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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이 많은 감귤류는 다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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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7일 14:37 프린트하기

"감귤은 참으로 풍부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낸다."
- 피에르 라즐로, ‘감귤 이야기’에서

 

한 세대 전만 해도 감귤류라면 겨울철 귤과 유자뿐이었고 오렌지는 주스로나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외국 과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트에는 사시사철 오렌지와 그레이프프루트(자몽)가 쌓여있고 요리나 칵테일에 들어가는 레몬과 라임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제주도에서도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같은 ‘고급스런’ 감귤류가 나온다.

 

제주도에서도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같은 '고급스런' 감귤류가 나온다. - 뉴시스 제공
제주도에서도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같은 '고급스런' 감귤류가 나온다. - 뉴시스 제공

이렇게 종류가 많은 것 같아도 감귤류는 생김새(구조)나 맛, 향에서 공통되는 특징이 있다. 다들 귤속(citrus)에 속하는 식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들 감귤류의 족보는 어떻게 되는 걸까.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해서 감귤류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만다린(mandarin)과 포멜로(pomelo 또는 pummelo), 시트론(citron) 세 가지가 원종이고 여기서 다양한 감귤류가 나왔을 거라고 보고 있다. 만다린은 귤이 속한 감귤류로 크기가 작고 껍질이 얇고 잘 벗겨져 먹기 편하다. 포멜로는 감귤류 가운데 가장 크고 껍질이 두꺼운데 대체로 맛은 싱겁다. 시트론은 향이 강하지만 과육은 상당히 신 감귤류로 레몬과 라임이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감귤류 가운데 생산량이 가장 많은 스위트오렌지(sweet orange.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오렌지다)조차 그 정확한 기원은 미스터리다. 심지어 감귤류의 원산지가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호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 감귤류의 게놈이 해독되면서 이런 논란이 정리되고 족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귤은 사람으로 치면 아시아인이나 유럽인

 

감귤류 게놈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결과는 지난 2014년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7월호에 발표됐다. 미국 에너지부 조인트게놈연구소 알버트 우 박사팀을 비롯한 다국적 공동연구자들은 만다린 네 종류와 포멜로 두 종류, 오렌지 두 종류의 게놈을 해독해 비교분석했다. 오렌지가 만다린과 포멜로의 교잡종인 건 확실하므로 그 구체적인 족보를 따져보겠다는 취지였다.

 

포멜로(1,2), 만다린(3~7), 만다린 과육(9,11), 스위트오렌지(8,10), 덜 자란 광귤(12)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제공
포멜로(1,2), 만다린(3~7), 만다린 과육(9,11), 스위트오렌지(8,10), 덜 자란 광귤(12)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제공

 

만다린과 포멜로의 게놈을 비교한 결과 두 종이 160만~320만 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게놈을 분석한 만다린 네 종류 모두 순종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네 종류 가운데 아시아에서 널리 재배하는 폰칸(Ponkan)만다린과 주로 미국에서 재배하는 머코트(Murcott)만다린은 순종 만다린일 줄 알았는데 포멜로 유전자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만다린이 호모 사피엔스이고 포멜로가 네안데르탈인이라면 이들 네 종류는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인 호모 사피엔스, 즉 아시아인이나 유럽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순종 만다린이 어딘가에 있거나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오렌지의 하나인 광귤(sour orange 또는 bitter orange. 과육이 매우 시다)의 게놈을 분석해보면 포멜로의 기여도가 딱 절반이기 때문이다. 한편 광귤의 엽록체 게놈은 포멜로 유형으로 밝혀져 포멜로 암술에 순종 만다린의 꽃가루가 수분해 나온 잡종으로 밝혀졌다(엽록체는 난자에만 존재). 한편 스위트오렌지 역시 만다린과 포멜로가 조상인 건 확실한데 그 뒤 여러 차례 교배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뜻밖에도 폰칸만다린과 스위트오렌지가 게놈의 거의 4분의 3을 공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폰칸만다린의 유전자가 스위트오렌지로 흘러 들어갔다고 추정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퍼져나가

 

2014년 논문이 나가고 3년 7개월이 지나 연구자들은 후속 연구결과를 학술지 ‘네이처’ 2월 15일자에 발표했다. 기존에 게놈 서열이 알려진 감귤류 28가지에 새로 30가지의 게놈을 해독해 감귤류의 가계도를 거의 완성한 것이다.

