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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남매의 금지된 사랑.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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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04일 13:00 프린트하기

pixabay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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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미니시리즈, <가을동화>를 기억하시는지요? 주인공의 호연과 서정적인 영상미로 빛나는 이 드라마는 당시 무려 40%가 넘는 대인기를 누렸습니다. 송혜교, 원빈, 문근영 등이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죠.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막장’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입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재벌,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의 소재가 모두 등장합니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습니다. 남자 주인공 준서와 여자 주인공 은서는 유복한 윤 교수 집안의 남매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은서는 친 딸이 아니었죠. 실수로 산부인과에서 초등학교 동창 신애와 뒤바뀐 것입니다. 갈등하던 윤 교수 부부는 결국 은서를 버리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이후 어른이 된 준서와 은서는 우연히 재회하게 되고, 둘 사이에서 깊은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은서는 불치병으로, 준서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가을동화’의 한 장면. 극중 준서와 은서는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남매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 서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져 갈등한다. - 동아일보DB 제공
‘가을동화’의 한 장면. 극중 준서와 은서는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남매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 서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져 갈등한다. - 동아일보DB 제공 

 

남매의 금지된 사랑 
     
사실 준서와 은서의 사랑은 불법입니다. 민법에 의하면 친족 간은 물론이고, 과거에 친족이었던 사람과는 혼인을 할 수 없습니다. 즉 8촌 이상의 부계혈족, 4촌 이내의 인척 간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됩니다(혼인 금지의 범위는 국가별로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은서의 부모가 자신의 딸에게 민법 847조에 의거한 친생부인의 소, 즉 내 자식이 아니라는 소송을 걸어 친족 관계를 소멸시키면 혼인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딸이 바뀐 것을 알게 된 지 이미 2년이 지나서 권리가 소멸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물론 은서의 부모가 준서와 은서의 결혼을 위해서 이런 소송을 할 리 없겠습니다만

 

본론으로 돌아가죠. 도대체 왜 남매 간의 결혼은 금지된 것일까요?
    

 


동맹 이론
    
인류 사회에서 근친상간의 금지는 문화적 이유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인류가 작은 친족 집단으로 살고 있을 때, 보편화된 족외혼의 풍습이 아직 남았다는 이론이죠. 예를 들어 반드시 다른 부족의 이성과 결혼하도록 강제하는 부족을 생각해 봅시다(족외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많은 부족과 동맹을 맺게 될 것입니다. 이웃 부족과 계속 사돈 관계를 맺으니 강대해지는 것이죠.


반대로 분열을 조장하므로 근친혼을 금지했다는 주장도 있죠. 여동생 한 명을 두고, 형제들이 서로 싸우면 집안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브로니스와프 말리노프스키의 이론인데, 허점이 많아서 지금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UNESCO/Michel Ravassard (2005).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그는 족외혼을 통한 여자의 교환의 인류 사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 wikimedia(cc) 제공
UNESCO/Michel Ravassard (2005).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그는 족외혼을 통한 여자의 교환의 인류 사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 wikimedia(cc) 제공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족외혼을 통해서 가족 집단이 점점 큰 사회 조직으로 발전했다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근친상간 금지와 족외혼, 즉 부족간 ‘여자의 교환’이 인류 사회의 기초가 된 원동력이라는 것이죠. 레비스트로스는 심지어 ‘근친상간에서 벗어나면서 인간은 자연에서 문화로,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보했다’고 말합니다. 인류학자 레슬리 화이트는 이러한 입장을 보다 잘 정립했는데, 흔히 동맹 이론 혹은 협동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화이트는 너무 나가서 근친상간으로 인한 생물학적 해악은 없으며, 모든 것은 오로지 ‘문화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
     
에드워드 웨스터마크는 헬싱키 출신의 사회학자 입니다. 1886년 ‘문화는 인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가?’라는 제목의 석사 논문을 쓰고는, 결혼의 역사에 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합니다. 찰스 다윈이나 루이스 모건의 책을 읽고 싶었던 그는, 25살 나이에 영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런던 박물관에 틀어박혀, 5년 만에 ‘인류 혼인의 역사’라는 책을 펴내죠. 40대 후반에 런던 대 사회학 교수가 된 후로도 주로 영국에서 활동합니다. 핀란드 이름은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 인데, 주로 에드워드 웨스터마크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Library of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c1930s). 에드워드 웨스터마크 혹은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 그는 ‘인류 혼인의 역사’라는 책에서 인간은 같이 성장한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그는 5세 연상의 누나가 있었다.
Library of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c1930s). 에드워드 웨스터마크 혹은 에드바르드 베스테르마르크. 그는 ‘인류 혼인의 역사’라는 책에서 인간은 같이 성장한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그는 5세 연상의 누나가 있었다.

