로 평가한다. 편집 구성뿐 아니라 리디아의 담백한 편지글은 표정이 살아 있는 경쾌한 그림과 어우러져 매 쪽마다 독자에게 짠한 감동을 주는데, 그것은 슬픔을 담담하게 마주하고 어둠을 밝음으로 치환하는 원예사 소녀의 대견한 마음결에서 비롯된다. 가족에 대한 정다운 사랑과 외삼촌에 대한 환한 소망이 종래에는 행복한 꽃으로 피어나기까지, 리디아는 독자의 손을 잡고 그 마음들을 질박한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다.

 

대단원에서 옥상의 꽃밭이 펼쳐지는 순간 빙그레 웃는 나 같은 독자는 그동안 내가 바로 리디아의 외삼촌이었음을 알아차리고 그림 속에 만발한 꽃들에 가만히 눈길을 주게 된다. 그러고는 시나브로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허망한 다짐을 한다.


만무한 일이겠지만, 내가 만약 소형 건물의 주인이 된다면 나는 그곳 옥상에 매일 올라가 이른 아침에는 여명을 마중하고 저물녘에는 노을을 배웅할 테다. 옥상 면적의 7할을 황토로 채우고 ㄷ자로 화단을 만들어 단아한 진달래 한 그루 심고, 도라지꽃 들국화 패랭이 봉숭아 채송화 베고니아 수선화 백합 튤립 장미 꽃들을 가꿔 봄에서 가을까지 그곳에서 휴식할 때마다 눈호강을 할 테다. 식탐의 손으로는 두 평쯤 마련한 자리에 상추 고추 쑥갓 오이를 키우고 한쪽에는 파라솔을 하나 장만해 탁자 위에 초록만으로 소박한 점심상을 차릴 테다. 그 옆에는 돌절구를 놓아 물을 채우고 옥잠화를 띄워 건물 위를 지나가는 새들이 품위 있게 갈증을 풀 수 있게 할 테다. 건물 외벽은 담쟁이덩굴로 옷 입혀 가을에는 건물을 단풍 들게 할 테다.

 

GIB 제공
GIB 제공

하지만 현실은 이런 상상의 끝을 쓴웃음으로 마감시킨다. 그 이유는 물론 내 경제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내 일터였던 여러 건물 어느 곳에도 옥상을 그런 식으로 꾸며놓은 데는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그곳은 삭막한 도시 풍경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축소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낮에도 근무한 직장의 5층짜리 건물에도 옥상이 있지만 50평 남짓의 그곳에는 아마도 편법으로 증축했을 옥탑 사무실까지 딸려 있어서 근접하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는 공간에는 콘크리트 바닥만 덩그마니 깔려 있어서 굳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보통의 도시에는 (조금 과장하면)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녹지 공간이 없다는 것은 도시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도 안다. 그렇다고 녹지를 만들겠다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부동산을 매입해 새로운 도시 계획을 단행할 수도 없는 노릇일 테다.

 

그러니 모든 건물 옥상에라도 녹지 공간을 조성하는 일이 어쩌면 유일한 대안이겠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뿐인 도시 거리에서 기껏 차도에 인접한 가로수만으로 안위할 게 아니라, 몇 평일지라도 곳곳의 건물 옥상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꿔놓는다면 그 건물을 사용하는 도시인들은 잠시나마 한적한 그곳에서 휴식과 안식의 시간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계몽도 하고 세제 혜택을 주어서라도 건물주의 마음을 부추겨 가능한 모든 건물 옥상을 아늑한 꽃밭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동화 속 소녀 리디아가 빵집 건물의 삭막한 옥상을 울긋불긋한 꽃밭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부터 소녀의 외삼촌처럼 무뚝뚝해진 우리네 도시인들도 오래전 아이 때처럼 해맑게 웃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편집자 주

[마음을 치는 시(詩)]와 [생활의 시선]에 연이어 윤병무 시인의 [때와 곳]을 연재합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시간’은 오래되어 역사의 범주일 수도 있고, 개인 과거의 추억일 수도 있고, 당장 오늘일 수도 있고, 훗날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는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늘 일상의 공간에서 발 딛고 서 있는 희로애락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입니다. 너무 익숙하거나 바빠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그 ‘곳’을 시인의 눈길과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가만히 동행해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구체적인 현지와 생생한 감수성을 잠시나마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 [생활의 시선]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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