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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구충제로 항암 효과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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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1일 16:30 프린트하기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북한 병사 한 명이 귀순한 사건은 영화보다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직 십대인 어린 병사가 목숨을 걸고 도망친 것이나 소년병을 쫓던 북한군의 총알 세례 속에서 우리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소년병을 구한 것도 그렇다.


총상을 입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북한 병사는 지난 2011년 소말리아 해적의 총탄을 맞고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선장을 살린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에게 보내졌고, 두 번의 수술을 마친 상태에서 패혈증이 나타나 아직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동아일보 제공
동아일보 제공

그런데 15일 2차 수술을 마친 뒤 이 교수는 기자 브리핑 자리에서 뜻밖의 사실을 얘기했다. 병사의 장에서 기생충이 너무 많이 나와 수술에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길이 27㎝에 이르는 것도 있었는데 이 교수는 “외과 의사 경력 20년에 이렇게 큰 기생충은 처음 봤다”며 의아해했다.


이에 대해 기생충학자인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는 “27㎝짜리 회충은 보통 크기”라며 별일 아니라고 촌평했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몸에서 회충 같은 기생충이 없어진지 하도 오래됐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의사들도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사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봄가을로 채변봉투(신문지 위에 대변을 본 뒤 성냥으로 콩알 만큼 떠서 비닐봉지에 담은 뒤 성냥불로 입구를 녹여 밀봉한다!)를 제출했고 기생충 검사를 한 뒤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은 기생충약(구충제)을 받아 복용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생충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이번 사건이 나기 전까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구충제 복용과 함께 농부들이 비료로 인분(人糞)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되면서 기생충의 순환주기가 깨진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20년 가까이 과학 기사와 에세이를 썼지만 기생충이나 구충제를 다룬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단세포 진핵생물(원생생물)인 말라리아원충도 기생체(parasite)이므로 이를 포함하면 여러 번 다뤘지만, 기생충을 맨눈에 보이는 벌레(蟲)로 한정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지난 2015년 실명이나 상피증을 일으키는 사상충의 구충제인 이버멕틴(Ivermectin)을 개발하는데 기여한 오무라 사토시와 윌리엄 캠벨이 노벨생리의학상을 탔을 때 글감으로 삼은 게 유일한 것 같다.


이번 북한군 병사 기생충 뉴스도 있고 해서 모처럼 구충제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 두 편을 소개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생충에 대한 게 아니라 암에 대한 내용이다. 구충제와 암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구충제 NTZ, 항바이러스효과에 항암효과까지


학술지 ‘네이처 화학생물학’ 10월 30일 온라인판에는 구충제 니타족사나이드(nitazoxanide. 이하 NTZ)가 특정 유형의 대장암과 전립선암을 치료하는 항암제로 유력하다는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공개됐다. 1974년 파스퇴르연구소의 화학자이자 의사인 장-프랑수아 로시뇰이 개발한 NTZ는 장에 서식하는 촌충과 회충 같은 기생충뿐 아니라 와포자충증을 일으키는 와포자충 같은 원생생물에도 듣는 구충제로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그 뒤 B형 간염과 C형 간염, 심지어 인플루엔자(독감) 같은 바이러스질환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노르웨이 베르겐대와 중국 상하이대 등 다국적 공동연구자들은 기존에 나와 있는 약물 가운데 세포의 ‘Wnt/베타-카테닌 신호 경로’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약물을 찾다가(이를 약물재활용(drug repositioning)이라고 부른다) NTZ를 ‘발견’했다. 2000년대 들어 게놈(DNA)과 단백질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쓰이고 있는 약물은 안전성이 검증돼 있어서 새로운 용도를 찾을 경우 쉽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Wnt/베타-카테닌 신호 경로’는 체세포의 분열에 관여하는 회로로 이 경로가 활성화되면 세포가 왕성하게 분열한다. 암은 세포 분열이 통제가 안 된 결과이고 따라서 이 신호 경로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세포분열은 정교하게 조절되는 과정이므로 여러 유전자가 ‘Wnt/베타-카테닌 신호 경로’에 관여하면서 이중삼중으로 관리하고 있다.


