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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초연구는 강화하라며 예산은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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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02일 14:00 프린트하기

※편집자주 : 기초과학에 더 큰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의 예산심의에서 기초연구비 삭감이 결정된 데에 대해,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3월 28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국회청원을 진행하던 당시 받았던 우편을 바라보고 있다. - 변지민 기자 제공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3월 28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국회청원을 진행하던 당시 받았던 우편을 바라보고 있다. - 변지민 기자 제공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기초연구비를 확대하라는 연구자들의 청원을 채택하여 이를 정부에 촉구했던 국회가 예산 심의에서는 삭감을 결정한 것이다.

 

실험실 바깥 세상을 모르던 연구자들이 청원운동을 하고 국회까지 쫓아가게 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외형으로는 GDP 대비 R&D가 세계 1위라고 하고 정부 R&D가 20조에 육박하는데, 내용을 보면 창의적 기초연구를 지원하는 연구사업은 6%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형적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배로 치면 평형수를 빼가며 화려한 시설의 객실만 자꾸 증축을 해온 셈이고, 건축으로 치면 수익이 나올법한 시설 투자에 혈안이 되어 기초공사 비용을 줄이다 보니 안전이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된 것일까?


내년도 기초연구비 삭감을 결정한 예산소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그 원인의 일부를 알 수 있다. 특정한 프로젝트를 하는 건 30%쯤 늘려도 되지만, 기초연구처럼 성과물은 없이 돈을 나눠주는 연구비를 늘리는 걸 국민이 납득할 수 없을 테니 삭감을 한다는 것이다. R&D 통계상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각종 정부 주도의 기획 사업으로 R&D 투자가 4조 늘어나는 동안 기초연구사업은 1400억이 증액된 데 그친 걸 보면, 아마도 이런 얘기는 해마다 나왔던 게 아닐까싶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든가, 첨단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든지 하는 특정 목적을 가진 연구는 그 필요성을 설득하기 쉽다. 미세먼지가 당장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고, 지진 발생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인공지능이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할테니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드물다. 몇 년 전에는 신약개발이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이고, 유전체와 줄기세포로 모든 병을 맞춤형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며 관련 분야 연구의 필요성이 주장되었다. 이런 주장들은 바로 대형 기획사업으로 이어졌고, 이런 사업들은 국회의 예산심의에서도 쉽게 통과되었을테니, 지금과 같은 기형적 구조의 R&D 투자가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앞에 어떤 문제가 던져졌을 때 그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건 쉽게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지만,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은 그 반대이다. 정작 문제를 해결하는 단서는 연구비를 쫒아다니며 하는 연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제 발생 이전 아무도 그 문제를 주목하지 않을 때부터 근본 원리를 파헤치는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던 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전자를 “추격형 연구”라고 부르고, 후자를 “선도형 연구”라고 부른다. 기초연구사업은 바로 선도형 연구가 각 분야에서 자라날 수 있게 지원하는 연구사업이다. 추격형 연구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긴 안목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 문제해결과 경제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면 역설적으로 당장 직면한 문제와 관련 없는 분야에서도 골고루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도록 균형있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초연구사업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실은 기초가 강해야 한다는 건 이런 지루한 설명이 필요 없는 상식적인 얘기이고, 노벨상 시즌마다 반복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그에 맞추어 예산을 편성하는 일은 왜 계속 난관에 부딪치는 것일까?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연구비 유용과 부정집행 뉴스로 인해 생기는 연구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아닐까 한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이 투사되면 기초연구사업 확대가 국가 R&D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선이라는 점이 간과되고 개인의 연구비를 늘려달라는 이기주의적 요구로 비추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비 유용은 한 사람에게 연구비가 지나치게 편중될 때 주로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인당 연구비가 평균 1억에 미치지 못하는 기초연구사업은 연구비 유용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업이다.


국가 R&D에서 연구 목표 설정의 중요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연구과제의 지원과 선정 방식이다.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따는 것은 수험생들의 입시와도 비슷한데, 수험생들이 어느 대학에 지원하면 붙을까를 생각하는 것처럼 연구자들은 어떤 연구사업에 신청을 해야 연구비를 딸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기초연구사업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지만, 자신의 독창적 아이디어와 연구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입시라면, 특정 목적의 국책 사업은 그 목적에 맞는 연구를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업을 기획하고 연구비를 받아가고 하는 식이니 입시에 비견한다면 특별 전형인 셈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는 좁고, 특정 분야, 특정 그룹을 대상으로 한 기회만 점점 넓어져가는 기형적인 운동장이라면, 거기서 한눈 안 팔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독창적 연구에만 전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연구력 경쟁이 보장되는 운동장을 넓히는 것이 연구비와 관련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길인 동시에 과학기술 경쟁력을 제고하는 지름길이다. 여기에 여야간, 정부와 국회간 이견이 있을 수 없고, 이를 위한 예산편성을 더 이상 미루어서도 안된다.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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