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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뇽뇽 사회심리학] 정말 한 순간의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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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10일 15:00 프린트하기

한 순간의 잘못, 몹쓸짓, 실수 등 흔히 성폭력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한 순간의 실수일 뿐인데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반응도 흔히 보인다. 하지만 정말 성폭력은 한 순간의 실수일까?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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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므로 성폭력은 어쩔 수 없다(?)는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들을 때마다,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기본 욕구에 대해서도 통제하지 못하면 게으르다거나 자기 관리가 부족하다는 질타를 퍼붓는 사회에서 유독 남성의 성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흥미로웠다.

 

남성의 성욕은 근본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애초에 남성은 적응적인 사회인으로 기능하기 부적절한 존재임을 시사하는 것일까? 남성은 본능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둘러대는 동시에 성폭력은 어쩌다 저지른 실수일 뿐이라고 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게 들린다. 이렇게 뒤죽박죽 섞인 성에 대한 통념들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뉴질랜드 웰링턴 대학의 심리학자 Devon Polaschek는 기존 연구들을 종합해 성범죄자들에게서 크게 다섯 가지의 왜곡된 사고방식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Polaschek & Gannon, 2004; Polaschek & Ward, 2002). 1) 여성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2) 여성은 성적 도구라는 인식 3)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 4)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섹스를 받아낼 권리가 있다는 인식 5)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이들이다.

 

5)번은 성범죄자들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범죄자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범죄자에게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앞의 네 가지 사고방식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여성은 알 수 없는 존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류의 대중적인 믿음처럼 여성과 남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여성은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라고 보는 사고방식이다. 여성은 믿을 수 없고 속임수를 쓰는 존재, 겉과 속이 다른 존재라는 믿음도 깔려있다. 여성은 자신의 의도를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고 따라서 여성의 ‘싫다’는 ‘좋다’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 예다.

 

많은 성범죄자들이 이러한 사고방식에 기인해 여성의 저항 자체를 성관계를 위한 전희 (foreplay) 정도로 본다고 한다. ‘좋으면서 왜 그래’ 같은 말처럼 여성의 의사와 전혀 상관 없이, 여성의 저항은 싫은 ‘척’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자신과의 성관계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이후 ‘여성이 거부했지만 합의된 관계였다’ 같은 비논리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 인식

 

여성은 근본적으로 남성의 성욕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이다. ‘이만큼 사귀었으면 당연히 성관계를 해야지!’라던가 부인이나 여자친구는 남편이 성관계를 원하면 언제나 거기에 응해야 하고 응하지 않으면 그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과도 관련되어 있다. 여성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성욕 해소를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 여기다보니 여성의 모든 행동을 성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저런 옷을 입고 있는 건 섹스를 바라는 거라던가, 가볍게 미소 짓는 행동에도 ‘아 나랑 섹스하고 싶은 거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남성의 관심을 받고 싶어 아둥바둥하는 애니메이션 속 여성이나 남성의 터치에 기다렸다는 듯 교성을 지르는 포르노 속 여성이 실제 여성의 모습인 줄 착각하고 ‘여성은 남성의 관심과 손길을 기다린다’거나 심지어 ‘강간당하길 바란다’는 생각을 보이기도 한다. 여성은 언제나 남성의 성욕 해소에 응하고 또 응해야 하는 존재이므로 합의 같은 것도 필요 없다고 본다.

 

‘성범죄’라고 부를 만한 것은 폭력을 동반한 강간치상 같은 극단적인 경우이며 자신들은 그런 성범죄자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은 남성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므로,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부드럽게만 대하면 그것은 강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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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

 

남성의 성욕은 통제가 불가능하며, 남성이 통제를 잃는데는 여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자신은 잘못이 없고 자신을 자극한 여성이 나쁘다는 사고방식이다. ‘남성은 짐승’ 류의 이야기도 위험한 짐승을 도발한 여성이 잘못이라는 책임 전가에 일조한다.

 

남성이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거나 분노가 쌓여 누군가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따라서 성욕을 어떻게든 푸는게 당연하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더러운 수단으로 성욕을 분출하고 해소하는 행동을 정당화 하는데 쓰이는 사고방식이다.

 

또한 자신이 성폭력을 저지른 건 여성들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아서 (떠받들여주지 않고 성욕을 받아주지 않아서) 라고 본다. 어쨌든 자신은 피해자요 나쁜 건 여성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남성은 여성과 성관계를 할 자격이 있다는 인식

 

여성에게 대시를 하는 등 나름 ‘공’을 들였으면 당연히 여성은 자신과의 성관계를 해야하며 그러지 않으면 자신을 ‘이용’했거나 꽃뱀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상대에게 유익한 일을 의도했다고 항상 그것이 상대에게 실제 유익하게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뿐더러, 늘 정해진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여성만은 자신이 공을 들인 만큼 성관계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olaschek는 이는 오래된 성차별적 고정관념에서 비롯한 인식이라고 지적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은 어리석으므로 남성이 여성의 성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성의 행동 중 무엇이 허용되는지, 또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남성이 정하고 여성이 자신이 정한 ‘개념녀’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응당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생각이다.

