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강석기의 과학카페] 女 마라톤 최고 기록 김도연, 밥심으로 달렸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8년 04월 03일 14:55 프린트하기

 

“힘든 훈련을 한 뒤에는 파스타 같은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먹어요.

탄수화물이 피로 해소에 좋아서요.”
- 김도연,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지난달 국내 스포츠 최대 화제는 21년 만에 한국 여자 마라톤 최고기록이 깨진 일이었다. 3월 18일 열린 2018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에서 김도연 선수는 42.195km를 2시간25분41초에 완주해 1997년 권은주 선수가 세운 2시간26분12초를 31초 앞당겼다. 황영조, 이봉주 선수 이후 한국 마라톤이 긴 침체기에 빠져서인지 이 소식은 다음날(19일자) 신문 1면 톱기사로 나갔고 20일자에는 2면을 다 털어서 김 선수 인터뷰를 실었다.

 

지난달 18일 열린 2018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김도연 선수는 2시간25분41초에 완주해 21년 만에 한국기록을 31초 단축했다. - 스포츠동아(대한육상연맹) 제공
지난달 18일 열린 2018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김도연 선수는 2시간25분41초에 완주해 21년 만에 한국기록을 31초 단축했다. - 스포츠동아(대한육상연맹) 제공

필자는 모처럼 인터뷰를 꼼꼼히 읽어봤는데, 말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나’ 채 1년이 안 되는 사이 5000m(2017년 7월)와 하프마라톤(올해 2월)에 이어 풀코스 마라톤까지 연달아 한국기록을 경신한 김 선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이 세 번째 마라톤 출전이고 40km 이상의 고강도 훈련도 단 한 번 했을 뿐이라니 정녕 ‘육상 천재’란 말인가.

 

김 선수의 인터뷰에서 위에 인용한 부분을 읽는 순간 올 초에 나온 한 논문이 생각났다.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을 하는 선수에게는 양질의 탄수화물 섭취가 중요하다는 내용이라 흥미를 끌었는데 막상 이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려다 보니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약간 찜찜한 면도 있어서 일단 접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고맙게도 김 선수가 인터뷰에서 ‘탄수화물이 피로 해소에 좋다’는 언급을 해줘서 이참에 다시 열어본다.

 

필자가 이 논문에 흥미를 느낀 건 운동선수에게 중요한 영양소는 단백질이고, 그 다음도 지방이지 탄수화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선수들이 고된 훈련이나 경기가 끝나면 불고기나 삼겹살을 먹으러 간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데 탄수화물이 중요하다니 무슨 소릴까 궁금했다. 그럼에도 좀 찜찜한 건 이 논문이 비영리기관이라고는 하지만 감자연구교육연합(APRE)이 주관한 ‘신체활동을 위해 필요한 다량영양소(macronutrient)에 대한 최신 과학’을 주제로 전문가들이 토론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감자는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이다.

사진 GIB 제공
사진 GIB 제공

 

엘리트 체육계도 고지방 식단 유행

 

“지난 40~50년 동안 행해진 많은 연구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건 탄수화물이 신체 수행능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데 있어서 일차적인 다량영양소라는 점이다.”

 

푸드마인즈(FoodMinds)라는 식품과 영양 컨설팅 회사의 최고과학책임자(CSO)인 미치 캔터(Mitch Kanter) 박사는 학술지 ‘Nutrition Today’ 1/2월호에 실린 논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최근 고지방 식단이나 고단백 식단의 유행으로 체육계의 영양지침이 흔들리면서 감자연구교육연합이 신체활동에 필요한 다량영양소에 대한 최신 과학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는 것이다.

 

선수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고 고된 훈련에서 더 빨리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기법이나 처방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다 오히려 상황을 망치는 게 바로 식단과 관련된 변화라는 것이다. 특히 신체 활동이 적은 사람들이 건강상의 이유로 택하는 탄수화물 제한 식단을 운동선수에게 적용한 결과 오히려 역효과를 본다.

 

선수의 능력을 끌어 올려주는 새로운 방법 중 식단과 관련된 변화는 오히려 상황을 망칠 수 있다 - 사진 GIB 제공
선수의 능력을 끌어 올려주는 새로운 방법 중 식단과 관련된 변화는 오히려 상황을 망칠 수 있다 - 사진 GIB 제공

 

예를 들어 지난해 학술지 ‘생리학저널’에는 경보선수들을 대상으로 식단이 기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3주 동안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사를 주고 훈련한 그룹은 10km 기록이 1.6% 퇴보한 반면 기존 고탄수화물 저지방 식사를 준 그룹은 6.6%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로 인체 생리학에 대한 기본지식만 있어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근육이 힘을 내는데 포도당만큼 좋은 연료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굳이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먹어 복잡한 대사경로를 밟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식물이 뿌리나 줄기에 녹말을 저장하듯이 인체는 근육과 간에 글리코겐(glycogen)이라는 고분자 형태로 탄수화물을 저장하는데 보통 근육에는 약 200그램, 간에는 100그램 정도 된다. 이 상태에서 굶을 경우 몸은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사용하며 18~24시간을 버틸 수 있다.

