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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9000년 전 사냥개의 활약상 생생하게 묘사된 암각화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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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09일 20:30 프린트하기


개의 가축화와 초기 쓸모(가축화 이유)라는 주제는 고고학연구에서 길고도 복잡한 역사가 있다.

- 마리아 구아그닌 등, 지난해 11월 16일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사이트의에 공개된 한 논문


지난주 금요일 ‘동아일보’ 과학면에 실린 ‘올해 무술년은 황금개의 해가 아닌 황금늑대의 해일수도...’라는 기사를 보며 좀 의아했다. 최근 수년 사이 고고학 및 고게놈학 연구 성과로 개의 기원이 기존 1만2000년에서 3만 여 년 전으로 한참 올라간 게 이제는 확고한 정설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사 말미에는 “7000~9000년 전 개부터 진짜 ‘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스페인 레이후안카를로스대 애비 드레이크 연구원의 코멘트가 인용됐기 때문이다.

 

개가 늑대에서 진화한 게 확실함에도(여전히 같은 종(학명 Canis lupus)으로 분류되고 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이기 때문에 형태나 게놈보다는 행동이 ‘진짜 개’의 요건이란 뜻일까. 그렇다면 형태와 게놈의 증거인 3만 년 전과 드레이크 연구원이 추정하는 9000년 전(그나마 최대치) 사이 2만 여 년 동안은 어정쩡한 ‘늑대개’ 상태로 보냈다는 말인가.



네안데르탈인 멸종의 한 축?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과 팻 시프먼 명예교수는 2015년 ‘The Invaders’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는데(최근 ‘침입종 인간’이란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왔다), 흥미롭게도 ‘늑대개(wolf-dog)’란 용어를 만들어 썼다. 다만 그 맥락은 앞서 필자의 늑대개와 다르다. 즉 오늘날 벨기에 지역에서 발굴된 3만6000여 년 전 개과(科) 동물의 두개골 형태를 분석한 결과 늑대보다는 개에 가깝게 보이지만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는 오늘날 늑대와 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따라서 이 계열은 멸종했을 가능성이 크다) 잠정적으로 늑대개라고 부른 것이다.

 

개와의 협력이 현생인류의 성공에 중요했다는 가설을 담고 있는 ‘침입종 인간’이 최근 번역출간됐다. 2015년 출간된 원서의 표지로 개가 늑대처럼 생긴 것으로 묘사돼 있다. - 아마존(amazone.com) 제공
개와의 협력이 현생인류의 성공에 중요했다는 가설을 담고 있는 ‘침입종 인간’이 최근 번역출간됐다. 2015년 출간된 원서의 표지로 개가 늑대처럼 생긴 것으로 묘사돼 있다.- 아마존(amazone.com) 제공

즉 시프먼 교수에 따르면 유럽에 진출한 호모사피엔스(그래서 침입종이다)가 먼저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고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늑대개가 큰 역할을 했는데, 인간과 협력해 사냥을 하면서 경쟁력에서 네안데르탈인을 압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뒤 사냥 동맹인 인류와 개의 삶에 가장 방해가 된 경쟁자가 늑대였고 따라서 그 뒤 늑대의 개체수도 급감했다.


즉 시프먼 교수에 따르면 유럽에 진출한 호모사피엔스(그래서 침입종이다)가 먼저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고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늑대개가 큰 역할을 했는데, 인간과 협력해 사냥을 하면서 경쟁력에서 네안데르탈인을 압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뒤 사냥 동맹인 인류와 개의 삶에 가장 방해가 된 경쟁자가 늑대였고 따라서 그 뒤 늑대의 개체수도 급감했다.


‘진짜 개’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사람의 관심을 갈구하며 재롱을 떠는 반려동물이라면 사냥을 하는 개의 모습이 낯설 수도 있지만 사람과 한 편이 돼서 같은 종인 늑대에 맞서 먹잇감을 두고 경쟁해온 개의 모습 역시 ‘진짜 개’가 아닐까. 즉 시프먼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3만 여 년 전 이미 개가 있었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뼈와 게놈 정보만 있을 뿐 3만 여 년 전 늑대개가 정말 호모사피엔스와 협력해 사냥을 했다는 물증은 없다. 그리고 행동은 발굴할 수 없다는 게 고고학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물론 뼈나 도구를 통해 행동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지만, 3만 여 년 전 인간과 개의 협력 사냥의 경우는 이마저도 빈약하다.



