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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어린이, 놀아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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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5일 11:00 프린트하기

[어린이날 특집]

어린이날은 상당히 독특한 공휴일입니다. 한국의 공휴일은 대략 11가지가 있는데, 종교적 기념일과 국경일, 전통 명절을 빼면 딱 하나가 남습니다. 바로 어린이 날이죠. ‘어린이’의 위상이 상당합니다. 그런데 어린이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놀이’를 떠올릴 것입니다. 네. 물론 어른도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린이와는 비교가 안됩니다. 오늘은 어린이의 놀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린이들은 충분히 놀고 있는가? - GIB 제공
어린이들은 충분히 놀고 있는가? - GIB 제공

 

 

어린이의 특권, 놀이

 

놀이는 어린이의 특권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 31조에 의하면, 어린이는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아동복지법 제 52조에도 국가는 아동에게 놀이, 오락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 만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라’라고 했습니다. 세계아동헌장, 아동권리선언 등에서도 역시 비슷한 ‘놀’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네. 어린이는 국가에서 인정한 ‘노는 사람’입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동네에는 놀이터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학교에는 엉성한 그네나 시소, 철봉 정도가 있을 뿐이었죠. 문방구점에서 파는 장난감이라는 것도 조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나마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동전 모양의 그림이 새겨진 종이 딱지를 가지고 놀았고, 여자아이들도 도화지에 인쇄된 인형에 옷 모양 종이를 ‘포개면서’ 놀았죠. 그나마도 없으면 조약돌을 모아 놀았습니다.


지금은 온통 놀 곳 천지입니다. 아이 키우는 집은 아시겠지만, 신혼 초의 우아한 인테리어는 곧 아이를 위해서 다시 ‘세팅’됩니다.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매트와 정교한 놀잇감이 가득합니다. 아파트에는 온갖 놀이시설이 갖추어진 놀이터가 있고, 번화가에는 거대한 놀이방이 성업 중입니다. 여러 명의 전문 직원이 ‘고객’의 즐거운 놀이를 돕기 위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프라만 보면, 이미 한국 사회는 ‘어린이 세상’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1954년 5월 5일 어린이날. 서울 창경궁 - 위키미디어 제공
1954년 5월 5일 어린이날. 서울 창경궁 - 위키미디어 제공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놀고 있는가?

 

한국의 어린이들은 잘 놀지 못합니다. 놀이 시간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는 물론이고, 일본보다도 짧습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은 하루에 평균 4시간 30분을 노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짧은 수준입니다. 게다가 지난 10여년 동안 더욱 줄어들고 있습니다. 놀 시간이 없어서 놀지 못합니다.


왜 놀 시간이 줄었을까요? 공부 시간이 너무 늘어나서 그렇습니다. 초등학생은 주말에도 거의 다섯 시간을 공부하는데, 이는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사실 어른들은 주말 근무를 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합니다. 총 근무시간도 정하고, 급여도 더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은 예외죠.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주말도 없이 공부합니다. 어른의 여가는 점점 길어지고, 어린이의 여가는 점점 줄어듭니다.


놀이의 질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인류학적인 의미에서 놀이는 즐겁고 자연스러운 활동입니다. 그리고 또래와의 상호 관계를 포함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놀이의 세계 안에서 각자 역할을 정하고, 위계도 나눕니다. 놀이 중에 권력의 불균형을 경험하고, 서로 다투고, 이내 타협해 나갑니다. 즉 즐겁게, 스스로, 같이 놀아야, 진짜 노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그렇게 놀지 않습니다. 주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를 합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노는 시간은 전체 여가 시간의 30%에 불과합니다. 스마트폰이 증가하면서 이런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죠.


물론 인터넷이나 텔레비전도 해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무조건 산과 들에서 놀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성 세대는 골목길에서 놀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어렵습니다. 우두커니 서있는 자동차가 공간을 빼앗았습니다. 점점 노는 공간이 좁은 실내(PC방, 놀이방 등)로 한정됩니다. 대문 밖에만 나서면 어딘가 노는 아이들이 모여있던 시기는 끝났습니다.

 

어린이 둘이 같이 놀고 있다. 어른의 눈으로는 하찮아 보이지만, 놀이의 세계는 복잡한 규칙이 존재하는 진지한 과정이다. - 위키미디어 제공
어린이 둘이 같이 놀고 있다. 어른의 눈으로는 하찮아 보이지만, 놀이의 세계는 복잡한 규칙이 존재하는 진지한 과정이다. - 위키미디어 제공

 

 

놀이의 적응적 가치

 

아이의 놀이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어른 인류학자의 주 관심은 언제나 ‘어른’이었습니다. 놀이인류학회가 어린이의 놀이를 연구한 것은 불과 수십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자 헤더 몽고메리는 몇 가지 연구 결과를 정리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놀이는 보편적인 인류학적 현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이 놀지 않는 문화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전세계 모든 아이는 놀기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또래와의 놀이는 대단히 중요한 발달적 과정입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랜시에 의하면 주된 놀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머니와 아이의 놀이는 일부 서구 중산층 사회에서만 관찰되는 예외적 현상이라고 했죠.


