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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진화심리학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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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11일 13:00 프린트하기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

     
루이 파스퇴르가 한 말입니다. 흔히 과학은 외부 세력의 영향에서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과학도 외부의 부침이 많은 분야 중에 하나입니다. 특히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 혹은 양육이라는 아주 중요한 논의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치나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일부 축자주의 기독교 종파에서는  ‘진화’라는 것 자체를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으니, 참 처지가 딱한 분야입니다. 

 

오늘은 조금 어려운 이야기, 다윈심리학을 둘러싼 영국, 독일 그리고 미국의 학문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영국의 찰스 다윈
     

1858년 런던의 린네 학회에서 찰스 다윈의 논문이 발표됩니다. 진화론이라는 거대한 학문 분야가 ‘창시’된 날이죠. 하지만 정작 학회장에 다윈은 없었습니다. 진화론이 세상에 발표되던 날, 그는 며칠 전에 죽은 어린 아들 찰스 와링을 땅에 묻고 있었죠. 이듬해 <생존 투쟁에서 유리한 종의 보존 혹은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이라는 긴 제목의 책이 출판됩니다. 보통 ‘종의 기원’이라고 줄여 부릅니다. 다윈은 책 출판을 앞두고 몹시 걱정했습니다. 자신의 이론이 미치고 올 사회적 파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다윈 이전 서양 사상을 지배하던 관점을 ‘자연의 사다리(Scala Naturae)’나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라고 합니다. 존재의 대사슬이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했는데, 이후 기독교 교부철학자들이 도입하였죠. ‘돌-식물-동물-인간-천사-신’이라는 순서로 세상이 구성된다는 개념입니다. 이는 점점 세분화됩니다. 예를 들어 동물은 ‘물고기-새-포유류’ 순서로 계급이 높아지는데, 새는 ‘씨앗을 먹는 새(참새)-벌레를 먹는 새(울새)-죽은 고기를 먹는 새(까마귀)-사냥을 하는 새(부엉이)-가장 높은 새(독수리)’순서로 달라집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 만물의 계급을 모두 나누는데, 인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과 고귀한 신성의 비율에 따라서 평민-귀족-왕자-왕과 같은 식으로 계급이 올라갑니다. 따라서 ‘더 높은’ 새가 ‘더 낮은’ 지렁이를 잡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높은 계급의 인간이 낮은 계급의 인간을 지배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에는 이런 존재의 대사슬이라는 개념이 끼어들 구석이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다 자연선택이나 성선택이라는 원리에 의해서 환경에 맞게 적응한 것에 불과합니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는 있겠지만, 존재 자체의 높고 낮음은 있을 수 없죠. 신과 인간이 높이 올라탄 사다리를 걷어찬 셈입니다. 다윈은 자신의 주장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을 크게 걱정했습니다. 다 쓴 원고를 한동안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친구의 강력한 권고에 의해 마지못해 책을 출판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종교계의 반발이 거셌지만(사실 지금도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죠), 영국인은 제법 이성적이었습니다. 그의 책은 출판되자마자 큰 센세이션을 몰고 옵니다. 초판은 판매 즉시 매진되었죠. 그의 위대한 발견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조심성 많은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꺼내지 않은 것도 현명한 일이었죠.


찰스 다윈은 에딘버러 의대에서 케임브리지 대 신학과로 옮긴 예비 사목자였지만, 신앙심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찰스 다윈이 사망하자, 영국은 런던 웨스트민스트 성당에 그를 묻어주었습니다. 심지어 영국 성공회는 ‘하느님이 자연선택이라는 방식을 통해 인간을 창조했다’며 새로운 교리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영국인들은 다윈은 ‘존재의 대사슬’의 아주 높은 곳으로 올려주었죠. 
     

Hcallas(2011). 찰스 다윈의 비석. 다윈의 진화론은 기존 종교의 근간을 흔들었지만, 영국인은 그를 웨스트민스트 성당에 묻어주었다. -wikimedia(cc)
Hcallas(2011). 찰스 다윈의 비석. 다윈의 진화론은 기존 종교의 근간을 흔들었지만, 영국인은 그를 웨스트민스트 성당에 묻어주었다. -wikimedia(cc)

 
독일의 콘라트 로렌츠
    
사실 콘라트 로렌츠는 독일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인입니다만,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그의 경력을 볼 때 독일인으로 간주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로렌츠는 인간보다 동물 연구를 주로 한 동물행동학자입니다. 동물행동학(ethology)이라는 분야 자체가 사실상 로렌츠가 창시한 학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윈은 에딘버러 의대를 중퇴했지만, 로렌츠는 대륙을 넘나들며 의대를 졸업합니다. 원래 다윈은 내과의사였던 아버지 로버트 다윈의 강권으로 의대에 갔는데, 로렌츠도 정형외과 의사였던 아버지 아돌프 로렌츠의 권유로 의대에 입학했죠. 그는 미국 컬럼비아 의대를 다니다 비엔나 대학으로 옮겨 의사면허를 취득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의 군의관으로 참전하였다가 소련군에 포로로 잡힙니다. 포로수용소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한참 후에야 고국으로 송환되었죠.

 

그의 연구 업적은 아주 찬란합니다만,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연구 방법론입니다. 로렌츠는 의대에서 해부학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동물을 죽여 실험하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랑한 연구 방법은 ‘관찰’입니다. 오리를 관찰하려고 ‘동물처럼’ 직접 물 속에 직접 들어가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을 애용했죠. 
     