 

장거리 달리기처럼 근육이 오랜 시간 움직이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의 경우 근육에 글리코겐이 충분히 저장돼 있어야 하고 훈련으로 소진되면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 바로 채워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김도연 선수가 훈련을 마치고 파스타를 맛있게 먹으면 녹말이 소화돼 포도당으로 바뀌어 흡수되고 포도당은 혈액을 통해 근육에 도달해 글리코겐으로 합성돼 저장된다.

 

한편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 역시 혈당이 떨어지면 포도당으로 분해돼 뇌나 적혈구의 에너지원이 된다. 따라서 고된 훈련으로 김 선수의 간에 있던 글리코겐까지 바닥나고 혈당도 떨어지면 피로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파스타를 먹으면서 바로 채워지기 때문에 기운이 난다는 말이다.

 

장거리 달리기의 경우 글리코겐이 충분히 저장돼 있어야 하고, 소진되면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으로 바로 채워놓아야 한다. - 사진 GIB  제공
장거리 달리기의 경우 글리코겐이 충분히 저장돼 있어야 하고, 소진되면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으로 바로 채워놓아야 한다. - 사진 GIB 제공

 

캔터 박사는 논문에서 “많은 선수들이 근육의 글리코겐 저장고를 채우기에 충분한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아 기록이 안 나온다”며 “특히 힘든 훈련을 규칙적으로 하는 경우 더 그렇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하루 네 시간 이상 훈련할 경우 1kg 당 12그램 이상의 탄수화물이 필요하다. 몸무게 79kg인 선수의 경우 3800칼로리를 탄수화물로 섭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감자와 쌀, 파스타처럼 양질의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먹지 않으면 도저히 채우기 어려운 수치다.

 

참고로 녹말이 풍부한 천연 식재료를 ‘양질의 탄수화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탄수화물 외에 단백질이나 지방도 들어있고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제한 설탕은 ‘불량 탄수화물’이다.

 

한편 단백질이 중요하다는 주장(근육이 단백질이므로)에 대해서는 고탄수화물 식단에 들어있는 단백질로도 충분하다고 답한다. 즉 엔진(근육)을 움직이는 건 휘발유(탄수화물)이지 엔진이 쇳덩어리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쇳가루(단백질)는 아니라는 말이다.

 

탄수화물(녹말)이 풍부한 음식은 구강과 위, 소장에서 소화돼 포도당(glucose)으로 바뀌어 흡수된다. 여분의 포도당은 근육과 간에서 글리코겐(glycogen)으로 바뀌어 저장되고 그래도 남으면 지방으로 바뀌어 지방조직에 저장된다. 근육을 많이 쓰는 사람은 평소 근육에 글리코겐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글리코겐 생합성 과정을 보여주는 일러스트다. - 위키피디아 제공
탄수화물(녹말)이 풍부한 음식은 구강과 위, 소장에서 소화돼 포도당(glucose)으로 바뀌어 흡수된다. 여분의 포도당은 근육과 간에서 글리코겐(glycogen)으로 바뀌어 저장되고 그래도 남으면 지방으로 바뀌어 지방조직에 저장된다. 근육을 많이 쓰는 사람은 평소 근육에 글리코겐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글리코겐 생합성 과정을 보여주는 일러스트다. - 위키피디아 제공

 

인체는 탄수화물 잘 소화하도록 진화

 

논문을 읽다 보니 문득 지난 2015년 학술지 ‘계간생물학리뷰’에 실린 ‘인간 진화에서 식이 탄수화물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생각났다.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고지방 식단을 ‘구석기 다이어트(paleo diet)’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구석기인들이 마치 육식만 한 것처럼 오해를 받기에 이르러 이들의 식단에서 탄수화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생물학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글을 쓴 것이다.

 

인간의 게놈을 보면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잘 소화할 수 있게 유전자가 마련돼 있다. 구석기인들, 즉 수렵채취인들은 거의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걷거나 뛰는 게 일상이었다. 즉 우리 몸은 큰 뇌를 지닌 채 근육을 많이 쓰는 생활(둘 다 포도당을 물 쓰듯이 하는 기관이다!)에 맞게 설계돼 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게놈에 탄수화물 대사 관련 유전자를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녹말을 소화하는 효소인 아밀라아제를 보자. 인체에는 크게 두 종류의 아밀라아제가 있는데 침샘에서 분비되는 아밀라아제(AMY1)와 췌장에서 분비되는 아밀라아제(AMY2)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두 종류의 아밀라아제 유전자 모두 개수가 늘어났다. 즉 유전자 발현량을 높이는 걸로는 부족해서 복제수를 늘려 효소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영장류 가운데 인류만 AMY1 유전자가 여러 개다.

