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과학&기술의 최전선] 게놈해독 기술 3세대로 진화… 시장 선점위해 ‘합종연횡’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11월 24일 19:00 프린트하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기술잡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매년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기술 기업 50개를 선정해 발표한다. 올해도 애플, 스페이스엑스, 알리바바, IBM 같은 거대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 명단에는 글로벌 대기업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눈에 익숙하지 않은 신생 강소 기술기업들도 이름을 올린다. 일부는 혁신을 계속하며 오래 명단에 남지만, 상당수는 한두 해 뒤에 조용히 사라지곤 한다.

 

  2010년 미국 게놈 해독 기기(시퀀서) 개발사 ‘일루미나’가 처음 명단에 등장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신생 기업이 등장했다고만 생각했다. 당시 일루미나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용 기기를 만들다 갑자기 ‘개인 게놈 해독 서비스’라는 생소한 아이템을 들고 시장에 나온 기업이었다. 살벌한 경쟁 환경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실제로 일루미나는 이후 두 해 연속 명단에서 제외돼 반짝 주목을 받고는 사라진 수많은 회사의 전철을 밟는 듯했다. 하지만 일루미나는 2013년 다시 명단에 등장했고 2014년에는 1위 기업으로 꼽히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올해까지 50대 기업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애플, 페이스북 등과 함께 가장 많이 선정된 기록 중 하나다.

 

퍼블릭도메인픽쳐스 제공
퍼블릭도메인픽쳐스 제공

 

 

  게놈 해독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일루미나의 돌풍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게놈 해독은 생명과학과 의료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다. 체질 등 부정확한 관찰과 경험에 의존해야 했던 개인별 처방을 유전자라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도록 토대 자체를 바꾼 것이다. 또 암 등 난치병과 각종 유전병 연구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각각의 생물 종의 특성 차이를 DNA에 기반해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게놈 해독은 기초과학부터 상용기술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일루미나는 이런 혁신을 이끌었다. 개인 게놈 시대의 가능성을 연 ‘1000달러 게놈 시대’를 가장 먼저 현실화하며 주목을 받았다. 원래 1998년 처음 설립됐을 때 일루미나는 게놈 해독 회사가 아니었다. 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염기 돌연변이(SNP)를 찾는 서비스를 하는 회사였다. 같은 해에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연구자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차세대 게놈 해독 기술을 상업화하기 위해 ‘솔렉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두 회사는 기술을 서로 주고받다 결국 2006년 일루미나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합쳐졌고, 3년 뒤인 2009년 드디어 개인 게놈 해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한 사람의 게놈을 해독하는 데에 4만 달러 이상이 들었다. 일루미나는 이 가격을 급속도로 떨어뜨려야 한다고 보고 투자를 집중했다. 2년 만인 2011년, 가격을 애초의 10분의 1 이하인 4000달러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대박이 난 것은 2014년이었다. 지금도 널리 쓰이는 ‘하이 시퀀서(HiSeq)’ 시리즈를 내며 비용을 100만 원으로 줄였다고 선언했다.
 

 이때 이미 일루미나는 게놈 해독 분야에서 독주 체제를 완성한 상태였다. 전체 해독 기기 시장의 70%를 장악했고, 당시까지 해독된 게놈의 90%는 일루미나의 기기를 거쳤다. 일루미나는 올해 1월에도 새 시리즈인 ‘노바 시퀀서(NovaSeq)’를 내며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조지 처치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플라이드 바이오시스템과 이온토렌트 시스템이 생명공학기업 라이프 테크놀로지를 거쳐 서모피셔 사이언티픽사에 합병됐다. 일루미나의 또 하나의 강력한 라이벌로 2000년 설립됐던 454 라이프 사이언스 역시 처치 교수의 기술에서 영감을 얻어 게놈 해독기를 선보였다. 일루미나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며 2007년 다국적 제약 업체 로슈에 인수됐지만 로슈는 2013년 사업을 중단했다. - 동아일보 제공
조지 처치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플라이드 바이오시스템과 이온토렌트 시스템이 생명공학기업 라이프 테크놀로지를 거쳐 서모피셔 사이언티픽사에 합병됐다. 일루미나의 또 하나의 강력한 라이벌로 2000년 설립됐던 454 라이프 사이언스 역시 처치 교수의 기술에서 영감을 얻어 게놈 해독기를 선보였다. 일루미나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며 2007년 다국적 제약 업체 로슈에 인수됐지만 로슈는 2013년 사업을 중단했다. - 동아일보 제공