다양한 사냥 전략 구사


지난해 11월 16일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사이트에는 이와 관련해 꽤 흥미로운 논문이 공개됐다. 8000~9000년 전 사람과 개가 함께 사냥하는 모습을 담은 암각화를 분석한 연구결과로 당시 정황이 워낙 생동감있게 묘사돼 있어서 사냥 장면을 직접 보는 듯하다. 논문을 읽으며 당시 개와 사람이 이 정도 수준으로 협력할 수 있었다면 공동 사냥의 역사는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프먼 교수의 주장이 꽤 설득력이 있다는 말이다.


고고학에서 바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암각화나 벽화는 당시 인류나 동물의 모습과 행동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특히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인 선사시대에는 그림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다.

지금은 황량한 사막지대인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의 슈와이미스(Shuwaymis)와 주바(Jubbah)에는 거의 1만 년 전부터 수천 년에 걸쳐 제작된 1400점이 넘는 암각화가 발견됐다. 이곳은 수만 년 동안 혹독한 가뭄으로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기후가 좋아지면서 대략 1만 여 전 다시 사람이 유입됐다. 이들은 수렵채취인으로 수천 년을 보냈고 어느 순간부터 가축을 기르며 유목민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암각화 1400여 점에는 그 과정이 그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의뢰로 암각화를 정리하는 작업을 해온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역사과학연구소의 고고학자 마리아 구아그닌 박사는 7000~8000년 전 유목민으로 바뀌기 이전의 암각화에서 유난히 개가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슈와이미스의 암각화 39점에 등장하는 개는 156마리고 주바의 암각화 108점에는 193마리다. 반면 유목시대로 바뀐 이후에는 개의 출연빈도가 뚝 떨어졌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진 구아그닌 박사는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동물고고학자 안젤라 페리 박사를 방문했다.


이제부터 8000~9000년 전 개와 사람이 한 팀을 이뤄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슈와이미스의 암각화를 하나씩 살펴보자. 실수를 피하기 위해 그림 번호는 논문을 따른다.


[그림3  케이넌 도그를 쏙 빼닮은 외모]

지중해 동부 레반트 지역의 토종견인 케이넌 도그(위)와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의 9000년 전 암각화에 새겨진 개(아래)가 꽤 닮았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Journal of Anthropological Archaeology) 제공
그림3_지중해 동부 레반트 지역의 토종견인 케이넌 도그(위)와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의 9000년 전 암각화에 새겨진 개(아래)가 꽤 닮았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Journal of Anthropological Archaeology) 제공

암각화에 그려진 개의 모습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봐도 한 눈에 개임을 알 수 있다. 뾰족한 귀와 말린 꼬리, 짧은 주둥이가 늑대나 코요테 같은 다른 개속(Canis) 동물과는 뚜렷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암각화에 등장하는 개 다수는 어깨나 가슴 쪽 돌을 깎지 않은 상태다. 이는 이 부분의 털 색깔이 다르다는 걸 부각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림 아래 사진 두 장은 암각화에 등장한 개다. 그림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 깎은 부분은 밝은 색으로 처리했다.


연구자들은 암각화의 그려진 개의 모습이 지중해 동쪽 레반트 지역의 토종개인 케이넌 도그(Canaan dog)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림 위의 사진 두 장이 케이넌 도그로 아래 암각화에 등장한 개와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케이넌 도그는 몸무게가 16~25kg인 중형견으로 레반트 지역에서 예로부터 양치기개로 길렀다.


흥미롭게도 게놈 분석 결과 케이넌 도그는 오래 전에 확립된 품종으로 나왔다. 연구자들은 암각화와 나오는 개가 케이넌 도그의 조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즉 수렵채취인이 유목민이 되면서 사냥개도 양치기개로 ‘직업’을 바꾼 것이라는 말이다.


