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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남극에 가다 ①] 체험과 탐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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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남극에 가다 ①] 체험과 탐험 사이

2018.01.17 20:22

※ 편집자주 펭귄이 알을 품고 새끼를 노리는 새들과 사투를 벌이는 땅. 아문센을 비롯한 위대한 탐험가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개척한 곳. 범접할 수 없는 자연 속에서 소수의 선택받은 과학자들이 지구의 신비를 탐구하는 곳. 누구에게나 남극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당신에게 남극은 어떤 곳인가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나 갈 수는 없는 곳이라는 거죠. 현지인도, 과학자도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본 남극은 어떤 곳일까요? 극지연구소 남극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현정 어린이책 작가가 남극의 신비와 일상 이야기를 풀어줍니다.    

 

 

 

“언제부터 작가가 꿈이었어요?”

 

북콘서트에 온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묻는다. 

 

“음, 솔직히 나도 작가가 될 줄 몰랐어.”
 

나의 쿨한 대답에 아이들은 실망했지만 그건 사실이다. 솔직히 작가보다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 있다면 미지의 땅 극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새하얀 빙하를 배경으로 북극곰이 나온 날이면, 지하철 광고판에서 남극 월동대원을 모집한다는 전단지를 본 날이면 그곳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연구자도 아닌데... 나 남극에 갈 수 있을까?

 

연구자도 의사도 조리사도 아닌 내게 만만한 자리는 없었고, 나의 극지의 꿈은 한동안 표류했다. 그 사이 나는 동화작가가 되었고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쇄빙선인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을 여행하는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무작정 지원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극지 여행은 점점 닿을 수 없는 꿈이 되어가고, 지루한 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우연히 세종과학기지 준공 30주년을 기념하는 극지연구소의 남극체험단 모집 공고를 본 나는 별 기대 없이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어쩌다 1차에 합격했고, 설마하다 2차에 합격했고, 믿을 수 없게도 3차 최종 면접까지 통과했다. 그리고 나는 진짜 남극에 가게 됐다. 남극 킹조지섬에 있는 세종과학기지 말이다.

 

1년 중 70% 이상을 남극에서 지내는 ‘아라온호’. 한국이 보유한 7500t급 쇄빙연구선이다. 연구자는 아니지만 아라온호처럼 항상 극지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사진= 극지연구소)
1년 중 70% 이상을 남극에서 지내는 ‘아라온호’. 한국이 보유한 7500t급 쇄빙연구선이다. 연구자는 아니지만 아라온호처럼 극지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사진=극지연구소)

 

칠레 땅 끝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까지, 무한정 기다리다

 

오리엔테이션 날, 담당 직원은 “이번 남극 여행은 탐험이 아니라 체험이에요. 그러니까 남극에 가서 암벽 등반을 한다거나 블리자드 속을 헤매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환경 교육과 무전기 사용법, GPS 사용법, 매듭 묶는 법 등 극지 안전 교육을 받는 동안 이미 나는 마음속으로 스콧이나 아문센이 되어 있었다. 방한복에 새겨진 태극기를 보는 순간, 남극 땅에서 희귀한 돌멩이 하나라도 찾아야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솟으며 내게 ‘남극 체험’은 이미 ‘남극 탐험’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천을 출발해 마드리드, 칠레 산티아고, 푼타아레나스에 이르는 30시간이 넘는 연속 비행은 예상했던 것보다 고단한 여정이었다. 마침내 칠레 땅 끝 푼타아레나스에 짐을 풀 때까지만 해도 남극 여정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관광지가 아닌 남극은 연구나 탐사 목적이 있는 극히 제한된 사람에게만 열려있고, 남극까지 가는 교통 수단 또한 극히 제한된다. 배를 제외하고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까지 가는 방법은 칠레 공군기를 타거나 민항기를 타는 두 가지 방법뿐이다.

 

칠레에서 남극으로 이동하는 공군기 안에서 탑승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 전현정 제공
칠레에서 남극으로 이동하는 공군기 안에서 탑승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 이소영 제공

비행 상황은 기상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까닭에 일정은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오전에 남극으로 가는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우리 일행은 짐을 싼 채 대기에 들어갔다. 그날 오후 식당에 들러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을 생각에 들떠 있는데, 급하게 다음 날 새벽 비행 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탑승객 수가 6명으로 제한됐다고 했다.