 

자연선택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아밀라아제 유전자 개수가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긴요하다는 뜻이다. 즉 녹말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게 됐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소화해 흡수할 수 있는 형태인 포도당으로 바꿔 에너지원으로 쓰기 위해서다.

 

유일하게 아밀라아제(AMY1) 유전자가 여러 개인 인류. 그만큼 긴요하다는 뜻이다. - 사진 GIB 제공
유일하게 아밀라아제(AMY1) 유전자가 여러 개인 인류. 그만큼 긴요하다는 뜻이다. - 사진 GIB 제공

흥미롭게도 대략 3만 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살게 된 개의 경우도 췌장에서 발현되는 AMY2의 유전자 수가 여럿이다. 사람이 주는 녹말이 풍부한 음식을 먹다 보니 사람과 비슷하게 변이가 생긴 것이다. 한편 개는 AMY1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개의 침에는 아밀라아제가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고기(근육)에는 글리코겐 형태로 탄수화물이 들어있어 이를 소화하기 위해 육식동물도 췌장에서 아밀라아제를 만든다.

 

게놈을 분석해 영장류의 진화를 재구성해보면 대략 3900만 년 전 침샘에서 아밀라아제가 발현되는 변이가 일어났다. 그리고 인류에서만 침샘 아밀라아제 유전자수가 늘어났다. 그 결과 사람 침에는 침팬지보다 훨씬 많은 아밀라아제가 들어있다. 즉 사람 침은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데 최적화된 조성이라는 말이다.

 

 

몸 많이 쓸수록 탄수화물 비중 높여야

 

물론 구석기인들이 탄수화물을 꽤 먹었고 몸의 생리가 다량의 탄수화물을 대사할 수 있게 진화했다고 해서 고탄수화물 식단이 고지방 식단보다 더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날 당뇨 같은 대사질환이 만연한 건 식단보다는 생활습관이 더 큰 요인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예전 사람들은 지금보다 밥을 훨씬 많이 먹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밥공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데다 밥도 무덤처럼 봉긋하게 담았다. 실제 지난 반세기 동안 1인 당 쌀 소비량을 보면 1970년과 1979년 136kg으로 가장 많았고(중간에 쌀이 부족해 분식장려운동을 펼치면서 쌀소비량이 소폭 감소했다) 그 뒤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해에는 62kg에 불과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럼에도 대다수가 육체노동을 하던 1970년대에는 당뇨환자가 드물었다. 즉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다고 당뇨병에 걸리는 건 아니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다고 당뇨병에 걸리는 건 아니다. 대사질환은 생활 습관이 더 큰 요인일 수 있다 - 사진 GIB 제공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다고 당뇨병에 걸리는 건 아니다. 대사질환은 생활 습관이 더 큰 요인일 수 있다 - 사진 GIB 제공

 

‘그때 사람들은 밥만 먹고 어떻게 힘을 썼는지 몰라...’ 어르신들은 옛날을 추억하며 이렇게 말하지만 이번 탄수화물과 운동 논문에 따르면 ‘밥을 먹었기 때문에’ 고된 농사를 버텨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장문의 김도연 선수 인터뷰가 실린 날 스포츠면에는 그를 지도한 김영근 감독의 인터뷰도 실렸다. 김도연 선수는 지난해 초 강원도청에서 K-water로 옮겨 김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급성장했다.

 

동아마라톤 여자 엘리트 부문에서 우승하며 21년만에 한국기록을 경신한 김도연(25·K-water) 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 사진 동아일보 제공
동아마라톤 여자 엘리트 부문에서 우승하며 21년만에 한국기록을 경신한 김도연(25·K-water) 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 사진 동아일보 제공

 

김 감독은 일본의 마라톤 명문 준텐도대 석사 과정에서 운동생리학을 공부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 감독은 “운동생리학을 바탕으로 모든 훈련을 선수와 상의해 체계적으로 시켰다”고 한다. 아마 선수의 식단도 꽤 신경을 썼을 것이다.

 

김 선수가 힘든 훈련 뒤 고탄수화물 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것도 김 감독의 조언을 따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6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2018년 04월 03일 14:55 프린트하기

 

혼자보기 아까운 기사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세요

네이버밴드 구글플러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16 + 10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