[그림4_사냥꾼 두 명과 사냥개 21마리]

개들이 아이벡스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그림4_개가 21마리나 등장하는 암각화로 아래는 원상태를 찍은 것이고 위는 파낸 부분을 흰색으로 칠해 눈에 잘 띄게 처리한 상태다. 이하 이미지는 처리한 상태만 보여준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한 장면에 가장 많은 개가 등장하는 암각화다. 왼쪽에 암말(말은 수년 천 뒤에야 가축이 된다)과 새끼가 보이고 바로 앞에 사냥꾼이 활로 암말을 겨누고 있고 주변을 개들이 둘러싸고 있다. 오른쪽에 또 다른 사냥꾼이 역시 활로 암말을 겨누고 있고 개 십여 마리가 사냥감을 향해 포진해 있다. 암말과 새끼의 입장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 그림에서 주목할 장면은 개 세 마리가 목줄로 사냥꾼과 연결돼 있는 모습이다. 즉 사냥꾼은 목줄을 허리에 묶은 채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데 이 개들은 다른 개들과 뭐가 다른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들은 몇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먼저 역할 분담론으로 이 개들은 후각이 특히 발달해 사냥감을 추적하는 게 일이기 때문에 괜히 사냥감에 덤벼들었다가 다치면 안 되므로 목줄로 묶어둔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음으로 사냥꾼을 사냥감이나 다른 포식자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보디가드론이다. 끝으로 나이가 들었거나 너무 어려 직접 사냥에 뛰어들기에는 무리인 개들을 챙긴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한편 꽤 덩치가 큰 어미와 새끼를 목표로 하는 사냥 행태는 개와 사람의 협력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말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사람 혼자 사냥하기는 힘들고 덩치가 꽤 커서 개가 어미를 공격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개가, 새끼를 동반한 암말을 추격해 에워싸게 되면 어미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도망치지 않기 때문에 사냥꾼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 그리고 개는 기회를 봐서 새끼를 물어 죽인다


[그림7_아이벡스 목을 물어]

개들이 아이벡스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그림7_개들이 아이벡스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염소의 근연종인 아이벡스(ibex) 두 마리(왼쪽과 가운데)가 개 여덟 마리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장면이다. 아이벡스의 커다란 뿔이 잘 묘사돼 있다. 개들은 아이벡스의 목을 물어뜯고 있고 뿔의 방향으로 봤을 때 고개가 이미 돌아간 상태라 죽음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왼쪽 아이벡스의 경우 배도 공격을 받고 있다. 오른쪽 세 번째 아이벡스는 나중에 추가로 그린 것이다.

 

[그림8_재빠른 동물 사냥 전담]

그림8_개들이 가젤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그림8_개들이 가젤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이번엔 가젤(영양)이 역시 개에게 둘러싸여 목을 물어뜯기는 장면으로 그림7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처럼 덩치가 크지 않고 민첩한 동물들은 개가 혼자 사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를 쫓아가기에 바쁜 사냥꾼은 개가 목을 물고 있는 사냥감에 다가가 명줄을 끊는 ‘마무리’를 하는 게 고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림10_정말 사자도 사냥했을까?]

사냥꾼과 개 두 마리가 커다란 수사자와 맞서고 있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사냥꾼과 개 두 마리가 커다란 수사자와 맞서고 있다. - ‘인류학적 고고학 저널’ 제공

이번 사냥감은 덩치가 커다란 사자다. 왼편 사냥꾼 한 명과 수캐 두 마리가 가운데 수사자와 마주하고 있다(생식기가 잘 묘사돼 있어 성별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림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자 뒤에도 개 다섯 마리가 더 있다. 이건 정말 사자 사냥 장면일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실제 장면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고 사냥꾼의 용맹함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인 장면일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개를 동반한 사자 사냥을 언급한 문헌이 드물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프먼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는 이종동물(개)과 연합해 동족인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이번엔 개가 이종동물(사람)과 연합해 동족인 늑대를 거의 절멸시켰다. 이처럼 각자 서로를 이용해 동족을 배반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과 개가 이처럼 서로를 예외적인 존재로 여기며(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대다수는 개고기를 안 먹는다!)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4권, 2012~2015),『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2014)가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2013), 『가슴이야기』(2014)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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