 

“강간은 여성이 자신의 처지를 알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잘난 척 하는 여성들은 콧대를 꺾어줄 필요가 있다”, “여성이 조신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강간당해도 싸다”, “강간은 여성이 남자를 거절했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등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낮에는 조신하지만 밤에는 요부인 지킬앤하이드급 여성을 바라거나, 10대 아이돌이 짧은 치마를 입고 섹시 댄스를 추는 것은 괜찮지만 본인이 주관을 갖고 호불호를 말하거나 자신을 거절하기라도 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는 것, 또 능력있고 혼자서도 행복해 보이는 여성에 대한 두려움과 비아냥, 된장녀/김치녀 등의 프레임으로 여성에게 허용되는 올바른 행동을 강압하려는 각종 시도들과도 관련있어 보인다.

 

참고로 ‘성공하면 여자가 따른다’는 등 힘을 얻으면 섹스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인식 (power-sex association) 또한 자신은 여성에게 섹스를 받아낼 권리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강화한다. 실제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아래 직급 여성이 자신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고, 자기와 섹스를 하도록 권력을 이용할 의사도 높았다는 연구가 있었다 (Kunstman & Maner, 2011). 처음부터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남성보다 갑자기 급 권력감을 느낀 남성이 더 성폭력을 잘 저지른다는 연구도 있었다 (Williams et al., 2016). 마치 맡겨둔 섹스를 찾아가는 것마냥, 힘들게 권력을 가진만큼 마음껏 (여성이라는) 보상을 누려보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변명처럼 얼마 전까지 루저였다고 해서 성폭력을 저지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1) 여성은 미스테리하고 알 수 없는 존재→ 좋아했으면서 싫다고 거짓말 하는 것!
2) 여성은 성적 도구 → 여성이 먼저 꼬셨다!
3)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고 통제 불가하다.  → 이는 순간의 실수이다. 
4) 나는 열심히 했기 때문에 여자들이 따라야 하는데 →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한 네가 나쁜 사람이다.


등의 사고과정을 거쳐 성폭력을 저질러 놓고도 ‘나는 억울하다, 여자가 꽃뱀이다, 거짓말쟁이다’라는 주장을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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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동성폭행범들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보인다고 한다. 애들도 성관계를 즐긴다, 애가 먼저 먼저원했다, 성관계는 애한테도 좋다, 성인은 아동을 마음대로 다룰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자신은 나쁜 짓을 한 게 아니고 억울하다 입을 놀린다고.

 

Polaschek 등의 연구자는 성과 여성에 대한 이러한 그릇된 인식이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사회의 영향 속에서 자라난다고 본다. 한 번 이러한 생각이 형성되면 이후 자신의 소망이나 관점과 일치하는 정보만 쏙쏙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정보는 무시하며 기존의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더욱 강화해 나가게 된다고 본다. 대다수의 성범죄는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차곡차곡 강화되어온 생각의 실현이라는 것.

 

한 가지 슬픈 현실은 이러한 인식이 사회 곳곳에 많이 퍼져있다는 점이다. 사귄다면 당연히 성관계에 응해야 한다던가, 여성도 뭔가 잘못했을 거라던가, 여성이 남성을 도발하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것, 여성이 너무 비싸게 굴면 안 되고 별 볼 일 없는 남성들도 얼마든지 여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주변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다.

 

한가지 더, 요즘 성폭력 사건들과 관련해서 ‘저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자주 보인다. 관련해서 알아두면 좋은 사실이 학대적인 남편의 경우도 밖에서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에게만 선택적으로 낮은 공감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 아내를 제외한 타인에게는 평범하거나 따듯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인 것이다 (Schweinle et al., 2002).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학대적인 배우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행동은 항상 일관적이기보다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나에게는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해로운 행동을 했다면, 저 사람은 그럴 리 없는 사람이라는 해석보다는 ‘어떤 이유로 나에게는 잘해줬구나’가 더 현실적인 해석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런 통념들을 입에 담는다면 당신 덕분에 오늘도 세상에는 성범죄가 늘어가고 있다고 이야기 해보자.

 

[1] Kunstman, J. W., & Maner, J. K. (2011). Sexual overperception: Power, mating motives, and biases in social judgm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0, 282–294.

[2] Polaschek, D. L., & Gannon, T. A. (2004). The implicit theories of rapists: What convicted offenders tell us. Sexual Abuse16, 299-314.

[3] Polaschek, D. L., & Ward, T. (2002). The implicit theories of potential rapists: What our questionnaires tell us. Aggression and Violent Behavior7, 385-406.

[4] Schweinle, W. E., Ickes, W., & Bernstein, I. H. (2002). Empathic inaccuracy in husband to wife aggression: The overattribution bias. Personal Relationships, 9, 141–159.

[5] Williams, M. J., Gruenfeld, D. H., & Guillory, L. E. (2017). Sexual aggression when power is new: Effects of acute high power on chronically low-power individual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 201-223.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 스스로를 돌보는 게 서툰 이들을 위해 <내 마음을 부탁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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