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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20) 영아 살해와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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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 19:10 프린트하기

네 줄 요약
1. 영아 살해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보편적인 현상이다.
2. 하지만 이는 정신병리나 범죄가 아니라, 불가피한 적응적 전략일 수 있다.
3. 특히 첫 일년 동안의 안정적인 자원 공급이 아주 중요하다.
4. 풍족한 환경에서 안심하고 아기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모성애는 가장 위대한 사랑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무리 뜨거워도, 감히 어머니의 사랑에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흔히 무조건적인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하죠. 하지만 과연 어머니의 사랑은 그렇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것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아 살해의 보편성


영아 살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출생 신고와 병원 출산이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사실 살해가 일어나도 외부에서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갓난아기는 매우 연약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살해는 아니더라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도록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죠.


남아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남녀의 성비를 조사하면, 영아살해의 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인도 북부 지역에서는 남녀의 성비가 무려 3:1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푸젠성에서는 절반 이상의 여아들이 10세 이전에 사망했죠. 나머지는 죄다 죽은 것입니다. 남아들도 죽은 경우가 있을 테니,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부모의 손에 죽었을 지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소위 선진 문명국으로 불리는 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프랭크 맥린에 따르면 18세기 영국 아기들은 종종 어머니의 ‘실수’로 템즈강에 빠지곤 했습니다. 일부 유모들은 어머니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 유모에게 아기를 맡기면 곧 죽었기 때문이죠. 같은 시기 프랑스는 보다 우아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병원 입구에 베이비박스를 달아 둔 것이죠. 한 해에만 십만명이 넘는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담겼고, 이 중 80%는 1년 내에 죽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영아 살해가 드물게 관찰되는 것에 대해서, 단지 ‘태아 살해’로 그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지만, 낙태가 영아 살해의 ‘수요’를 어느 정도 분산시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보편적인 피임 교육이 영아 살해를 줄인 일등 공신이죠. 불과 수백 년 전만해도 피임이나 낙태는 사실상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약 절반의 아기들이 태어나자 마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 피임법이 있었다면 사정이 좀 달랐을 것입니다.  
 

체코의 한 병원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베이비 박스는 영아 살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제대로 된 답이라고 하긴 어렵다. 수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 Chmee2 제공
체코의 한 병원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베이비 박스는 영아 살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제대로 된 답이라고 하긴 어렵다. 수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 Chmee2 제공

메데이아 효과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어마어마합니다. 교육비 때문이 아닙니다. 수년에 이르는 수유 기간 동안 어머니는 식량 생산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기존의 아이들과 제한된 자원을 나누어야 합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성인까지 잘 성장하여 부모에게 손주를 안겨주는 자식의 수는 2-3명에 불과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농업혁명 이후 사정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한 명의 식솔이 늘어나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아내입니다. 다른 여성과 결혼하려는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죠.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 악녀로 나옵니다만, 사실 원시 시대 여성들은 남편의 지원이 없으면 자식을 키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심지어 배란 은폐와 같은 생물학적 특징도, 남편을 계속 옆에 붙잡아 두려는 전략이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악녀라고 욕할 수 만은 없습니다.


실질적인 면만 고려하면, 영아 살해는 여성의 생애 동안 최대의 번식적 이득을 얻기 위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참혹하지만 말이죠. 그래서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지원이 중단되면, 자식을 포기하는 현상을 흔히 메데이아 효과라고 합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메데이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녀 메데이아는 남편의 외도에 분개하여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다. 그러나 원시 사회에서 남편의 부재는 영아 살해의 주요 원인 중에 하나였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서는 주변의 지원과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 Eugène Delacroix 제공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메데이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녀 메데이아는 남편의 외도에 분개하여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다. 그러나 원시 사회에서 남편의 부재는 영아 살해의 주요 원인 중에 하나였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서는 주변의 지원과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 Eugène Delacroix 제공

영아 살해를 일으키는 사회적 요인들


영아 살해는 식량 공급 패턴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가뭄 등으로 기아가 발생하면 영아 살해율은 크게 높아집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낮은 인도 북부에 비해서 남부의 영아 살해율이 아주 낮은 이유입니다. 인도 남부는 벼농사를 짓는데, 이는 여성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메데이아 효과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것이죠.


어머니의 나이도 중요합니다. 보통 늦게 낳은 자식은 영아 살해의 희생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나이가 잠재적인 번식가능성과 반비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캐나다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19세 이전에 낳은 아이에 비래해서 30-34세 사이에 낳은 아이는 살해당할 위험이 약 1/5로 감소했습니다. 십대 임신에 대해서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출산 후 첫 일년 동안의 지지가 중요합니다. 사실 아기의 생존 가능성은 첫 일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 반대로 어머니의 양육 투자율은 상당히 낮아집니다. 첫 일년은 아기가 가장 연약한 시기지만,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나면 생물학적 부모에 의한 영아 살해율은 급격히 감소합니다.

 


모성애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


모성애는 가장 위대한 사랑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닙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기존 자식의 생존 가능성, 향후 태어날 자식의 잠재적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야만 합니다. 수많은 진화적 세월 동안,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무조건 다 키우려다 모두 다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두 명을 낳아야 ‘본전’인데, 한 명만 낳고 출산을 중단하는 어머니가 많습니다. 이는 현대 여성의 모성애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영아 살해는 대서특필될 만한 뉴스입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보면 ‘예방적 영아 살해’가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낙태와 피임을 통해서 말이죠. 건강하게 아기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미래에 건강하게 살아갔을 아이들이, 아예 처음부터 시작도 못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인데도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단지 여성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적응적 선택은 그에 해당하는 페이오프를 가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아기를 5명 정도 낳으면, 사실상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어렵죠. 굶어 죽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은 사회의 최하층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어떤 의미에서 출산율은 그 사회가 가진 미래의 잠재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도 모릅니다. 여성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기를 한 명, 많아도 두 명을 낳기 어려운 우리 사회는, 아기의 절반 이상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야 했던 척박한 인도 북부 지역만큼이나, 삶의 조건이 척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조건이 나아지면 아기도 더 많이 낳게 됩니다. 그동안 아예 피어나지도 못했던 미래의 가능성, 즉 예방적 영아 살해를 당했던 작은 천사들 말입니다. 건강한 모성애는 건강한 가정과 사회 속에서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인류의 신체와 정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공부했다. 현재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개발하며,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신경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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