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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남극에 가다⑤] 지구 끝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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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14일 14:00 프린트하기

※ 편집자주. 펭귄이 알을 품고 새끼를 노리는 새들과 사투를 벌이는 땅. 아문센을 비롯한 위대한 탐험가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개척한 곳. 범접할 수 없는 자연 속에서 소수의 선택받은 과학자들이 지구의 신비를 탐구하는 곳. 누구에게나 남극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당신에게 남극은 어떤 곳인가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나 갈 수는 없는 곳이라는 거죠. 현지인도, 과학자도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본 남극은 어떤 곳일까요? 극지연구소 남극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현정 어린이책 작가가 남극의 신비와 일상 이야기를 풀어줍니다.    

 

 

남극 기지 생활에 대한 나의 막연한 동경은 <남극의 쉐프>라는 영화 한 편에서 시작되었다. 영화는 일본의 남극기지 중 하나인 ‘돔 후지’를 배경으로 여덟 명의 대원들이 일 년 반 동안 남극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극의 관문격인 칠레 푼타아레나스의 아르마스 광장엔 마젤란 동상이 있는데, 오른쪽 발만 반질반질하다. 마젤란의 발을 만지면 남극에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마젤란 발’의 전설이 유난히 잘 통해서일까 세종기지에선 한 번 오기도 어렵다는 남극에 몇 번씩 다녀간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중엔 동계와 하계를 번갈아 가며 남극에 온 설비대원도 있고, 매년 겨울을 남극에서 난다는 연구원도 있고, 나란히 월동대원이 된 남매도 있었다.

 

기지 근처에서 본 혹등고래부터 천둥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는 빙벽을 본 이야기까지 기지 안의 소소한 역사를 환히 꿰고 있는 그들에게선 어쩌다 들른 방문자가 흉내 낼 수 없는 ‘남극 현지인’의 분위기가 읽혀졌다.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남극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극지연구자의 하루


유난히 화창한 남극의 어느 날, 고글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빨간색 방한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장화를 신은 한 무리의 연구자들이 현장으로 나갈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연구자하면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밤을 새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남극에선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스파 지역에서 펭귄 둥지를 표시하려고 말뚝을 박는 연구자 - 공승규 제공
아스파 지역에서 펭귄 둥지를 표시하려고 말뚝을 박는 연구자 - 공승규 제공
펭귄 연구자 - 김동정PD 제공
펭귄 연구자 - 김동정PD 제공

알에서 막 부화한 새끼 펭귄을 보러 갈 생각에 펭귄 마을로 떠날 준비를 하는 펭귄 연구자는 아침부터 마음이 들뜬다. 펭귄 몸에 씌울 주머니, 몸에 부착할 GPS장치와 저울, 그물 등의 장비를 꼼꼼하게 챙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는다. 섬모충과 지의류를 관찰하는 연구자는 토양샘플링 할 도구와 카메라를 챙기고, 해양 생물 연구자는 다이버와 함께 조디악을 타러 부두로 향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현장에 나갔던 연구자들이 하나 둘 식당으로 몰려든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던 섬모충 연구원 눈에 유난히 뻣뻣하고 굵은 눈썹을 가진 한 대원이 들어온다.  


“저, 눈썹 하나만 뽑아주세요. 섬모충 염색할 때 핀셋 대신 쓰려고요.”


지나가던 대원은 얼떨결에 눈썹 하나를 뽑아 섬모충 연구자에게 건넨다.

 

섬모충 - 박경민 연구원 제공
섬모충 - 박경민 연구원 제공

펭귄 마을에서 돌아온 연구자는 고가의 위치 추적 장치를 달고 나간 펭귄이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쉰다. 조디악을 타고 바다로 간 해양 연구자는 자칫 해표가 공격을 해 올까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운다. 달콤한 휴식 시간이 끝나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오후 현장 연구를 끝내고 돌아온 연구자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 휴식을 취하는 사이, 고층 대기 연구자들은 새벽에 있을 관측을 위해 장비를 점검한다. 남극의 여름, 연구자들의 평범한 하루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남극에도 과학자가 있어요? 뭘 연구해요?”
 

“남극에선 물을 공중에 뿌리면 곧바로 얼음으로 바뀌나요?”
 