 

푼타아레나스에서 바라본 바다. 무사히 남극에 갈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 전현정 제공
푼타아레나스에서 바라본 바다. 무사히 남극에 갈 수 있을까? - 전현정 제공

우리 일행은 취재진을 포함해 모두 10명. 서바이벌 게임도 아닌데, 10명 중에 6명만 골라 남극을 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체험단 4명과 단장 1명, 프로듀서 1명이 먼저 떠나기로 결정됐다. 나머지 4명은 언제 떠날지 미정인 상태로 푼타아레나스에 남았고, 기상이 계속 나빠지는 최악의 경우, 남극 땅을 밟지 못하고 한국으로 곧장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지만 우리 일행은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나머지 일행들과 기약 없는 작별을 하며, 벤을 타고 새벽길을 달리는데, 새벽달이 눈에 들어왔다. 사흘 전 한국을 떠나오던 날 새벽에 봤던 달 모양이 반대로 뒤집혀 있었다. 남극에 가까이 왔음이 실감났다. 벤을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칠레 공군기지에는 군복을 입은 칠레 군인들 한 무리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일행과 작별하는 날의 새벽달.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바라본 초생달은 한국에서와 반대 모양으로 뒤집혀 있다. - 전현정 제공
한국을 떠나오던 날 새벽에 봤던 달 모양이 반대로 뒤집혀 있었다. - 전현정 제공

 

악명높은 남극행 공군기, 겨우 정신을 붙들다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남극행 공군기는 악명이 높았다. 일단 화장실이 없으니 비행기 타기 전날부터 음료는 자제해야 하고, 소음이 심하니 귀마개는 필수고, 구토가 날 수 있으니 비닐 팩을 준비하라는 조언을 수도 없이 들었다. 짐과 몸무게를 재고 수속을 끝내자 칠레 군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칠레말로 한참동안 안전수칙을 설명했다.

 

마침내 탑승 시각이 되고, 나와 일행은 프로펠러 소음이 가득한 공군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빨간 천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좌석은 비행기 좌석이라기보다 캠핑용 의자 같았고, 머리 위 선반에 쌓아 놓은 짐들은 언제든지 떨어질 준비를 마친 공군기 안 풍경은 마치 어수선한 대피소 같았다. 이륙과 함께 시작된 소음 때문에 바로 옆 사람과 대화도 불가능했고, 진동으로 온몸이 떨려왔다. 마치 두 시간 동안 흔들리는 치과 의자에 앉아 충치 치료를 받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려보려고 했지만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흔들려 눈앞이 희미해졌고, 계속되는 소음에 귀도 무감각해졌다.

 

어수선한 대피소같았던 분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동료들 - 전현정 제공
어수선한 대피소같았던 분위기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동료들 - 강민구 제공

 

동화작가, 드디어 남극에 발을 딛다!

 

인간이 다른 종의 생물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을 잊어야한다고 했던 한 생태학자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나는 그 순간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새를 생각했다. 인간의 눈에 한없이 자유롭게 나는 새는 어쩌면 매일 이 엄청난 기압과 소음을 견디며 죽을 힘을 다해 날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딴 생각을 하는 사이 공군기는 벌써 활주로에 착륙했다.

 

공군기 창 바깥으로 남극이 보인다. 남극에 왔다니 도착한다니, 꿈만 같다! - 전현정 제공
공군기 창 바깥으로 남극이 펼쳐져 있다. 꿈만 같다! - 강민구 제공

공군기지 주변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저 멀리 바다에는 점점이 얼음 덩어리가 떠다녔지만, 이곳이 남극이란 것이 와 닿지 않았다. 마중 나와 있던 세종 기지 월동대원과 함께 근처 기지를 둘러보고 러시아 기지 근처 러시아 정교회가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온통 눈과 빙하가 떠 있는 바다 뒤로 새하얗다 못해 파란 빙벽이 장막처럼 둘러쳐져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순간순간이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 같았다. 남극의 바다가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비로소 나는 남극 한 가운데 서 있었다.


 

GIB 제공
GIB 제공

[동화작가, 남극에 가다]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 필자소개

 

전현정. 대학에서는 집 짓는 법을 배웠고, 엄마가 돼서는 동화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글 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으랏차차 뚱보클럽>으로 19회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헬로 오지니>, <니체 아저씨네 발레교실>, <퓰리처 선생님네 방송반>이 있다. 세종과학기지 준공 30주년 기념 남극체험단으로 선정되어 2017년 12월 킹조지섬 남극세종기지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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