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자살, 간단히 접근하기 힘든 이유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12월 20일 14:12 프린트하기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청소년과 젊은 층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이들의 자살 소식은 자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게다가 황색 언론은 유명인이 자살한 원인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기사를 남발하고, 허락도 없이 유서를 공개합니다. 심지어 자살을 실행한 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이쯤 되면 ‘자살 권하는 사회’가 아닌지 의문입니다.

 


힘들어서 자살한다?


흔히 삶이 고되고 힘들어서 결국 자살에 이른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유명 인사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면, 모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하지만 자살은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뜨거운 감정으로 충만한 경험도 아닙니다. 자살은 한편으로는 분명 사회문화적 현상이지만, 개개인의 자살은 정신의학적으로 다루어야만 하는 일종의 병리 현상입니다.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 설치된 자살 예방 문구. 그러나 이러한 식의 접근은 대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 설치된 자살 예방 문구. 그러나 이러한 식의 접근은 대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자살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따르면, ‘자살은 적극적인 죽음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생명을 해치는 능동적인 자기 파멸 행위’입니다. 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한때 마포대교에는 이런 다리 난간 마다 이런 글이 적혀 있었죠.


‘젊었을 때 고민 같은 거 암 것도 아니여. 나이들어봐. 이그…’
‘오늘 하루 어땠어? 잘 지내지?’
‘사랑을 꿈꾸시나요? 사랑한다.’


자살을 막고자 하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술에 취해서 홧김에 뛰어들려는 사람에게는 조금 도움이 되었을까요? 대부분의 ‘성공’한 자살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심리적 변화의 최종 결과로 나타나는 ‘능동적인 자기 파멸’입니다. 간단한 말 한마디를 들었다고 해서 마음을 돌리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배앓이를 하는 사람에게 ‘견뎌. 나도 젊었을 때, 배가 자주 아팠지. 힘내라. 사랑해’라는 말을 건네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그보다는 얼른 배앓이 약을 주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자살도 그렇습니다. 아주 복잡한 의학적 현상입니다. 그렇게 간단히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

 


왜 자살을 하는가?


인간은 왜 자살을 할까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네. 자살자에 대한 심리 부검 결과를 보면 모든 사람의 자살은 각자 그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짧은 경험에 바탕하여, ‘그 정도라면 나도 자살하겠다’라던지 ‘약해 빠져서 그런거야’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레오 톨스토이, 1919년 안나 카레니나 소설의 삽화. 경직된 사회분위기에서 허락되지 않은 사랑에 빠진 안나 카레니나는 결국 열차에 뛰어 들어 자신의 생을 마친다.
레오 톨스토이, 1919년 안나 카레니나 소설의 삽화. 경직된 사회분위기에서 허락되지 않은 사랑에 빠진 안나 카레니나는 결국 열차에 뛰어 들어 자신의 생을 마친다.

원인은 각각 다르더라도 자살 현상에 대해서는 대략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에드윈 슈타이트만은 자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총으로 머리를 날려버리는 식의 상남자 스타일. 우발적인 경우가 많고,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라도 하면 바로 후회

2.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끝내는 타입. 이미 예고된 죽음을 조금 앞당기는 것
3. 내세에서의 환생을 기약하면서 죽는 부류.  다시 말해서 ‘죽고 싶지 않아서, 죽는 경우’
4. 죽을까 말까 전전긍긍 고민하다가, 가족에게 모두 알리고 자살을 하는 타입. 애매한 용량의 음독을 하거나 사람들이 많은 대낮에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들


이러한 분류가 종종 유용하게 쓰이기도 하지만, 각 자살 시도자의 삶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살 시도자 혹은 자살 징후자 각각에 대해서 개별적인 의학적 접근을 해야만 합니다. 

 


자살에 대한 몇 가지 편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발표한, 자살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자살을 떠올리게 하므로 하면 안된다.
괴로워하던 사람이 갑자기 편안해지면, 자살 위험은 끝난 것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사회적 실패자일 뿐이다.
자살은 단지 정신병이다.
자살은 예방과 치료가 불가능하다.
자살하는 사람은 꼭 죽겠다는 강력한 결단을 내린 사람이다.
한번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기어이 자살을 하고 만다.
자살을 한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진다.
진짜 자살할 사람은 자살 의도를 밝히지 않는다(자살 의도를 밝힌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네. 모든 잘못된 상식입니다. 자살 생각이 자꾸 나거나 주변에 자살 징조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률을 보이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언론을 포함한 여론 형성 행위자들은 알권리와 자살예방원칙 사이에서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정신의료인은 보다 좋은 상담과 치료를 제공하며, 우리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의 자살 징후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며, 국가는 보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려는 단합된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구성원의 적극적인, 그리고 올바른 노력이 필요하다.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구성원의 적극적인, 그리고 올바른 노력이 필요하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인류의 신체와 정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공부했다. 현재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개발하며,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신경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7년 12월 20일 14:12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7 + 9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