즉 진정한 의미의 놀이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모여서 자발적인 규율과 질서, 규칙, 위계 등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입니다. 팽이를 치든, 야구를 하든, 소꿉놀이를 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차적 문제입니다. 만화영화 시청을 놀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양질의 놀이는 아닙니다. 그러나 만화영화를 보더라도, 동네 친구들이 한 방에 같이 모여서 떠들며 보면 훌륭한 놀이가 됩니다.


놀이는 사회적 관계의 연습이라는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적인 면에서, 놀이는 기술적 적합도를 향상시켜줍니다. 아마 구석기 시대의 어린이는 돌을 가지고 깨트리며 놀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정교한 석기를 만들었겠죠. 지금도 제 3세계 농촌 지역의 어린이는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박물학적 지식을 직접 체득합니다. 청소년기가 되면, 놀이는 반쯤 일이 됩니다. 어른이 되면 여전히 비슷한 놀이를, ‘훨씬 숙련된 방법’으로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일이라고 부릅니다.

 

서당. 단원 김홍도. 1780년경. 동아시아 사회는 오래 전부터 유교적 세계관에 근거한 교육 제도를 유지해왔다. 학업적 성취를 높게 평가하는 전통은 어린이로부터 놀 시간을 박탈했는데, 이런 경향은 현대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서당. 단원 김홍도. 1780년경. 동아시아 사회는 오래 전부터 유교적 세계관에 근거한 교육 제도를 유지해왔다. 학업적 성취를 높게 평가하는 전통은 어린이로부터 놀 시간을 박탈했는데, 이런 경향은 현대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아이들을 ‘놀게’ 해주기

 

어린이의 놀이는 어른의 휴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느긋하게 온천 물에 몸을 담그고, 편안한 음악을 듣는 것은 어른의 휴식이지만, 어린이에게는 아닙니다. 하나도 안 좋아합니다. 당장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정교한 규칙과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진지한 태도로 최선을 다해 놉니다. 놀이 중에 벌어지는 갖가지 실수들은,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는 파격의 경험이자 교정적 합의 과정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발달 과정 중에 체화되어, 일은 즐겁다는 경험으로 발전합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삶은 늘 험난하고 궁핍했지만, 어른의 일은 아이 때부터 하던 놀이의 연장이었습니다. 잘 노는 어린이는, 일도 잘하는 어른이 되었죠. 일을 하다 실수를 해도, 얼굴이 하얗게 질리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놀던 버릇대로 호탕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조상들은 평생 놀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놀이는 부차적인 활동으로 밀려났습니다. 놀이는 공부에 자리를 내주고, 일은 노동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놀이에서 일로 이어지던 즐거운 삶은, 공부에서 노동으로 이어지는 고단한 삶으로 변했습니다. 놀이의 일부는 ‘성적이 매겨지는’ 학습 과정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다른 일부는 ‘숙제를 다하면 받는 보상’이 되었죠. 점수를 매기는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닙니다. 상으로 받는 것도 진짜 놀이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현상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합니다. 놀이의 지위가 ‘불필요한 애들 장난’으로 격하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하는 여러 활동은, 어떤 의미에서는 반쯤 놀이에 가깝습니다. 다만 지도 교사가 있고, 점수도 매기고, 상도 주면서, 억지로 정형화된 학습의 틀을 씌웠을 뿐입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모름지기 어린이는 뛰어 놀아야 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별 반향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발칙한 제안이지만, 차라리 ‘놀기’를 의무화하면 어떨까요? ‘매일 친구랑 세 시간 아무거나 하며 아무렇게나 놀기’라는 식이죠. 공부를 잘 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많이 노는 어린이에게 더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다. 물론 놀이의 성취도를 매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부터는 다시 공부가 됩니다. 단지 놀이의 시간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오래 놀면 좋은 점수를 받도록 바꾸면, 우리나라 어린이는 지겹도록 놀 수 있을 것입니다. 실현 가능성은 적을 것 같습니다만……


인류는 놀도록 진화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는 노는 사람, 아니 반드시 놀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에필로그

 

놀이 학교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독일식 놀이 학교와 영어 놀이 학교가 있는데, 수강료는 매달 100만원 선이라고 하네요. 슬픈 일입니다. 진짜 놀이가 아닙니다. 다양한 ‘놀이’도구의 사용법을 배우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린이는 몇 명의 또래, 그리고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신나게 놀 수 있습니다.

놀이는 타고난 진화적 본성입니다.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놀이 학교에 가야 해서, 친구랑 놀 시간이 없다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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