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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호모사피엔스, 퇴행은 이미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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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2일 17:00 프린트하기

정점에 도달했을 때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이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써야 퇴행을 막을 수 있다.
- 애드리언 마크 등의 논문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의 한계에 도달했나?’에서

 

GIB 제공
GIB 제공

장면1.
지난 2월 22일 교육부는 고교 3학년의 키가 10년 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키가 커지고 있는 줄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겐 뜻밖의 뉴스였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일어난 현상으로 남학생은 2006년 평균 174㎝에서 2016년 173.5㎝로 0.5㎝ 줄었고 여학생은 161.1㎝에서 160.9㎝로 0.2㎝ 줄었다.


반면 몸무게는 늘어 남학생은 2006년 평균 68.2㎏에서 2016년 70㎏으로 여학생은 55.4㎏에서 57.2㎏으로 각각 1.8㎏이나 늘었다. 즉 과체중 또는 비만인 학생의 비율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아울러 운동은 덜 하고 인터넷은 더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시기의 건강이 훗날 중년, 노년이 됐을 때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생각하면 걱정스런 현상이다.

 


장면2.
학술지 ‘네이처’ 6월 29일자 온라인판에는 16쪽에 걸쳐 2016년 10월 13자 논문을 반박하는 서신 다섯 편과 이에 대한 저자들의 답신이 실렸다. 이런 논쟁을 불러일으킨 논문은 인간의 최대수명이 대략 115세를 정점으로 한계에 이르렀고 최근 오히려 줄어드는 조짐까지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반박 서신들은 통계 처리의 오류를 비롯한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최대수명이 정점을 쳤다는 주장은 시기상조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1997년 122세에 사망한 프랑스의 잔 칼망 여사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최장수자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장면3.
지난 8월 6일 영국 런던 스타디움. 전설의 스프린터 우사인 볼트가 트랙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탕’ 소리와 동시에 선수들이 튀어나갔고 볼트는 약간 늦었지만 늘 그랬듯이 중간에 치고 나올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볼트는 사력을 다해 뛰었지만 3위에 그쳤고 특유의 코믹한 세리머니를 펼쳤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볼트가 전성기였던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수립한 세계신기록은 9초58이다. 당시 결승선을 5m쯤 앞두고 전력질주를 하지 않고 ‘기록은 다음에 또 세우면 되지’라는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볼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8년이 지난 이번 대회에서 볼트의 기록은 9초95였고 금메달을 딴 저스틴 게이틀린의 기록도 9초92에 머물렀다.

 

연도별 최대수명의 경향을 나타내는 그래프다. 100년 전 이미 110세였고 그 뒤 12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한 사람(잔 칼망)을 제외하고는 120살을 넘지 못했다. 분홍색은 여성 최장수자 파란색은 남성 최장수자의 사망 시 나이다. 빨간색(여)과 주황색(남)은 올림픽출전 선수의 최장수자의 사망 시 나이다. - 생리학의 경계 제공
연도별 최대수명의 경향을 나타내는 그래프다. 100년 전 이미 110세였고 그 뒤 12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한 사람(잔 칼망)을 제외하고는 120살을 넘지 못했다. 분홍색은 여성 최장수자 파란색은 남성 최장수자의 사망 시 나이다. 빨간색(여)과 주황색(남)은 올림픽출전 선수의 최장수자의 사망 시 나이다. - 생리학의 경계 제공

20세기와 21세기의 차이


20세기 100년 사이 인류는 놀랄만한 변화를 겪었다. 기대수명이 대략 30년 더 길어졌고 평균키는 10㎝ 더 커졌다. 육상을 비롯해 각종 스포츠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록이 수립돼 마라톤의 경우 거의 한 시간이 당겨졌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런 상승세가 꺾였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학술지 ‘생리학의 경계’ 10월호에는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의 한계에 도달했나?’라는 제목의 리뷰논문이 실렸다. 스포츠바이오의학역학연구소 등 프랑스 여러 기관의 공동연구자들은 21세기 들어 나타나는 이런 현상들이 호모사피엔스의 생리적인 한계를 드러낸 결과라고 주장했다. 즉 20세기를 통해 인류는 영양, 의료, 위생을 꾸준히 개선해 호모사피엔스의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왔지만 21세기 들어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게 되면서 각종 생리지표도 한계, 즉 생물적 상한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 먹고 건강보조식품을 챙기고 적절한 운동을 해도 인류 진화의 결과로 한계 지워진 생물적 상한선을 넘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즉 현재 수준에서 완벽한 관리를 받더라도 호모사피엔스는 20대를 정점으로 생리적 지표가 꾸준히 떨어져 대부분은 100살이 되기 전에 생을 마치기 마련이고 ‘장수유전자’를 물려받은 소수의 사람들 역시 115세를 넘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122년을 산 칼망은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스포츠과학이 발달하며 체계적인 훈련과 첨단 장비의 도입으로 선수들의 기록이 꾸준히 나아졌지만 1980년대 들어 정체가 시작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그래프는 남녀 800m, 높이뛰기, 포환던지기의 해당 년도 10위까지의 기록을 표시하고 있는데 남녀 모두 1980년대 이후 정체됐음을 볼 수 있다.

