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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최전선] 병든 세포 실시간 추적으로 암 조기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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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13:50 프린트하기

나노바이오 I 미세 생명현상 보여주는 ‘나노램프’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산화철 나노입자 조영제(나노램프)를 이용해 개(왼쪽 사진)와 원숭이의 혈관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모습. 미세한 뇌 혈류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어 뇌중풍 등 뇌질환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 -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최근 생체 내 병든 세포만 눈에 잘 띄게 만들어 주는 ‘나노입자 조영(造影)제’를 이용해 세포 내에서 나타나는 분자 수준의 생화학적 변화를 추적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조영제는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광학영상 등 의료영상을 찍을 때 화면상에서 조직이나 세포가 밝고 선명하게 보이도록 해 주는 물질이다. 나노입자 조영제는 보통 1∼20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수준인 나노입자 내부에 조영제가 담겨 있는 구조다. 표면에는 암세포, 줄기세포, 대식세포 등 표적 세포나 이와 연관된 효소, 이온, 산성도(pH) 등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부위가 있어 표적 세포를 인식하고 추적할 수 있다.

 

나노입자 조영제를 활용하면 암세포 같은 표적 세포만 주변보다 10배가량 밝고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불을 켜듯 표적 세포를 밝혀 준다는 데서 ‘나노램프’로도 불린다.

 

침습적 조직 검사 없이도 몸속 깊숙한 곳에 있는 소량의 암세포까지 쉽게 찾을 수 있어 신속하고 정확한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 또 입자 크기가 작은 만큼 세포에 잘 흡수되고 부피 대비 표면적이 넓은 데다 체내 체류 시간이 길어 적은 양으로도 높은 효과를 나타낸다.

 

광학영상 나노램프를 개발한 권익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일반적인 조영제를 이용해 치료 경과를 확인하려면 육안으로도 변화가 보여야 하기 때문에 최소 4주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나노램프를 활용하면 5분 안에도 암조직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다”며 “암세포의 활동을 추적 연구할 수 있어 여러 치료제 개발의 효율과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노램프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리포솜(지질소포체) 등 인체 유래 나노입자를 활용한 약물 전달체는 미국 셀진의 ‘아브락세인’(췌장암 치료제) 등 이미 상용화된 것들이 꽤 있지만, 이보다 더 늦게 개발된 나노램프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아직 제품화된 것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테크놀로지 리뷰’에서 나노램프를 ‘분자영상’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바꿀 10대 기술로 꼽기도 했다. 당시 랄프 바이슬레더 미국 하버드대 의대 종신교수 등이 약물 전달용 나노입자에 조영제를 접목하면서 관련 연구가 늘었다.

 

국내에서는 현택환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서울대 특훈교수), 권 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2006년부터 연구 성과가 나오기 시작해 현재는 세계 정상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달 15일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전 톰슨로이터 지식재산과학사업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을 기준으로 상위 1% 연구자 3300여 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든 국내 연구자 27명 중 무려 8명(30%)이 나노램프 같은 기능성 나노입자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었다. 현 단장과 권 연구원도 거기 포함된다.

 

최근에는 하나의 나노입자가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다기능성 나노입자’가 대세가 됐다. 나노램프 하나가 2가지 이상의 의료영상 조영제로 작용하거나 나노램프가 약물 전달체 역할까지 하는 식이다. 후자의 경우 진단(diagnosis)과 치료(therapy)를 한 번에 할 수 있다는 데서 ‘테라그노시스(theragnosis)’라고도 한다. 입자에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물질 여러 가지를 담거나 결합시켜 만든다. 김광명 KIST 테라그노시스연구단장은 “조기 진단부터 치료, 경과 확인까지 한 번에 할 수 있기 때문에 암 치료뿐만 아니라 면역 치료, 줄기세포 치료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의약품의 투여량을 줄이고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노입자 자체가 조영제 역할을 하는 나노램프를 활용할 수도 있다. MRI 나노램프, CT 나노램프로 각각 개발된 산화철 나노입자, 금 나노입자가 대표적이다. 표적 세포에서만 자기장 변화를 일으켜 영상신호 세기를 높여 주는 원리다. 현 단장은 “나노입자의 구조 자체가 조영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면 그 안에 치료제를 넣어 입자 하나로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 단장 연구팀은 이미 2008년에 치료제를 담을 수 있는 캡슐형 산화철 나노입자를 개발했다. 올해 7월에는 중국 산후이병원과 공동으로 기존 기술로는 영상화가 어려웠던 뇌 혈류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산화철 나노입자의 조영 성능을 개선하고, 임상시험 직전 단계인 원숭이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현 단장은 “뇌중풍(뇌졸중) 등 뇌질환의 조기 진단에 활용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김 단장도 “상용화에 가장 가까이 간 기술”이라며 “아직까지 임상시험을 통과한 다기능성 나노입자는 없다”고 말했다.

 

천진우 IBS 나노의학연구단장(연세대 특훈교수) 연구팀도 올해 2월 자성을 띤 두 물질 사이의 거리에 따라 MRI 신호의 세기가 달라지는 ‘자기공명튜닝(MRET)’ 현상을 이용해 입자 자체가 조영제 역할을 하는 나노램프를 개발했다.

 

방사성 나노입자를 활용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조영제, 광학영상 조영제로 쓰이는 퀀텀닷 나노입자, 초음파 영상에서 표적 세포가 잘 보이도록 주변에 기포를 생성하는 나노버블 등도 동물실험 단계에 있다. MRI의 나노 조영제로 활용되는 소재도 망간 나노입자 등 다른 소재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김 단장은 “새로운 약물이 임상시험을 통과하는 데 보통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0년대에는 나노램프도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최근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어 향후에는 국내에서도 상용화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권 연구원은 “앞으로는 장기간 지속 투여했을 경우에도 독성이 없는지 밝히는 것이 주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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