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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호구 없이 실험하던 KAIST 학생, 플라스크 터져 안면부 부상…실험실 사고 76%는 ‘안전 불감증’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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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6일 03:00 프린트하기

이달 7일 대전 유성구 KAIST 본원 자연과학동(E6-4) 3층의 한 화학과 실험실에서 대학원생 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실험 도중 플라스크 안에 담겨 있던 유기화합물이 폭발하면서 깨진 유리 파편이 손과 팔, 얼굴, 가슴 등에 박힌 것이다.

 

당시 학생은 처음 다루는 물질을 위험성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혼자 실험에 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험용 후드의 가림막도 충분히 전개돼 있지 않았고 실험복과 장갑은 물론 보안경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자칫하면 실명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대학 실험실의 ‘안전 불감증’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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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KAIST 자연과학동. - KAIST 제공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KAIST 안전팀 등에 따르면 사고는 7일 오후 10시 29분경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 1년차 학생이 화학반응이 끝난 플라스크 바닥의 잔류물을 시약스푼으로 긁어내던 중 생긴 마찰로 폭발이 일어나면서 발생했다. 화재는 없었지만 유리 플라스크 속 기체가 순식간에 팽창하면서 플라스크가 산산조각 났고, 후드 안쪽의 다른 실험기구들이 함께 깨졌다. 사고 학생은 실험실에 함께 있던 다른 학생들의 119 신고로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긴급 수송돼 열상과 출혈에 대한 치료를 받은 뒤 다음날 새벽 3시경 퇴원했다.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12일 현장조사 결과, 폭발을 일으킨 물질은 유기 아자이드의 일종인 ‘카보닐 디아자이드’로 분석됐다. 아자이드는 반응첨가제로 화학 실험실에서 흔히 사용되지만, 작은 마찰이나 충격에도 쉽게 폭발하는 특성이 있어 용매에 희석시켜 사용하는 등 취급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카보닐 디아자이드는 일반 아자이드보다 질소 가스를 2배 많이 내뿜는 특성이 있다. 그만큼 반응성과 폭발 위험이 높은 셈이다. KAIST 안전팀 관계자는 “플라스크 속 잔류물에 카보닐 디아자이드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응 후 용액에서 아자이드를 완전히 정제해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미숙한 부분이 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알맹이’ 빠진 사전 안전교육…처음 다루는 위험물질로 혼자 실험하다 사고

 

사고 학생은 지난해 9월부터 실험실 안전교육을 이수해 왔고, 별도의 연구실 세미나를 통해 연구과제와 관련된 사전 교육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학생의 지도교수는 “물질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이미 다수의 논문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모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가 23일 KAIST에 통보한 사고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고 학생은 아자이드의 기본적인 폭발성만 알고 있었을 뿐, 실험 조건에서의 물질 민감도나 폭발 위력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책임자가 사전에 지도를 하긴 했지만, 정작 학생에게 가장 우전적으로 주지시켜야 할 사전유해인자 교육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 셈이다. 게다가 아자이드를 사용하는 실험에서 플라스크 속 잔류물을 시약스푼으로 긁어내다 폭발이 일어난 사고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즉, 사고사례 교육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셈이다.

 

학생이 부주의했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초년생이 새롭게 시작하는 실험을 선배나 교수의 지도 없이 혼자 진행하도록 놔뒀다는 점에 대해서는 같은 분야 연구자들조차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최근 KAIST 화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A 씨는 “처음 다루는 물질이 있을 땐 지도선배가 따라 붙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화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B 씨도 “위험물질을 다룰 땐 특히 더 보호구 착용에 주의해야 하지만 주변 학생들도 (사고학생의 보호구 미착용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고 학생의 지도교수는 “대학원에 진학한 뒤 2~3개월이 지나면 독립적으로 자기 실험을 하게 된다. 이번 사고는 물질의 특성에 따른 것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구실안전법)’에 따르면, 연구실책임자와 연구주체의 장은 사전유해인자위험분석을 통해 연구실의 안전유지·관리 및 사고 예방을 철저히 함으로써 연구실의 안전환경을 확보할 책임을 져야 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본적인 안전교육은 학교나 정부 차원에서 하더라도 특정 실험과 관계된 안전문제는 그 내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연구책임자가 적극 챙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AIST는 이번 사고에 대한 후속 조치 결과를 3개월 내 과기정통부에 제출해야 한다. 우선 해당 연구실에서는 관련 연구에 카보닐 디아자이드를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KAIST는 유사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사고사례 전파 및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폭발 시 파편을 막아 주는 ‘블라스트 쉴드’ 등 보호 장비도 추가로 도입할 계획이다.