 

감귤류 58가지의 게놈을 토대로 추정한 감귤류의 기원과 분화, 전파경로를 보여주는 지도다. 이에 따르면 중국 남서부와 미얀마, 히말라야 동부가 출발점이다. -네이처 제공
감귤류 58가지의 게놈을 토대로 추정한 감귤류의 기원과 분화, 전파경로를 보여주는 지도다. 이에 따르면 중국 남서부와 미얀마, 히말라야 동부가 출발점이다. -네이처 제공

 

게놈을 비교해 감귤류의 기원을 추정한 결과 중국 남서부의 윈난성과 미얀마, 인도 북동부 히말라야 일대로 나타났다. 여기서 동쪽으로 만다린이, 남쪽으로 포멜로가, 서쪽으로 시트론이 진화했다. 실제로 윈난성에서 800만 년 전 감귤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호주에 자생하는 독특한 감귤류인 호주 라임 세 종류는 게놈 분석 결과 금귤(kumquat)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 호주가 감귤류의 원산지라는 가설을 일축했다. 감귤류 식물은 대략 400만 년 전 호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에 순종 만다린이 없어 당황했던 연구자들은 이번에 중국 곳곳에서 만다린을 수집했고 그 결과 게놈을 해독한 만다린이 28가지나 됐다. 그 가운데 5가지가 포멜로의 유전자 유입이 없는 순종 만다린으로 확인됐다. 사람으로 치면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프리카인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순종 만다린을 ‘유형1’로 분류했다. 그리고 게놈에 포멜로의 유전자가 1~10% 섞여 있는 16가지를 유형2 만다린으로, 포멜로의 유전자가 12~38% 섞여 있는 7가지를 유형3 만다린으로 불렀다. 7가지 가운데 사추마만다린(Satsuma mandarin)이 귤(온주밀감)인데, 포멜로의 기여도가 20% 내외다.

 

이를 토대로 스위트오렌지의 게놈을 들여다본 결과 광귤(sour orange)처럼 순종 만다린과 포멜로의 잡종에서 출발해 유형2 만다린의 유전자가 섞인 결과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한편 유형2 만다린에 포멜로나 스위트오렌지의 유전자가 유입되면서 유형3 만다린이 나왔다. 서로 복잡하게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말이다.

 

알려진 대로 그레이프프루트는 포멜로 암술에 스위트오렌지 꽃가루가 수분해 나온 교잡종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레몬은 광귤 암술에 시트론 꽃가루가 수분해 나온 교잡종으로 밝혀졌다. 감귤류 가계도를 보면 이런 관계들이 좀 복잡하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감귤류 58가지의 게놈을 토대로 구성한 가계도다. 만다린이 중심에 있지만 포멜로가 약방의 감초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위는 감귤류 각각의 게놈에서 원종 기여도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주황색이 만다린, 녹색이 포멜로, 노란색이 시트론이다. 유형3(Type-3)의 UNS가 귤(온주밀감)이다. -네이처 제공
감귤류 58가지의 게놈을 토대로 구성한 가계도다. 만다린이 중심에 있지만 포멜로가 약방의 감초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위는 감귤류 각각의 게놈에서 원종 기여도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주황색이 만다린, 녹색이 포멜로, 노란색이 시트론이다. 유형3(Type-3)의 UNS가 귤(온주밀감)이다. -네이처 제공

 

 

한라봉과 천혜향의 관계는?

 

유형2 만다린까지는 다양한 품종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기록한 문헌이 거의 없지만 유형3 만다린의 몇몇은 20세기 들어 원예학자들이 교배를 통해 만든 것이라 계보가 잘 정리돼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물론 이를 잘 뒷받침한다.

