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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영화 I 어느 여배우의 민낯 ‘여배우는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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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02일 11:00 프린트하기

#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감독: 문소리
출연: 문소리, 윤영균, 성병숙, 윤초희, 장준환, 윤상화, 전여빈, 이승연
장르: 코미디, 드라마
상영시간: 1시간 11분
개봉: 2017년 9월 14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주)영화사 연두 - (주)영화사 연두 제공
(주)영화사 연두 제공

지난달 25일 열린 제38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는 배우 문소리가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 데뷔 후 각종 영화제에서 숱하게 트로피를 가져갔던 그였으니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경쟁 후보들이 누구 하나 꼽기 어려울 정도로 쟁쟁해 영화팬의 입장에서는 공동수상을 바랄 정도였다. 그런데 문소리는 또 다른 부문에서도 후보에 올랐다. 바로 신인감독상 부문이다.


문소리는 지난 9월 개봉한 ‘여배우는 오늘도’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서울 소재 영상대학원을 다니며 찍은 단편 3편(‘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묶은 작품으로 문소리가 연출, 각본, 주연까지 도맡았다. ‘배우가 연출을 하면 얼마나 하겠어?’라는 세간의 냉소적인 추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단편들은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등 영화제에 연달아 초청되면서 ‘감독 문소리’의 재능을 드러냈다. 후보에 오른 청룡영화상에서도 수상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청룡영화상에서 배우 출신 감독이 신인감독상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문소리 감독 외에는 제30회 때 후보에 오른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있다)

 

(주)영화사 연두 제공
(주)영화사 연두 제공

문소리가 연출한 ‘여배우는 오늘도’ 속 주인공 ‘소리’는 유명한 여배우다. 친구가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정도로 걸출한 연기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소리는 배역에 목말라하고 있다. 출연 제의가 오는 캐릭터는 부담스러울 만큼 거칠거나, 아니면 나이 든 엄마 역할 뿐이라 그녀는 “집에서 애 키우고, 시나리오만 기다리고” 있다. 소리는 그 이유를 본인에게 “매력이 없어서”, “예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생활인 소리는 딸이자 엄마이고 아내이자 며느리다. 지금도 연기력 하나는 끝내주지만, 소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예전처럼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은행에서 마이너스 대출을 받고, 치과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조건으로 엄마의 임플란트 비용을 50% 할인 받을 정도로 궁색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여배우’의 모습에 부응하기 위해 매번 화장을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서 자꾸만 선글라스를 찾게 된다.
 

(주)영화사 연두 제공
(주)영화사 연두 제공

데뷔 18년차 중견 여배우 ‘문소리’의 일상을 탐구하는 ‘여배우는 오늘도’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픽션이다. 감독은 자신이 여배우로서 체험한 것을 세 가지 이야기로 엮어, 겉으로 화려해 보이고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여배우의 삶에 드리워진 그늘을 조명하고 그 민낯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1막에서 2막, 3막으로 가면서 점차 그 그늘은 깊어지는데, 깊어지는 그만큼 영화가 탐구하려는 소재의 외연도 점차 확장된다. 1막의 초점이 여배우 개인에게 있었다면, 2막은 관계 속에서의 여성, 3막에 다달아서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늘을 비춘다고 해서 이 영화가 마냥 우울하진 않다. 오히려 근래 이 정도로 웃긴 영화가 있었나 돌이켜 보게 될 정도로 익살과 풍자를 갖춘 작품이다. 18년의 기간 동안 영화 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배우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까지 해냈으니 그 내공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엄마와 딸, 감독과 배우, 배우와 매니저 등 각기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유머를 캐치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우리는 여배우이자 생활인 문소리의 개인사에서 출발해 현실의 비루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극중 소리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된 남자들은 문소리의 외모, 성형 여부에 대해 지적하고, 칭찬이라고 던지는 말에서 그녀가 연기한 장애인 캐릭터를 ‘병신’이라는 단어로 비하하는 무례를 저지른다. 무례한 건 감독의 장례식에서 만난 소리의 옛 동료 배우도 마찬가지. 심지어는 고인이 된 감독마저도 과거, 감독의 지위를 이용해 어리고 물정 모르는 여배우를 건드렸던 사실이 밝혀진다.


또 한편, 극중에서 제작사 PD는 주인공의 팍팍한 처지를 빗대 “작품도 없지, 애 키우지, 한국영화 죄다 조폭 아니면 형사지, 언니가 할 게 없지. 옛날에 문소리 진짜 장난 아니었는데”라고 말한다. 1막의 소리는 “작품도 인연”이라고 믿는 인물이지만, 현실로 눈을 돌려보면 그 인연이란 것은 배우의 성별에 좌지우지 된다. 어느샌가 영화계에 남성 중심의 기획 영화들이 범람하면서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는 영화는 그 비율이 확연히 줄었다. 이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다양성과 주체성을 상실하고 주변인에 머무르는 지경에 처했다. 문소리, 전도연, 김혜수 등 아무리 연기파 배우여도 “트로피는 많고 배역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주)영화사 연두 제공
(주)영화사 연두 제공

인터뷰에 따르면 실제로 현실의 문소리는 한때 남편(‘지구를 지켜라’, ‘1987’ 장준환 감독)에게 "’작품이 너무 없는데 이렇게 계속 내가 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남편은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새로운 게임,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죠.”라고 조언했다고. 마침 영화와 연기에 대한 애정을 더 높이기 위해서 연출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은 문소리는 연출을 통해 ‘새로운 게임’을 실천으로 옮겼다.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문소리의 용기에 화답하듯 동료 여성 배우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잇따랐다. 김선영, 라미란, 전도연, 공효진, 류현경, 조은지, 김태리, 김옥빈, 엄정화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GV(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문소리의 행보를 응원했다. 여기에 최민식, 설경구, 박해일, 송강호, 강동원 등 남자 배우들은 상영관을 대관하는 방식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좌: 촬영 현장의 문소리 감독 / 우: 언론시사회 현장 - (주)영화사 연두 제공
좌: 촬영 현장의 문소리 감독 / 우: 언론시사회 현장 - (주)영화사 연두 제공

연출 데뷔작에 대한 애정으로 문소리는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라면 어디든 갔다. 서울 구석구석은 물론, 비행기를 타고 제주까지 날아갔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도 스케줄이 되는 한 각종 영화제를 찾아다니며 관객들과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인 상보다는 관객들과의 만남이 더 중요하고 좋아요. 어떤 작품을 하든 그럴 거예요. 진심입니다.”라고 밝힌 것을 실천으로 옮긴 셈이다.


영화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보더라도, 성별에 따른 차별의 문제가 계속해서 수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속한 영역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문소리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한국 사회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고 밝힌 건 문소리나 그의 동료인 유아인도 마찬가지지만, 필자에게는 그 체감온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극중 소리는 “여배우 드러워서 못 해먹겠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현실의 문소리는 연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데뷔작을 통해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앞으로 보여줄 그의 행보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그녀의 바람처럼, 그녀가 속한 영화계도 '이 판은 원래 그렇다'는 말들을 바꿔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꿈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발전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 필자 소개

이상헌. 영화를 혼자 보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고 볼 만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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