 

스포츠에서도 인간의 한계는 감지되고 있다. 육상기록(연도별 상위 10위 까지)의 변이 추세로 1980년대 이후 정체돼 있다. 위는 여성, 아래는 남성으로 파란색은 800m, 녹색은 높이뛰기, 주황색은 포환던지기다. - 생리학의 경계 제공
스포츠에서도 인간의 한계는 감지되고 있다. 육상기록(연도별 상위 10위 까지)의 변이 추세로 1980년대 이후 정체돼 있다. 위는 여성, 아래는 남성으로 파란색은 800m, 녹색은 높이뛰기, 주황색은 포환던지기다. - 생리학의 경계 제공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100m 9초58 기록을 세운) 우사인 볼트는 최대 달리기 속도를 낼 수 있는 극단적으로 드문 표현형을 지닌 예외”라고 쓰고 있다. 즉 오늘날 엘리트 스포츠에서 영웅의 탄생은 (평준화 된) 과학의 힘이 아니라 유전자의 힘이라는 말이다.


키가 한계에 이른 것도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20세기 말에 이런 조짐이 나타났고 젊은 층에서 근력이나 지구력 등 체력의 저하도 동반되고 있다. 즉 호모사피엔스가 점점 약골이 되고 있는 건 지구촌의 현상이라는 말이다.

 


인류세의 어두운 그림자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호모사피엔스가 정점에 도달한 지금 오히려 인류의 퇴행을 걱정할 시점이라고 우려했다. 즉 21세기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를 정도로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그 부메랑이 인류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배출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건강과 수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주변 온도가 20~26도 사이일 때 인간의 생존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구온난화로 이보다 기온이 높은 기간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2003년 서유럽에 40도가 넘는 폭염이 닥치면서 프랑스 1만5000명을 비롯해 무려 7만 명이 사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편 인류의 무책임한 활동의 결과인 대기오염 역시 인류의 건강과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의학저널 ‘랜싯’ 5월 13일자에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5년 동안 대기오염이 사람들의 건강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지구촌에서 초미세먼지 때문에 조기사망한 사람이 무려 420만 명에 이르러 전체 사망자의 7.6%를 차지했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전체 평균 수명보다 무려 28년이나 짧다. 한편 1990년 초미세먼지로 조기사망한 사람은 350만 명이었다.


지구촌의 평균 인구 가중 초미세먼지 농도는 1990년 39.7㎍/㎥에서 2015년 44.2로 11.2% 높아졌다. 게다가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이런 식으로 초미세먼지 농도가 계속 높아진다면 25년이 지난 2040년 조기사망자 수가 얼마가 될지 걱정이다.


우리나라도 초미세먼지로 매년 2만 명 가까운 사람이 조기사망하고 있고 폐암 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달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여성 폐암환자의 85%가 비흡연자라고 하는데 아마도 초미세먼지 농도 증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랜싯’ 논문에 따르면 초미세먼지로 인한 2015년 지구촌 폐암 사망자는 28만여 명이다. 

 

2015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13년 미국 중년 백인의 기대수명이 1999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사망원인을 보면 약물중독(빨간 실선)과 자살(파란 실선)이 크게 늘고 있어 일상의 삶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2015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2013년 미국 중년 백인의 기대수명이 1999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사망원인을 보면 약물중독(빨간 실선)과 자살(파란 실선)이 크게 늘고 있어 일상의 삶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과학을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2015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는 유럽계(백인) 중년(45~54세) 미국인의 유병률과 사망률이 21세기 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뜻밖의 연구결과가 실렸다. 1999년과 2013년 사이 사망 원인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알코올을 비롯한 약물중독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자살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즉 풍요로운 미국을 상징하던 백인 중년층의 퇴행은 일상생활이 무너진 결과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도 불길한 건 마찬가지다. 지난 11월 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6년 건강검진통계연보에 따르면 담뱃값 대폭 인상으로 떨어졌던 성인 흡연율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비만율(BMI 25 이상)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특히 30대와 40대 남성의 경우 흡연율은 각각 46.3, 46.5%로 2위와 1위를 차지했고 비만율은 각각 46, 44.8%로 1위와 2위에 올랐다. 


리뷰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인류의 건강과 수명과 관련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는 과학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즉 과학의 발달로 15년 내에 기대수명이 매년 1년씩 길어질 것이라거나 2000년 이후 태어난 사람 대다수는 100세 생일을 맞을 것이라거나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 인류의 수명이 200~500세가 될 거라는 예측(다들 과학논문에 실린 내용이다)은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물론 최근 노화를 억제하거나 되돌리는 연구가 한창이지만(구글도 뛰어들었다) 언제 이런 약물이나 치료법이 임상에 적용돼 효과를 볼지는 아직 미지수다. 예를 들어 지난 2014년 ‘젊은 피’ 회춘 동물실험이 화제가 됐다. 즉 젊은 쥐의 피 또는 혈장을 늙은 쥐에게 공급할 경우 늙은 쥐가 심신의 젊음을 회복한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이해 말 30세 미만의 젊은이의 혈장을 50세 이상인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 투여하는 최초의 ‘회춘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그런데 최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임상을 진행한 스탠퍼드대 토니 위스-코레이 교수팀은 젊은 피(혈장)가 환자의 인지력을 회복하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결과를 발표해 좌중을 실망시켰다. 오랜 세월 진화로 결정된 인체의 생물적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케 한다.


리뷰논문에서 저자들은 “지난 천 년 동안 인류가 생리적 한계에 도달했는가 여부를 테스트하기는 어려웠다”며 “오늘날 우리는 이 한계를 인식하게 된 첫 세대”라고 담담히 서술했다. 그리고 미래 과학의 힘에 막연히 기대할 게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직시해 이미 도달한 정점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스포츠 활성화 등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평소 생명과학의 발전을 깊은 애정으로 지켜보는 필자이지만 이번에는 저자들의 생각에 십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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