미상(1944). 소비에트 군 자료에서 발견된 콘라드 로렌츠의 포로 문서. 로렌츠는 제3제국군의 군의관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수년 동안 소련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야 했다. 제3제국은 나치 독일을 말한다. -wikimedia(cc)
미상(1944). 소비에트 군 자료에서 발견된 콘라드 로렌츠의 포로 문서. 로렌츠는 제3제국군의 군의관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수년 동안 소련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야 했다. 제3제국은 나치 독일을 말한다. -wikimedia(cc)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이 아닌 동물을 관찰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이기 때문이죠. 특히 본능적 행동에 대해서는 동물 연구가 큰 도움이 됩니다. 콘라드 로렌츠는 관찰을 통해서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깊은 심성을 파악해내는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1973년 로렌츠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습니다. 온갖 침습적 연구가 득세하는 생리, 의학 분야에서 단지 ‘관찰’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아주 드문 경우죠.


하지만 그의 연구는 너무 ‘본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타고난 것’에 대한 집착이었을까요. 동물행동학은 ‘고정행동패턴’에 과도한 관심을 쏟았습니다. 고정행동패턴이란 외부 자극에 의해서 유발되는 일정한 행동 양상입니다. 흔히 ‘본능’이라고 하죠. 바뀌지 않는 일관된 본성에 집중한 연구를 주로 했습니다. 동물행동학자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환경에 의해 본성이 ‘약간’ 바뀔 수도 있다고 마지못해 인정했죠.

 

비슷한 시기의 미국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미국의 벌허스 스키너
    
비교심리학의 시작은 멀리 이반 파블로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블로프도 다윈이나 로렌츠처럼 의사였지만, 진료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았죠. 그는 실험용 개를 무심코 보다가, 사료를 주려고만 해도 이미 침을 흘린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바로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 입니다. 그는 이 관찰 결과를 발전시켜서 1904년 노벨상을 받습니다.


사실 미국 비교심리학의 행동주의는 독일 동물행동학의 전통과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타고난 능력보다는, 교육을 통한 환경결정론에 경도되어 있었죠. 심지어 왓슨이라는 비교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12명의 건강한 유아들, 그리고 잘 꾸며지고 내가 조작할 수 있는 특화된 세상을 제공해 준다면, 그들 중 아무라도 택하여 훈련시켜서  재능이나 기호, 성향, 능력, 소질, 그리고 인종과 무관하게 의사, 법률가, 예술가, 상인, 장관 뿐 아니라 거지, 도둑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행동주의적 전통은, 당시 독일과 싸우고 있던 미국의 문화적 전통을 잘 보여줍니다. 누구든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정신,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도 말라는 실증주의적 입장과 잘 맞아떨어졌죠.


파블로프와 왓슨의 연구를 크게 확장시킨 사람은 미국의 심리학자 벌허스 스키너입니다. 그는 원래 영문학도였는데 심리학으로 방향을 틀었죠. 그의 연구 방법론을 ‘행동주의’라고 합니다. 즉 실험을 통한 행동 관찰에 집중하는 실증적 심리학이죠. 의식에 대한 연구, 심지어는 뇌에 대한 연구에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Silly rabbit (1950년경). 벌허스 프레데릭 스키너. 그는 보상과 행동이라는 ‘눈에 보이는’ 부분만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경을 통한 행동 변화를 강조했지만, 마음의 내적 속성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wikimeda(cc)
Silly rabbit (1950년경). 벌허스 프레데릭 스키너. 그는 보상과 행동이라는 ‘눈에 보이는’ 부분만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경을 통한 행동 변화를 강조했지만, 마음의 내적 속성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wikimeda(cc)

스키너는 하버드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이른바 ‘조작적 심리학’을 창시합니다. 파블로프와 왓슨의 연구에 감명받은 그는 심리 실험에서 ‘애매한’ 부분을 모두 제거합니다. 예를 들어 쾌락, 통증, 사랑, 슬픔 같은 범주는 연구 대상에서 아예 빼버리고, 오로지 보상과 행동을 통해서 모든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죠.


스키너의 이러한 입장은 한때 미국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과 교육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언어 행동을 두고 노엄 촘스키와 각을 세우면서, 점점 학계의 주류 자리를 내놓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서 말을 가르치려고 해도, 동물에게 언어 행동을 습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죠. 언어는 한편으로는 분명 학습이면서, 동시에 인간만이 획득할 수 있는 고유한 본능이었습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스키너의 행동주의는 초라하게 쪼그라듭니다.
    


진화심리학으로의 통합

 

영국에서 시작한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적 연구는, 독일과 미국에서 정반대의 길로 뻗어 나갔습니다. 타고난 본성을 강조한 독일의 동물행동학과 양육 환경을 강조한 미국의 비교심리학은 오랫동안 학계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했죠. 사실 이러한 학문적 배타성은 제 2차 대전 당시 적국이던 독일과 미국의 학자들이 서로 교류를 꺼린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면서 다윈의 진화론이 인간 행동 연구에 본격적으로 적용됩니다. 사실 다윈은 <인간의 유래>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종의 기원>가 달리 이 책들은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간 탓이었을까요? 100년이 지나서야 인간행동생태학이나 사회생물학 등이 태동하면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진화에 대한 주요 개념이 재등장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진화심리학은 동물행동학과 비교심리학의 장점을 모두 포섭하여 발전하고 있습니다. 100년전 찰스 다윈이 예견한 것처럼 말이죠.


가까운 미래에 보다 더 중요한 연구를 위한 장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심리학은 정신적 능력과 힘이 점차 획득되어 간다는 새로운 토대 위에 기반할 것이다. 인간의 근원과 인류의 역사에 빛이 드리울 것이다. -찰스 다윈, 1859년 <종의 기원> 에서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인류의 신체와 정신, 질병에 대한 의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공부했다. 현재 동화약품 연구개발본부에서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을 개발하며,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신경인류학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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