   
그는 근친상간금제(근친상간을 금하는 제도)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펼칩니다.  기존의 우생학적 입장(근친혼은 기형을 유발하므로 강제로 금지했다는 주장)이나 구조주의적 입장(동맹 형성을 위해 족내혼보다 족외혼이 선호되었다는 주장)과 달리, 단지 ‘가족끼리는 별로 끌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참신한 주장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웨스터마크 효과라고 합니다. 준서와 은서는 서로를 이성으로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린 시절에 같이 자란 이성에게는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이른바 부정적 봉인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죠.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과 의사들은 심하게 반발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성적 갈망이 정신 발달의 원동력이자,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는 이론)은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욕망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근친상간을 피하는 본성이 있다면, 굳이 이를 막는 제도가 생길 이유가 무엇이냐는 반대도 있었습니다. 황금가지를 쓴 제임스 프레이저의 비판이었죠.


당시 웨스터마크의 주장은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성계 전체를 풍미하던 프로이트와 프레이저의 비판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죠. 웨스터마크는 1937년에 사망했는데, 이후 그의 이론은 한동안 사장되어 있었습니다.
    

 


웨스터마크 효과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근친 교배는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자손을 유발하는 현상, 즉 근교 약세 현상이 확립됩니다. 이전에도 육종학자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관련된 과학적 증거가 쏟아져 나왔죠. 게다가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에서도 근교 회피의 현상이 폭넓게 보고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카크, 카푸친, 레무르, 거미원숭이, 개코원숭이 등 다양한 영장류에서 족외혼 현상(인간과 달리 수컷이 다른 집단으로 떠나는 형태)이 관찰되었고, 침팬지에서도 일부 근교 회피 현상이 보고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같이 성장한 이성은 결혼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주장을 실증하는 연구가 속속 발표됩니다. 중국의 민며느리 제도는 높은 이혼율과 낮은 출산율로 이어진다는 보고, 그리고 이스라엘 키부츠(자식이 부모와 떨어져 공동 생활을 하는 사회주의적 협동 농장)에서 자란 아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보고 등이죠. 게다가 MHC(주요 조직적합성 복합체) 유사성에 의한 친밀도가 성적 매력과 역상관 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다시 말해서 서로 냄새가 비슷한 가족끼리는 ‘애착’을 느낄 뿐 ‘성적 욕망’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심지어 후각 능력이 떨어지면 근친혼이 늘어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Kibbutz Afikim Archive (1960년 무렵). 이스라엘 집단 협동 농장, 키부츠의 아기들. 키부츠는 부부에게 별도의 생활 공간을 배정했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떠나 집단으로 양육되었다. 조셉 셰퍼의 연구에 의하면 연구 대상 키부츠의 동일 또래 집단에서 성관계 혹은 혼인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4세 이전의 시기를 같이 보낸 남매에게는 성적 욕망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 wikimedia(cc) 제공
Kibbutz Afikim Archive (1960년 무렵). 이스라엘 집단 협동 농장, 키부츠의 아기들. 키부츠는 부부에게 별도의 생활 공간을 배정했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떠나 집단으로 양육되었다. 조셉 셰퍼의 연구에 의하면 연구 대상 키부츠의 동일 또래 집단에서 성관계 혹은 혼인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4세 이전의 시기를 같이 보낸 남매에게는 성적 욕망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 wikimedia(cc) 제공


최근 발표되는 다양한 진화인류학적 연구들은 대부분 웨스터마크 효과를 지지합니다. 약 100년 전에 주장한 가설이 이제서야 입증되고 있는 것이죠. 아무튼 같이 자란 남매가 서로 사랑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별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아마 남매로 자란 분이라면, 굳이 어려운 이론을 들이대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아무리 예쁜 여동생이나 멋진 친오빠라도, 서로에게는 아무 느낌이 없다는 사실 말이죠.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인류의 신체와 정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공부했다. 현재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개발하며,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신경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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