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동화작가, 남극에 가다 ④] 금단의 땅, 남극특별보호구역을 가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8년 02월 07일 14:12 프린트하기

※ 편집자주. 펭귄이 알을 품고 새끼를 노리는 새들과 사투를 벌이는 땅. 아문센을 비롯한 위대한 탐험가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개척한 곳. 범접할 수 없는 자연 속에서 소수의 선택받은 과학자들이 지구의 신비를 탐구하는 곳. 누구에게나 남극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당신에게 남극은 어떤 곳인가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나 갈 수는 없는 곳이라는 거죠. 현지인도, 과학자도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본 남극은 어떤 곳일까요? 극지연구소 남극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현정 어린이책 작가가 남극의 신비와 일상 이야기를 풀어줍니다.    

 

남극 펭귄과 마주보고 있는 필자 - 공승규 제공
남극 펭귄과 마주보고 있는 필자 - 공승규 제공  

나는 놀이 공원보다 동물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지구에 살면서 나와 다른 생물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다. 휴일 아침, 곤하게 자고 있는 초등학생 딸아이를 억지로 깨워 서울 근교 동물원으로 향했다. 늦가을 쌀쌀한 날씨 탓인지 인적은 드물었고, 야외 우리는 빈 곳이 많아 유인원사로 발길을 돌렸다. 실내로 들어서자마자 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훅 끼쳐왔다. 때가 낀 관람 창을 소매로 문지르고 안을 살펴봤지만 놀이기구만 빈 방을 지키고 있을 뿐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동물원이 불편한 이유 


딸이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로랜드 고릴라 한 마리가 창을 등지고 앉아 공허한 눈빛으로 천정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딸이 눈을 맞춰보려고 아무리 애써 봐도 고릴라는 벽을 마주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고릴라 어디가 아픈가봐.”


딸은 풀이 죽었다. 결국 우리 모녀는 뿌연 창을 통해 고릴라의 뒷모습만 지켜보다 유인원사를 나왔다. 도시락을 먹으려고 사슴 우리 앞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눈에 봐도 사슴의 수에 비해 우리가 비좁아 보였는데, 그 중 사슴 한 마리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갇혀서 지내는 동물에게 나타난다는 비정상적인 ‘정형행동’처럼 보였다.


“저 사슴 이상해. 왜 저러는 거야?”


딸의 질문을 애써 외면하며 도시락을 꺼내려는데 어디선가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지만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낯선 소리에 놀란 건 사슴도 마찬가지인지 안절부절 못하고 우리 안을 돌아다녔다. 알고 보니 낯선 소리의 정체는 맹수사에 있던 호랑이 소리였다.

 

몸이 불편해서인지 무슨 불만이 있는 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분이 좋아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만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동물원에 다녀온 얼마 뒤 뉴스에서 딸과 함께 간 동물원에 있던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고를 냈다는 호랑이가 그 때 으르렁거리던 그 호랑이 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초점이 없던 로랜드 고릴라의 커다란 눈망울과 같은 자리를 맴돌던 사슴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겨울을 나려고 입은 하얀 털에 조류가 자라 얼룩덜룩 색깔이 변한 북극곰과 더위에 지친 펭귄이 물속에서 나오지 않던 어느 여름의 동물원 풍경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날 이후 내게 동물원은 불편한 곳이 되었고, 그 뒤로 동물원에 가지 않게 됐다.
 


금지된 땅에 발을 내딛다 

 

남극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펭귄 서식지가 세종기지 근처에 있다. 아스파 지역 돌 언덕 위의 펭귄들이 멀리서 보인다 - 전현정 제공
남극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펭귄 서식지가 세종기지 근처에 있다. 아스파 지역 돌 언덕 위의 펭귄들이 멀리서 보인다 - 전현정 제공

남극체험단에 선정되고, 제일 가 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는 남극특별보호구역(ASPA, Antarctic Specially Protected Area)였다. 남극 세종 기지 근처엔 펭귄 서식지 세 곳이 남극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남극특별보호구역은 외교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한데, 연구 목적 이외 허가가 잘 나지 않는 편이라고 해서 여행 일정이 확정되는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다.

 

결국 취재진을 포함한 일행이 제외되고, 펭귄 연구자와 남극체험단에게만 출입이 허락됐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순수한 야생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남극에서도 선택받은 자만 갈 수 있는 곳에 발을 디딘다는 약간의 ‘허영심’이 가슴 설레게 했다.