 

최근 5년간 대학 실험실 사고 주요 사례

 

◆ 실험실 사고 88%는 대학에서 발생…강제성 높은 연구관리체계·예산 확대 지원 필요

 

대학은 연구기관이나 기업 부설 연구소의 연구인력에 비해 숙련되지 않은 학생들이 많은 반면 안전 시설이나 인력, 예산은 오히려 부족해 실험실 사고에 더 취약한 실정이다. 지난해 보고된 실험실 사고 234건 중 88%(206건)는 대학에서 발생했다. 2012년부터 최근 6년간 발생한 중대사고(신체부위 절단, 안구 손상, 화상 등) 5건도 모두 대학에서였다. 그동안 연구자보험(5000만 원 이내 실비 보상) 가입 의무화, 안전교육 확대, 안전시설 구축 등의 개선이 이뤄졌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인 셈이다.

 

무엇보다 연구주체의 안전의식 제고가 절실하다. 과기정통부가 최근 3년간 발생한 실험실 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보호구 미착용(23%)과 기자재 취급 부주의(19%), 교육 미흡(18%), 안전수칙 미준수(16%) 등 안전의식 부족에 의한 사고가 76%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연구실 안전관리 현장검사로 적발된 연구실안전법 위반 사항에서도 실험실 점검·진단 미실시(30.8%), 안전관리규정 위반(19.5%) 등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대학에서는 연구책임자(교수)가 사전유해인자 위험 분석을 실시하지 않은 실험실이 68%나 됐다.

 

2017년 연구실 안전관리(연구책임자 부문) 현장검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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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현행법상 실험실 안전을 기관과 연구자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돼 있다는 점도 근본적인 한계다. 위반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과태료가 미미한 수준이거나 경고 조치에 그친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경우에는 연구책임자가 연구비 예산의 1%까지 안전관리비(간접비)로 계상해 사용하도록 돼 있지만 이 역시 강제성은 없다. 전석남 과기정통부 연구환경안전팀 사무관은 “대학에서는 대부분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내놓는 안전관리비로 안전관리 예산을 충당하기 때문에 늘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안전에 대한 투자를 아까운 비용으로 여겨서는 결코 실험실 사고를 막을 수 없다. 불편할 정도로 강제성 높은 안전관리체계와 대학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며 “연구자들이 대학에서부터 안전의식을 제대로 배우게 되면 기업, 연구소 등에서 부담하고 있는 재교육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산 부족은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관리해야 할 실험실은 대학 실험실 4만5306개를 포함해 총 7만3053개에 이르지만, 연구실안전환경구축지원 예산은 약 62억 원(올해 기준) 수준이다. 이 중에서도 실질적으로 실험실 현장에 직접 투입될 수 있는 예산은 13억5000만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인력 운용, 안전문화 확산 등에 쓰인다. 또 다른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현장검사 역시 3% 미만의 표본 실험실에 대해서만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예산이나 인력에 비해 대상이 워낙 많은 데다 외부기관에 위탁해 실시하다 보니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며 “과거와 비교하면 예산이 많이 늘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연구실안전관리사’ 전문 자격을 신설하고 연구책임자의 안전관리비 계상을 의무화 하는 등 실험실 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제10차 연구실안전법 전부개정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부터는 실험실 현장검사도 표본을 확대해 실시하고, 기관 내 연구관리 전담조직에 대한 지원도 늘린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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