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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알려줄개 ③] 본능과 이성 사이, 개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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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05일 17:00 프린트하기

최근 개가 사람을 무는 사건에 대한 보도가 여럿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됐고요. 일부에서는 특정 몸무게 이상의 개는 무조건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고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듯 개가 무는 교상 사고도 원인을 찾아야 해결책도 나올 겁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감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개는 억울하다고요.

 

● 개도 싸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인 걸 안다

 

멀리서 누렁이 한 마리가 달려옵니다. 이전에 만났을 때 주인이 사납다며 조심하라고 했던 개입니다. 긴장하며 손에 쥐고 있던 우리 개의 리드줄을 단단히 움켜쥐는데 어째 분위기가 화사합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우리 개와 인사를 합니다. 멀리서 주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개를 붙잡고 산책 중에 리드줄이 끊어졌다며, 미안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뒤에 의아해하며 말을 덧붙입니다.

 

“이상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순할까요?”

 

‘싸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싸우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해지니 그 전에 해결하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사람 사이에 내려오는 격언이지만 세상 사는 모든 만물에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동물 다큐멘터리 보면 흔히 나오지 않습니까? 동물조차 결정적인 순간 – 지켜야하는 새끼가 있거나 생존이 걸린 영역 싸움 – 이 아니면 슬슬 피하기 마련입니다.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한 상황, 문제가 벌어질 것 같다면 일단 먼저 피하려고 듭니다. 영국소동물수의학회에서 펴낸 개‧고양이 행동의학 매뉴얼에 따르면 개가 무는 행동을 보이기까지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이 있습니다. 개도 실제로 상대를 무는 등의 공격적 행동을 하기 전에 자리를 피하고 싶어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는 대부분 리드줄에 묶여 있습니다. 달아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돼 있지요. 피할 수 없으면 그 다음 단계로 공격성이 진화될 뿐입니다. 몸을 뻣뻣하게 굳혀 멈추거나 으르렁 거리고, 물려고 위협하다 물게 됩니다.

 

과학동아 제공
과학동아 제공

 

그렇다고 개가 공격하기 전에 도망가게 하기 위해 개 리드줄을 하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개가 공격성을 보이며 물기 전에 (싸움나기 전에) 서로 피하자는 말입니다. 개가 멋지다/예쁘다/귀엽다고 함부로 다가가거나 쓰다듬으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 이제 와서 공격성과 충성심을 버리라니, 개는 억울하다

 

애초에 사람에게는 전혀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요? 수천 년, 수만 년이 흐르고, 그 시간 동안 여전히 사람들이 공격성이 없는 개를 원한다면 정말 무는 능력은 아예 사라진 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원하는 개는 ‘잘 무는 개’였습니다.

 

개의 조상이 처음 사람과 함께하게 된 계기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멸종 위기에 놓였던 고대 늑대 중 한 종이 생존 수단으로 인간에게 길들여지기로 결정했을지, 아니면 야생 늑대를 인간이 데려다 키웠을지 알 수 없습니다. 개와 늑대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지만 두 동물이 서로 교잡이 가능한 걸 보면 완전히 갈라진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개와 늑대의 분리는 여전히 진행 중일 겁니다.

 

개는 본래 소나 돼지, 닭처럼 특정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키운 가축입니다. 지금도 개 품종을 나눌 때 목양견이니, 사역견이니 하는 식으로 나눕니다. 개의 용도가 정해져있다는 뜻입니다. 수렵견은 사냥을 돕는 개였습니다. 농장에서 작은 들쥐 따위를 사냥하던 테리어 그룹, 시야와 냄새를 이용해 사냥을 하던 하운드 그룹처럼 큰 분류에 들어가지 않아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의 대부분은 수렵견 출신입니다. 수렵견이 아니면 사역견이었습니다. 사역견은 사냥을 뺀 나머지 일을 돕는 개를 말합니다. 양을 치는 목양견이나 집을 지키는 번견, 힘과 지구력이 좋아 썰매를 끄는 썰매견 등입니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힘이 좋고’ ‘사냥을 잘하며’ ‘지키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개를 최고로 치고, 또 이런 능력을 갖도록 반복해서 품종을 개량해 왔습니다. 인간에게 운명을 맡긴 개는 충실히 이 능력을 키워왔고요. 그런데 이제와서 인간은 개에게 이 능력을 버리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껏 능력을 발전시켜왔던 개로서는 세상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이 능력을 버리기 위해 수천 년간 개량돼 온 것처럼 또다시 수천 년을 필요로 할지도 모릅니다.

 

오가희 기자 solea@donga.com 제공
오가희 기자 solea@donga.com 제공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개는 여전히 변하고 있습니다. 공격성을 낮추고 집 안에만 있어도 충분하도록 몸집 크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량되고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인간에게 종의 운명을 맞긴 개는 살아남기 위해 또다시 인간이 원하는대로 선택할 겁니다. 그 때까지는 서로 조금 참는 것이 어떨까요? 싸움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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