 

  일루미나의 기술은 조지 처치 하버드대 의대 교수 등의 연구 결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른바 ‘2세대 게놈 해독 기술’이다. 처치 교수는 1984년에 이어 21년이 지난 2005년에는 자신의 기술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대장균의 게놈 전체를 해독하는 데 처음 성공했다. 2005년에는 ‘병렬 해독 기술’을 적용했다. 게놈을 조각내 많은 수로 복제한 뒤, 염기에 빛을 내는 물질을 달아 광학 기기로 한꺼번에 여러 개의 염기를 읽어 들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일루미나는 물론 수많은 게놈 해독 기기 개발사의 근간이 됐다. 기본 기술은 같지만, 각자의 개성이 덧붙어져, 잘게 잘라 읽어 들이는 염기서열 수가 다른 등 조금씩 다른 성능을 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흔히 그렇듯, 이 기업들은 서로 기술 경쟁을 벌이며 합종연횡했고, 그 가운데 일부가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처치 교수의 병렬 해독 기법을 활용한 전혀 다른 해독 기술도 탄생했다. DNA를 최대 수만 개 염기 단위로 자른 뒤 이를 빛을 감지하는 미세한 구멍이 가득 나 있는 반도체 칩에 넣는다. 이후 칩 안에 형광 빛을 내는 염기와 DNA를 집어넣어 둘 사이의 반응성을 빛으로 측정해 실시간으로 염기서열을 읽어 들인다. 2004년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사가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 팩바이오(PACBIO)라는 기기를 선보였다. 이 기술은 ‘3세대 해독 기술’로 분류된다. 

 

  이 기술의 장점은 이전 세대의 기술에서는 필수로 여겨졌던 원본 DNA 복제가 필요없다는 점이다. 2세대 해독 기술은 공통적으로 DNA를 수백 개 염기 단위로 잘게 쪼개는 기술, 이를 화학적 기법으로 복제해 수를 늘리는 기술, 그리고 여기에서 염기서열을 읽은 뒤 재조합해 하나의 완성된 게놈을 만드는 기술이 중요했다. 이 가운데 복제는 시간도 걸리고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팩바이오는 한 가닥의 DNA를 넣어도 해독이 가능해 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했다.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유전정보를 2세대 기술보다 100배 이상 길게 읽어서 조합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높다”며 “작년 아시아인 게놈을 해독했을 때 팩바이오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옥스퍼드 나노포어는 비교적 최근 등장한 기술이지만 작년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 게놈을 해독하는 등 활용을 늘리고 있다. -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 제공
옥스퍼드 나노포어는 비교적 최근 등장한 기술이지만 작년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 게놈을 해독하는 등 활용을 늘리고 있다. -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 제공

  처치 교수는 1995년에는 전혀 다른 아이디어 하나를 추가로 제안했다. 미생물의 막 단백질 가운데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이 있는 단백질을 이용해 DNA를 읽어 들이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이 구멍에 DNA 이중나선 가닥을 풀어 넣으면 구멍을 통과하며 미약한 전기 신호를 발생시킨다. 이 전기 신호는 염기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이를 구분해 염기를 알아낸다. 이 기술은 역시 3세대 해독 기술로, ‘게놈 해독계의 애플’로 불릴 만큼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창업한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가 이 기술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미니온’이라는 초소형 휴대용 해독기로 탄생했다. 다른 해독기도 크기가 방 안에 둘 정도로 작아졌고, 일부는 책상 위에 올려도 될 만큼 소형화됐지만, 미니온은 극단적으로 더 작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고, 노트북의 USB에 꽂아 사용할 수 있다. 들고 다니며 야외에서 해독이 가능한 수준이다. 실제로 2016년 지카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 브라질에 들고 가 지카에 감염된 모기의 게놈을 해독해 역학조사에 활용했다.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 역시 2016년에 이어 올해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50대 선도 기업에 포함됐다.

 

  이 기술은 2014년경부터는 국내 연구자들에게도 알려졌고, 지금은 기술 적용을 시험하는 단계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미생물 게놈 기업 ‘천랩’ 대표)는 “미생물 군집의 게놈을 해독할 때에 팩바이오를 많이 사용했는데, 최근 나노포어도 시험 중”이라며 “아직은 정밀도가 이슈지만, 장점이 많아 활용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11월 24일 19:00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16 + 3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