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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硏 비정규직 대책들 '눈가리고 아웅'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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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硏 비정규직 대책들 '눈가리고 아웅'일 뿐

2013.08.21 18:00

  박사, 비정규직, 노조….

 

  어딜봐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학력 우선 사회에서 박사는 선망의 대상이지 기간제나 계약직, 노동조합들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번듯한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비정규직 인원들이 득시글(사람이나 동물 따위가 떼로 모여 자꾸 어수선하게 들끓는다는 뜻이나, 비정규직 인력을 비하하려고 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지속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현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거리는 곳이 있다. 아니 어쩌면 박사 학위 소지자면서 비정규직 신분이 가장 많은 직장일 지도 모른다.(솔직히 슬픈 현실이라 어느 분야가 박사급 비정규직 인력이 가장 많은지 궁금하지는 않다. 통계청이나 고용노동부에 공식 자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8월의 끝자락인데도 여전히 한낮 햇살은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뜨거운 21일 오후, 대전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공공연구노동조합을 찾았다. 이광오 사무처장은 이 날도 원자력연구원에서 진행될 예정인 점심 집회에 가봐야 한다며 대화를 시작했다.

 

  “ㅈ, ㅈ, ㄷ 이니셜로 시작하는 언론사 기자들은 만나고 싶지 않다는게 솔직한 심정이죠. 그런데 동아사이언스라고 해서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대화는 누구나 느끼고 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출연연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새삼 느끼게 했다. 아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했다. 과연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일까.

 

●R&D 예산 증가와 인력 시스템 엇박자

  “지난 정부에서 출연연 통폐합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선이 추진됐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새 정부에서도 같은 기조가 유지될지가 관심사였지만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공석이 길어지면서 통폐합 추진을 않겠다는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각 출연연구기관별로 창조경제 추진을 위한 발전전략을 수립하게 됐는데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바로 비정규직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하죠. 7월 말까지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말입니다. 출연연 비정규직 문제가 7~8년 동안 지속되면서 해결되지 못하는 것은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나 출연연 스스로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 해결 의지 자체가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혹자는 말한다. 노조 일방의 얘기만 들어서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독자를 오도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얘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주장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전체는 물론 올바른 과기정책 수립을 위해서도 반드시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5년 동안 평균 1년 R&D 예산이 약 12% 늘었습니다. 국가 R&D 예산의 25%를 출연연이 쓰는데 4조원 이상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예산이 늘어나면 사업이 많아지고 인력이 더 필요해집니다. 하지만 정규직 증가율이 현저히 낮다 보니 필요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말 그대로 엇박자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공공 부문 비정규직 비율이 20% 조금 넘는다. 반면 출연연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는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더욱이 지난 MB 정부 5년 동안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새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전 선거운동에서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도 했죠.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추진 전략이 나오지 않다고 봅니다”

 

●정부와 출연연, 비정규직 문제는 눈가리고 아웅?

  이광오 사무처장은 현재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와 출연연이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어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비정규직 인력 비율을 줄이라는 요구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사실상 해고하면서 그 비율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눈가리고 아웅이다. 그래서 호기 있게 이런 주장의 근거는 있냐고 되받아쳤다. 이 처장은 기다렸다는듯 바지 뒷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노조 측이 입수한 한 출연연구기관(어느 출연연인지 확인했지만 기사에서는 밝히지 않는다)이 최근 공지한 비정규직 제도개선 안내 문서입니다. 5년 안에 비정규직 인력 비율을 20%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게 골자인데 내용을 들여다 보면 기간제계약직 120여명 감축, 비정규직 채용방식 공채 전환, 8월 1일부터 연구사업에 활용중인 기간제계약직 활용 중지 등입니다. 결국 비정규직 연구인력을 해고하겠다는 얘기죠.”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출연연은 그동안 왜 비정규직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었을까.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예산이 늘어나면서 R&D 연구과제가 많아졌는데 연구인력이 부족한 것이 첫 번째 이유다. 하지만 노조가 설명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두가지. 정규직 T/O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출연연은 비정규직 법안에서 예외 조항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정부가 정하는 출연연 정규직 T/O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기간제법)' 4조에 의해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의무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출연연 연구직의 경우는 2년이 넘더라도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할 필요는 없다는  예외조항이 있습니다. 연구 역량이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예외 조항을 둔 것인데, 이상하게 비정규직 인력을 늘리는 근거가 되버렸지요.”

 

●8.1% vs 33.6%

  그렇다면 출연연 비정규직 인원은 얼마나 늘었을까.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전체 14개 기관 중 12개 기관 대상 조사)만을 대상으로 2008년과 2012년을 비교분석한 자료가 최근에 나왔다.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 연구인력은 3832명에서 4141명으로 8.1% 늘었다. 비정규직 연구인력은 1847명에서 2467명으로 33.6%가 늘었다.  

 

  “전체 정부 출연연 중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12개 기관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 수치는 이 수치보다 약 두 배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퍼센티지 말고 숫자로만 본다면 엄청나게 많은 비정규직 박사급 연구 인력들이 출연연에 있는 셈이지요.”


  출연연 예산은 R&D 예산 증가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지난 10년간만 보더라도 출연연 예산은 줄어들지 않았다. 인력 확대도 당연히 이뤄줘야 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 정규직 T/O 확대가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지금처럼 비정규직 해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하다보면  인력 부족 문제가 다시 불거져 또 비정규직을 뽑아야 하는 악순환 상태가 될 것이라는 게 이 사무처장의 분석이다.

 

  “지금 비정규직 연구인력 수준이 질적으로 낮기 때문에 해고하고 더 좋은 인력을 뽑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희는 판단 착오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미 과학기술계 출연연 정규직은 포화상태입니다. 능력이 안되서 비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기회가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가는 것이지요.”

 

  비정규직 인력이 늘어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 역량에 어떤 영향이 있느냐고 물어도 봤지만 세세히 쓰고 싶지는 않다.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처장의 한마디는 뇌리에 남는다.

 

  “지난해 연구 사업 책임자 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대다수 책임자들이 고용 단절이 기정 사실화되면서 우수한 연구인력들도 기업 연구소나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생각만으로 가득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몸은 출연연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지요.”

 

●“노조 활동?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인터뷰에 동석한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지부장 최연택 연구원도 비정규직 신분으로만 6년째다. 수리과학연구소는 현재 전체 직원이 72명으로 연구직 57명 가운데 정규직이 18명, 비정규직이 39명이다. (사실 비정규직 연구원을 인터뷰하고 싶었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소위 386세대라는 86학번이어서 주위에 학생운동 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내가 노조 활동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최 연구원은 비정규직의 급여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정규직 임금의 85%를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게 재미있는 건데요, 비정규직들에게는 정규직 직원의 가장 낮은 호봉에서 85%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선임급 비정규직이면 선임급 임금의 85%가 아니라 최하 정규직 임금의 85%를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한달에 최고 200만 원 가량 임금 차별을 받습니다.”

 

  노조라고 하면 소위 '종북좌파' 놀음에 빠진 사람들이라며 새된 시선을 갖고, 노조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 노조 측의 주장이 100% 옳다고 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출연연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한단계 퀀텀점프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에 대해 반박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출연연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전전략을 직접 만들겠다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여러 변수와 사람들이 개입돼 복잡해진 문제는 그렇게 만든 이들이, 그렇게 만든 조직이 해결하는 것이 답이다. 결자해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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