 

 

칠레 공군기를 타고 남극에 도착해 감격에 젖어 있을 때 엇비슷한 차림을 하고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봤다. 크루즈를 타고 온 관광객이었다. 그 중엔 한국인 아빠와 아들도 있었다. 누구나 갈 수 없다는 남극에 대한 환상이 그 순간 깨졌다. 하지만 남극특별보호구역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금단의 땅에 발을 내딛는다는 나의 허영심을 채워주기엔 충분했다.

 

 

펭귄의 육아생활 

 
설상차에서 내려 남극특별보호구역에 들어서자마자 이끼와 지의류가 카펫처럼 깔린 나지막한 언덕이 펼쳐졌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언덕 너머에 있을 펭귄의 존재를 예고하듯 시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졌다. 우리 일행이 가는 남극특별보호구역은 젠투 펭귄과 턱끈 펭귄 5천 쌍이 살고 있어 ‘펭귄 마을’로 불리는 곳인데, 여름을 맞아 어미들이 한창 알을 낳고 품는 시기라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듯 야생에서 살아가는 펭귄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에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움켜지고 발걸음을 땠다.

 

알을 품고 있는 펭귄 무리 - 전현정 제공
알을 품고 있는 펭귄 무리 - 전현정 제공


곳곳에 펭귄의 알을 노리는 스쿠아라고 불리는 남극도둑갈매기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마치 바닥 전체에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를 깔아 놓은 듯 질척거리는 땅을 통과하니 다시 나지막한 언덕이 나타나고, 그 언덕의 능선을 따라 까만 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움직이던 까만 점은 엎드린 채 알을 품고 있던 펭귄들이었다.

 

언덕을 돌아 내려가니 젠투 펭귄 번식지가 한눈에 펼쳐졌다. 처음 펭귄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맡았던 냄새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돌로 쌓은 둥지에선 아빠 엄마 펭귄이 교대로 알을 품고, 다닥다닥 붙은 둥지 사이로 보초를 서거나 부리로 돌을 집어 나르는 펭귄도 있었다. 서로 다른 둥지를 차지한 펭귄끼리 부리로 서로를 공격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알을 품고 있는 펭귄 무리 - 전현정 제공
알을 품고 있는 펭귄 무리 - 전현정 제공

여름이지만 바다 근처 둥지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웠고, 바다로 나가 애써 잡아온 크릴을 게워내 새끼에게 먹이느라 부모 펭귄의 하얀 배는 어느새 핑크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갑자기 새된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펭귄이 둥지 곁에 날아온 남극도둑갈매기를 쫓고 있었다. 펭귄 연구자의 말로는 연구를 위해 현장에 찾아온 연구자를 쫓으려고 어미 펭귄이 둥지를 비운 사이 남극도둑갈매기가 펭귄의 알을 훔쳐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펭귄들의 육아의 현장은 인간이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삶과 다름없이 치열했다. 무리에서 빠져나와 기지 근처에서 산책을 즐기던 펭귄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생을 마주하다

 

펭귄의 사체 옆으로 버려진 펭귄 알 한 개가 놓여 있었다. - 전현정 제공
펭귄의 사체 옆으로 버려진 펭귄 알 껍질 - 전현정 제공


언덕을 내려오다 둥지 옆으로 뼈와 깃털을 드러낸 펭귄의 사체를 봤다. 그 옆으로는 버려진 펭귄 알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껍질에 얇은 막과 핏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누군가 알을 훔쳐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니 펭귄들이 소리를 높이며 경계했다. 문득 그 순간 칠레 기지 근처에서 보았던 관광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졌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엿보겠다는 나의 호기심과 욕심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쪼그리고 앉아 몸을 낮췄다.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 있었을까? 어느 순간 펭귄들은 나를 의식하지 않고 둥지를 지키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 한 펭귄과 눈이 마주쳤다. 기껏해야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펭귄을 구경하지 않고 마주 바라볼 수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 [동화작가, 남극에 가다]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 필자소개

전현정. 대학에서는 집 짓는 법을 배웠고, 엄마가 돼서는 동화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글 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으랏차차 뚱보클럽>으로 19회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헬로 오지니>, <니체 아저씨네 발레교실>, <퓰리처 선생님네 방송반>이 있다. 세종과학기지 준공 30주년 기념 남극체험단으로 선정되어 2017년 12월 킹조지섬 남극세종기지를 방문했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8년 02월 07일 14:12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12 + 10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