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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면 과학 교실] 숲이 우선일까? 나무가 우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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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3일 15:00 프린트하기

GIB 제공
GIB 제공

솎아베기

_윤병무


나무 옆에 갈참나무
나무 뒤에 굴참나무
나무 앞에 떡갈나무
나무 곁에 신갈나무


이름보다 많은 나무
수풀보다 적은 나무
엄마보다 작은 나무
엄마 곁에 누운 나무


자식 먼저 앞세워서
바람으로 우는 나무
나뭇잎을 떨구어서
낙엽으로 재운 나무


이름밖에 없는 나무
이름 없이 잠든 나무
나이밖에 없는 나무
동심원만 있는 나무


줄기끼리 모인 나무
가지끼리 묶인 나무
차곡차곡 쌓인 나무
덩그마니 남은 밑동


물관 체관 끊겨 버려
물도 당도 가로막혀
여러 낮밤 지나서는
이파리도 마른 나무


이곳으로 저곳으로
따로따로 흩어져서
갑순이는 탁상 되고
갑돌이는 걸상 되니


사람 손에 누웠어도
사람 위해 사는 나무
생전으로 가고 지고
고향 땅에 살고 지고


동그라미 걸상에는
동그라진 기억 있고
직사각형 탁상에는
모서리각 추억 있네


시인의 덧말


간벌(間伐)의 순화어인 ‘솎아베기’는 숲속 나무들이 잘 자라게끔 서로의 간격이 가까운 나무들 중에서 비교적 작은 나무들을 솎아 베어 냄을 뜻하는 말입니다. 중심적인 나무의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솎아베기는 숲을 가꾸는 입장에서는 필요한 일이겠지만 살아남지 못하고 베이는 나무로서는 느닷없는 사형을 받는 셈이지요.

우리 동네 동산에도 나무들이 많이 자라 한동안은 일꾼들의 손에서 솎아베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산책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곳곳에 베인 나무들이 즐비했습니다. 제 줄기가 잘려 나간 줄도 모르는지, 여러 날 동안 그 밑동들의 절단면에는 뿌리에서 줄기로 물을 올리는 물관과, 광합성한 잎에서 가지와 줄기로 포도당을 내리는 체관에서 배어난 진액이 송송히 맺혀 있었습니다.


나무의 씨앗이 가까운 데 떨어질 가능성이 많으니 숲에는 어미 나무 주변에 자식 나무가 함께 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솎아베기를 할 때는 보통은 나이 많은 나무보다 나이 적은 나무가 톱날에 희생되니 어미 나무에게 마음이 있다면 한없이 슬프겠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 때마다 큰 나무들은 사락사락 나뭇잎을 흔들며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여 쓰러진 나무들은 미생물들의 양분이 되어 세월과 함께 천천히 분해되기도 하지만, 더러는 땔감으로 사용되고 더러는 목재로 쓰여 다양한 가구나 도구가 됩니다. 가구나 도구가 된 나무는 사람 손에 죽어서도 폐기될 때까지는 사람을 위해 제 쓸모를 다합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세요. 가구마다 도구마다 살아생전 나무들의 추억이 새겨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편집자주

윤병무 시인이 [생활의 시선]과 [때와 곳]에 이어 [짬짜면 과학 동시]를 연재합니다. 시심을 담아 과학을 노래하고, 시인의 시선으로 과학을 이야기합니다. 짬뽕과 짜장면을 한번에 맛볼 수 있는 짬짜면처럼 시와 산문, 과학과 문학을 한번에 음미하는 흔치않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시인의 눈으로 과학을 보고, 과학의 눈으로 시를 읽어보세요.


※ 필자 소개
윤병무. 시인. 시집으로 <5분의 추억>과  <고단>이 있으며, 동아사이언스에서 [생활의 시선]과 [때와 곳]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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