Wnt/베타-카테닌 신호 경로에서 게놈에 직접 달라붙어 세포분열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하는 단백질은 베타-카테닌이다. 대장암의 경우 베타-카테닌의 분해에 관여하는 APC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베타-카테닌이 지나치게 활성화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암세포에 NTZ를 투여할 경우 베타-카테닌의 양이 줄어들면서 암세포의 분열이 억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NTZ가 베타-카테닌을 억제하는 또 다른 단백질인 PAD2의 활성을 촉진해 이런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PAD2는 베타-카테닌의 구조를 살짝 바꿔주는 효소로 그 결과 베타-카테닌이 불안정해져 파괴된다. 그런데 APC가 고장 날 경우 PAD2만으로 베타-카테닌을 통제하는데 역부족이어서 암세포가 되는 것이다. 이때 NTZ가 들어가 PAD2에 결합하면 ‘슈퍼 PAD2’가 돼 베타-카테닌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다.


NTZ가 처음 목표인 촌충 뿐 아니라 회충 같은 기생충은 물론이고 원충이나 바이러스 등에도 효과가 있는 이유는 이 분자가 다양한 단백질(효소)에 달라붙어 그 활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와포자충의 경우 에너지대사와 관여하는 효소에 달라붙어 그 활성을 억제해 약효를 낸다.

 

최근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구충제 니타족사나이드(왼쪽)과 이버멕틴(오른쪽)의 분자구조. - 위키피디아, 브리스톨대 제공
최근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구충제 니타족사나이드(왼쪽)과 이버멕틴(오른쪽)의 분자구조. - 위키피디아, 브리스톨대 제공

이버멕틴, 항암 칵테일 요법에 활용될 듯


한편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8월 29일자에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에 빛나는 구충제 이버멕틴이 난소암에 대한 항암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휴스턴감리교도연구소와 일본 오사카대 등 공동연구자들은 난소암에 관여하는 단백질들 가운데 효과적인 약물 표적을 찾는 연구를 진행했다.


암세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을 분석한 결과 HER2 유전자의 발현 증가가 가장 두드러졌다. 이 유전자의 산물인 HER2 단백질은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형인산화효소로,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질 경우 세포분열 신호가 증폭돼 암세포가 된다. 유방암이나 난소암의 대략 30%가 이 유전자의 변이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품명 허셉틴으로 유명한 트라스투주맙은 HER2 단백질에 달라붙어 작용을 억제하는 표적항암제다.


HER2 다음으로 KPNB1 유전자의 발현량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KPNB1는 연구가 별로 되어 있지 않은 유전자인데 조사결과 몇몇 암에서 그 산물인 KPNB1 단백질의 농도가 높았다. KPNB1 단백질은 세포분열을 촉진하고 세포사멸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할 경우 암세포의 증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기존 약물 가운데 그런 작용을 하는 약물을 찾았고 구충제인 이버멕틴이 걸렸다. 원래 이버멕틴은 무척추동물(기생충)의 신경세포와 근육세포의 막에 있는 염소이온 통로단백질에 달라붙어 통로를 열어 신경신호전달을 차단해 근육을 마비시켜 작용한다. 그런데 KPNB1 단백질에도 달라붙어 그 작용을 방해한 것이다.


다만 이버멕틴 단독으로는 항암 효과가 충분하지 않았고 택솔 같은 기존 항암제와 함께 쓸 때 시너지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이처럼 두 가지 이상의 항암제를 같이 써 효과를 극대화한 ‘칵테일 요법’이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유방암의 경우 팔보시클립(제품명 입랜스)과 호르몬요법을 병행하는 치료법이 지난 3월 미 식품의약품안전처(FDA)의 승인을 받았다. 연구자들은 택솔과 이버멕틴 칵테일 요법의 임상을 기대하고 있다.


문득 구충제가 항암제로도 작용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암이란 결국 인체의 구성요소로서 역할은 망각한 채 인체를 숙주로 여겨 영양분만 빨아먹고 자기 증식에만 열중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된 변이 세포가 모인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북한 병사 기생충 보도에 구충제 판매량이 두 배 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구충제를 복용한 게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인 필자도 이참에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 이왕이면 항암 효과도 있는 니타족사나이드로.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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