“남극에 살면 매일 펭귄하고 수영도 할 수 있겠죠?”

 

강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남극체험단이 됐다고 얘기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진다. 코딩 프로그램도 다루고, 3D프린터로 장난감도 만들고, 인공지능과 최첨단 과학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남극하면 펭귄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영화 속 <겨울 왕국>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 상상의 한계다. 도서관 과학책 서가에도 남극을 주제로 한 책은 종류가 많지 않다. 상대적으로 남극에 관해 무관심한 이유는 나와의 연결 고리를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국내에 펭귄, 남극도둑갈매기, 남극 지의류, 기상을 연구하는 극지과학자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1년에 0.1 밀리미터도 자라지 않는 지의류를 관찰하는 연구자에게 물었다.


“왜 하필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지 않는 곰팡이를 선택했어요?”


“재미있으니까요.”

 

알에서 부화한지 4-5일된 새끼 펭귄 - 이원영 연구원 제공
알에서 부화한지 4-5일된 새끼 펭귄 - 이원영 연구원 제공


남극 생물종은 환경 지표나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든가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이 곳 연구자들 중에 과학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거나 지구 환경의 수호자가 되겠다는 거창한 이유로 과학자의 삶을 선택한 이들은 없었다. 그저 펭귄이 좋아서, 어릴 때부터 꿈이라서, 남극에 와보고 싶어서 등의 소박한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펭귄에게 똥 세례를 맞으면서도 등에 달아준 기계를 불편해할까 걱정하고, 도둑 갈매기 부리에 머리를 쪼이고도 헛웃음을 짓고, 지의류를 밞을까 다른 길로 돌아가는 연구자의 모습에서는 연구 대상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났다.

 

다른 사람 눈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수많은 생물중 하나일 뿐이겠지만 적어도 연구자들의 눈엔 특별한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남극의 여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연구원들은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때까지 부디 무사하라고.

 

스쿠아와 기 싸움 중인 연구자 - 김동정PD 제공
스쿠아와 기 싸움 중인 연구자 - 김동정PD 제공
스쿠아 연구자 - 김동정PD 제공
스쿠아 연구자 - 김동정PD 제공

 

공유의 즐거움 


지난 해 중성자별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폭발인 킬로노바(kilonova) 현상 관측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설랬다. 인간이 세운 또 하나의 가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는 것도 흥분됐지만, 한국 과학자를 포함해 세계의 천문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우주 탄생의 기원을 밝혀낼 역사적인 순간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더 가슴 벅찼다.


남극에서는 극한 환경 탓에 연구원 혼자 할 수 있는 활동이 거의 없다. 고립될 것을 대비해 이동할 땐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고, 현장에서는 수시로 현재 위치를 알려야 한다. 날아다니는 조류를 잡아 발목에 고리를 끼우고, 수 미터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지의류 샘플을 떼어내고, 유성 관측을 위한 레이더를 설치하는 작업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연구자가 아닌 설비 대원에게 도구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고, 해저 생물을 관찰하기 위해선 다이버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해양 생물 관찰 중인 다이버 - 극지연구소 제공
해양 생물 관찰 중인 다이버 - 극지연구소 제공
먹이 활동 중인 남극 해삼 - 극지연구소 제공
먹이 활동 중인 남극 해삼 - 극지연구소 제공


또 때로는 남극에 같이 오지 못한 동료를 위해 시료를 구해주고, 조류의 깃털을 모으고, 시간을 내어 데이터를 대신 측정하고, 추위와 싸워가며 동료 연구원의 해수 샘플링 작업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했다. 상대보다 내가 좀 더 부각되어야 하고, 과정보다 결과물로 연구의 가치가 매겨지는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 조건 없이 동료의 연구를 돕는 모습은 낯설고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남극이어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 극지연구자의 하루는 연구자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황당하고 끈질긴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준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 필자소개

전현정. 대학에서는 집 짓는 법을 배웠고, 엄마가 돼서는 동화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글 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으랏차차 뚱보클럽>으로 19회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헬로 오지니>, <니체 아저씨네 발레교실>, <퓰리처 선생님네 방송반>이 있다. 세종과학기지 준공 30주년 기념 남극체험단으로 선정되어 2017년 12월 킹조지섬 남극세종기지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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