 

두 논문을 읽으며 필자는 문득 한라봉과 천혜향의 족보가 궁금해져 알아봤는데 실망스럽게도 둘 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 아니었다. 한라봉은 1972년 일본에서 키요미와 폰칸을 교배해 만든 품종이다. 폰칸은 2014년 논문에서 분석한 유형2 만다린이다. 혹시나 해서 2018년 논문에서 키요미를 찾아보니 다행히 유형3에 있었는데, 게놈을 분석한 28가지 만다린 가운데 포멜로의 기여도가 38%로 가장 높다.

 

알고보니 키요미(kiyomi, 清見)는 굉장히 유명한 품종으로 1949년 일본에서 귤(온주밀감)과 스위트오렌지를 교배해 얻은 만다린이다. 포멜로의 기여도가 높은 이유다. 그 뒤 키요미를 기본으로 해서 다양한 품종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폰칸과 교배해 얻은 데코폰(Dekopon)으로 1990년대 우리나라에 들여오면서 한라봉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붙였다.

 

한편 천혜향 역시 1984년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키요미를 앙코르(Encore)만다린과 교배하고 이를 다시 머코트만다린(유형3)과 교배해 얻은 품종으로 일본 이름은 세토카(Setoka)다. 따라서 한라봉과 천혜향 둘 다 키요미의 자손들이고 유형3 만다린으로 분류될 것이다.

 

 

감귤류 성공의 숨은 공신 포멜로

 

‘네이처’ 논문에서 저자들은 오늘날 만다린을 비롯한 여러 감귤류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널리 재배되는데 포멜로의 공이 컸다고 주장했다. 즉 과실이 작고 시큼한 순종 만다린이 포멜로와 만나 크기가 커지고 달콤새콤한 과일이 된 것이다. 오늘날 과수로 성공한 만다린 품종 대다수는 순종 만다린과 포멜로의 잡종이 그 뒤 여러 차례 만다린과 교배해 나온 것으로 여전히 포멜로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 스위트오렌지와 그레이프프루트에 대한 기여는 말할 것도 없고 레몬도 엄마가 월귤(sour orange)이므로 외할머니가 포멜로다.

 

필자는 그레이프프루트를 좋아해서 가끔 사다 먹는데 지난해 기후에 안 좋았는지 요즘은 맛이 예전만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마트에서 전형적인 그레이프프루트보다 좀 더 크고 과피가 옅은 노란색인 과일이 있어 살펴보니 그레이프프루트라고 적혀 있어서 하나 사봤다(약간 더 비쌌다). 잘라보니 과피가 꽤 두껍고 과육색도 옅어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향이 뛰어나고 단맛과 신맛과 쓴맛이 잘 조화된 부드러운 그레이프프푸트 맛이었다.

 

스위트오렌지(왼쪽)와 포멜로의 잡종인 전형적인 그레이프프루트(가운데)에 비해 추가로 포멜로와 교잡해 얻은 멜로골드그레이프프루트(오른쪽)는 크기도 더 크고 생김새도 포멜로에 더 가깝다. -강석기 제공
스위트오렌지(왼쪽)와 포멜로의 잡종인 전형적인 그레이프프루트(가운데)에 비해 추가로 포멜로와 교잡해 얻은 멜로골드그레이프프루트(오른쪽)는 크기도 더 크고 생김새도 포멜로에 더 가깝다. -강석기 제공

 

그 뒤 종종 이 그레이프프루트를 사 먹는데 논문과 관련 자료를 읽다 보니 이게 포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포멜로가 이렇게 맛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자료를 좀 더 살펴보니 그레이프프루트를 포멜로와 교배해 얻은 오로블랑코(Oroblanco)와 멜로골드(Melogold)라는 그레이프프루트 품종이 있다. 아마도 이 그레이프프루트가 그런 종류가 아닐까. 마트에 가서 확인해보니 ‘멜로골드그레이프르루트’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6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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