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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강력한 신념에 가려질 뻔한 네안데르탈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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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11일 13:00 프린트하기

대중 문화에서 원시인의 대명사로 취급되는 네안데르탈인. 최초의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발견된 것일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오늘은 네안데르탈인을 둘러싼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네안데르탈인 모형 -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www.si.edu)
네안데르탈인 모형 -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www.si.edu)

 

새로운 사람

    

독일 뒤셀도르프 지역에 살던 작곡가 요하임 노이만(Joachim Neumann)은 자신의 이름이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노이만’을 그리스어로 옮긴 ‘네안데르(Neander)라는 이름을 맨 뒤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요하임 노이만 네안데르. 이렇게 말이죠. 아주 유명한 작곡가는 아니었지만, 동네 주민들은 그가 자랑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마을 계곡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죠. 평소 좋아하던 그리스식 이름을 따서 ‘네안데르’ 계곡으로 붙인 것입니다.  

 

찰스 라이엘의 책에 실린 네안데르 계곡 펠트호퍼 동굴의 도판 - wikimedia(cc)
찰스 라이엘의 책에 실린 네안데르 계곡 펠트호퍼 동굴의 도판 - wikimedia(cc)

 

1856년 8월.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 약 3년 전의 일입니다. 네안데르 계곡에 있는 펠트호퍼 동굴에서 두개골 화석이 하나 발견됩니다. 인부들은 아마추어 박물학자였던 요한 풀로트에게 두개골을 가져다 주었죠. 물론 풀로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박물학 연구가 상당히 인기를 끌던 때였는데, 이 화석도 역시 큰 관심을 얻게 됩니다. 사람의 뼈와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동시에 여러 점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죠.

       

노이만은 ‘새로운 사람(New Man)’이라는 뜻입니다. 이 화석은 계곡을 뜻하는 옛날 독일어 ‘탈(Thal)’이 뒤에 붙어서 네안데르탈(Neanderthal)이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인간 이외의 호모 속 중에서 가장 처음 발견된 종입니다. 정말 ‘새로운 인간’이었죠. 아주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파빌랜드의 붉은 숙녀

    

종종 최초의 인간 화석을 네안데르탈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보다 전에 발견된 화석도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최초의 인간 화석은 영국 파빌랜드의 고트 동굴에서 발견된 이른바 ‘파빌랜드의 붉은 숙녀’입니다. 1824년에 발견되었죠.

 

하지만 당시에는 고인류 화석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교 지질학 교수이자, 웨스트민스트 성당 신부였던 윌리엄 버클랜드는 희한한 주장을 합니다. 로마군의 영국 침공 당시 고트 동굴 부근에 병영을 차렸는데, 화석은 로마군을 ‘상대’하던 여자의 유해일 것이라고 생각했죠. 붉게 염색된 파빌랜드의 화석이 이런 상상을 불러 일으킨 것일까요? 하지만 훗날 ‘파빌랜드의 붉은 숙녀’ 화석은 약 3만년 전 ‘20대 남성’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파빌랜드의 붉은 숙녀. 그러나 사실 이 화석은 3만년 전 20대 남성의 화석이었다. 붉은 색이 주는 선입관이 만든 상상이, 눈에 보이는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 wikimedia(cc)
파빌랜드의 붉은 숙녀. 그러나 사실 이 화석은 3만년 전 20대 남성의 화석이었다. 붉은 색이 주는 선입관이 만든 상상이, 눈에 보이는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 wikimedia(cc)

    

그러면 파빌랜드의 붉은 숙녀… 아니 붉은 ‘신사’가 혹시 최초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은 아닐까요? 아쉽게도 현생 인류의 화석이었습니다. 제법 오래된 것이긴 합니다만.

    

 

최초의 네안데르탈인은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되었나?

    

이후에도 인류 화석은 계속 발견됩니다. 1829년 벨기에 앙기스 동굴에서 세 구의 화석이 발견되죠. 한 구는 완전히 손상되어서 알아보기 어렵고, 한 구는 현생 인류의 화석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구는 ‘드디어’ 네안데르탈인 아이의 화석이었죠.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윈의 친구였던 천재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은 직접 앙기스 동굴의 화석을 보러 벨기에에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보다 오래된 인간’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죠. 마음 속 신념이 강하면 눈에 보이는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라이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은,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되기 40년 전에 이미 ‘앙기스 동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다만 아무도 그 화석의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죠. 사실 40년 후 네안데르 계곡의 상황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새로운 인간’이 아니다?

    

네안데르 계곡 펠트호퍼 화석을 처음 발표한 본 대학의 헤르만 샤프하우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이 화석이 이전에는 관찰된 적이 없는 독특한 두개골이며, 당시 가장 오랜 고대인으로 알려진 켈트족보다 더 앞선 종족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홍적층에서 최후로 발견되는 동물이 있던 시기에 살았다는 것이죠.

 

파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홍적세라는 이름은 홍수로 인해 쌓인 지층의 시기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때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니 노아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다른 종족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다른 인류’에 대한 구절이 없거든요.  

 

샤프하우젠의 주장은 완전히 묵살당합니다. 병에 걸린 환자 혹은 백치, 심지어 말을 자주 타던 코사크 기마병이라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고인류 화석으로서의 가치는 평가절하되죠. 저명한 인류학자들도 ‘새로운 인간 종’이라는 생각은 감히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죠.

 

루돌프 피르호.그는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이자 위대한 위생학자이며, 훌륭한 인류학자이자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평생 옳은 일을 위해 싸웠지만, 과도하게 강한 신념은 ‘진화’라는 진실을 외면하게 하였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독일 학계는 진화론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wikimedia(cc)
              Figure 3 루돌프 피르호.그는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이자 위대한 위생학자이며, 훌륭한 인류학자이자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평생 옳은 일을 위해 싸웠지만, 과도하게 강한 신념은 ‘진화’라는 진실을 외면하게 하였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독일 학계는 진화론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wikimedia(cc)

 

당시 독일 의학계를 대표하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는 ‘구루병’에 걸린 사람의 화석이라고 쏘아붙이고는 평생 그 주장을 꺾지 않았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그의 평소 ‘진단’ 실력과도 걸맞지 않았지 않았습니다. 엄격한 과학적 관찰에 기반한 의학을 주창한 피르호였지만, 네안데르탈인에 대해서만은 예외였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새로운 인간’의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에필로그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르호가 간단한 구루병을 진단하지 못할 리 없습니다. 그는 위대한 의사였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공공 보건의 필요성을 주창했습니다.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공공 교육을 제공하고, 부유층에게 세금 부과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정치는 큰 규모의 의료일 뿐이라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보건 예산을 국방비로 돌리려는 비스마르크와 싸우다가 결투를 할 뻔도 했습니다. 의사는 모름지기 ‘가난한 이를 위한 옹호자(natural attorneys of the poor)’가 되어야 한다는 ‘건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너무 강한 햇빛 아래서는 오히려 사물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윈은 ‘종의 변이’가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지만, 피르호는 평소 이 주장을 무척 혐오했다고 합니다. 피르호에게 ‘종의 변이’는 단지 ‘고쳐야 하는 질병’에 불과했죠. 변이는 나쁜 것이므로 제거해야 한다는 강력한 신념이, 위대한 학자 피르호의 눈을 어둡게 한 것입니다. 네안데르 계곡은 독일에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화인류학의 역사에서 독일은 변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뜨거운 신념을 가진 사람은 넘쳐 나지만, 차가운 진실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 요즘 세상입니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다면, ‘새로운 인간’도 한낱 ‘구루병 환자’로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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