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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누비며 느끼는 감정, 뇌파로 분석…신경건축학 연구 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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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4일 03:00 프린트하기

한 연구원이 가상현실(VR) 기기와 휴대용 뇌전도(EEG) 기기를 착용한 채 가상 공간을 거닐고 있다. 노트북 모니터에는 뇌파가 기록되고 있다. -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한 연구원이 가상현실(VR) 기기와 휴대용 뇌전도(EEG) 기기를 착용한 채 가상 공간을 거닐고 있다. 노트북 모니터에는 뇌파가 기록되고 있다. -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지난달 20일 서울 성북구의 한 건축 설계 작업실. 설계도면 대신 눈에 띈 것은 가상현실(VR) 장비와 휴대용 뇌파 측정 장비였다. 이곳에서 신경건축학 연구를 하고 있는 지승열 한양대 연구교수를 만났다. 

 

신경건축학은 공간에 대한 사람의 기분이나 생각을 뇌파와 같은 감각신호를 통해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최적의 맞춤형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학문 분야다. 이를테면 심신이 안정된 상태에서는 알파(α)파가 많이 나오고, 긴장을 하거나 불안할 경우에는 베타(β)파가 많이 발생한다. 사용자가 어떤 공간에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지, 어떤 공간에 있을 때 불쾌감이나 스트레스, 공포를 느끼는지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한 뒤 이를 설계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뇌파에 반응하는 ‘스마트 셸터’
VR로 가상공간 경험할 때 감정 측정
“맞춤형 가상 모델하우스도 가능”
2019년엔 실제 모델로도 개발

 

지 교수는 “기존에는 경험적인 지식이나 사용자의 요구사항에 의존해 공간을 설계했지만, 최근 헬멧이나 헤드셋처럼 간편히 착용할 수 있는 모바일 뇌전도(EEG) 측정 장비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건축 분야에서도 뇌파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뇌 활동 분석 장비로는 원통형 공간에 피험자가 들어가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기기와 머리 부분을 고정시킨 자세로 앉아서 찍는 일반 EEG 기기가 있다. 하지만 신체 활동에 제한이 있는 만큼 환자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데 주로 활용돼 왔다.

 

건축가이자 컴퓨터공학자인 지 교수는 지난해부터 철학자와 예술가, 뇌과학자 등과 함께 ‘스마트 셸터(Smart Shelter)’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스마트 셸터는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사용자의 뇌파 정보가 건축물에 전달돼 건축물이 능동적으로 이에 반응하는 형태의 공간이다. 뇌파 측정과 설계를 맡은 지 교수는 앞서 뇌파 자동차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을 살려 이런 공간을 만들었다. 가로세로와 높이가 각각 3m인 큐브 구조로 현재는 VR을 통해서만 구현된 상태다. 실제 모델은 내년에 제작된다.

 

스마트 셸터의 가상 모델. 스마트 쉘터는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사용자의 뇌파 정보가 건축물에 전달돼 건축물이 능동적으로 이에 반응하는 형태의 공간으로 재난 대피용이나 휴식용, 오락용으로 쓸 수도 있고, 뇌파를 이용한 건축 설계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데도 쓸 수 있다. - 스마트 셸터 프로젝트
스마트 셸터의 가상 모델. 스마트 쉘터는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사용자의 뇌파 정보가 건축물에 전달돼 건축물이 능동적으로 이에 반응하는 형태의 공간으로 재난 대피용이나 휴식용, 오락용으로 쓸 수도 있고, 뇌파를 이용한 건축 설계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데도 쓸 수 있다. - 스마트 셸터 프로젝트

스마트 셸터는 공간 자체를 재난 대피용이나 휴식용, 오락용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뇌파를 기반으로 한 건축 설계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데도 쓸 수 있다. 지 교수는 “그동안 뇌파 정보는 의료 분야에서 주로 사용돼 왔기 때문에 건축 공간에 적합한 데이터나 분석 툴은 부족하다”며 “예를 들어 사람이 ‘덥다’고 느끼면 스마트 쉘터가 스스로 뇌파 정보를 해석하고 창문을 열게끔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단순한 작동부터 시작해 뇌파 정보와 실제 공간 정보를 결합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누구나 쉽게 뇌파 정보를 설계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스마트 셸터의 IoT 시스템 제작을 맡고 있는 전한종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팀은 지난해 대한건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뇌파-건축 파라메트릭 디자인 시스템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뇌과학을 잘 모르는 건축가도 컴퓨터지원설계(CAD·캐드)에 별도의 패치만 설치하면, 손쉽게 뇌파 정보를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다.

 

지 교수는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을 VR 영상으로 변환하면, 향후에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사용자가 완성된 건축물을 미리 경험해보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며 “이때 EEG 기기로 측정되는 사용자의 뇌파 정보를 토대로 설계 수정을 하면 실제 건물을 지었을 때 사용자 만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맞춤형 가상 모델하우스를 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美 콜롬비아대 클라우드랩 연구진
서울 시내 6곳 산책로서 관람객 뇌파 분석
“실제 적용 위해선 많은 데이터 축적 필요”

 

미국 콜롬비아대 클라우드랩의 공동 소장인 토루 하세가와 교수(앞)와 마크 콜린스 교수(뒤)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뇌파 측정 현장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 클라우드랩
미국 콜롬비아대 클라우드랩의 공동 소장인 토루 하세가와 교수(앞)와 마크 콜린스 교수(뒤)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뇌파 측정 현장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 클라우드랩

앞서 지난해 9월부터 2개월간 열린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참가한 미국 콜롬비아대 클라우드랩 연구진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서울 시내 6곳의 산책로에서 관람객들의 뇌파 데이터를 분석하기도 했다. ‘뇌파 산책’ 프로젝트다. 사람들이 머리에 쓰는 휴대용 EEG 기기를 착용한 채 도시를 거닐도록 한 뒤, 곳곳에서 사람들이 느낀 다양한 반응을 지도 위에 나타냈다. 산책로마다 많이 발생하는 뇌파의 종류가 조금씩 달랐다.

 

연구진은 α파와 β파, 감마(γ)파 등 3가지 지표로 분석했다. γ파는 각성 상태, 즉 집중도를 나타낸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DDP에서는 α파와 β파, γ파가 모두 높게 측정됐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곳에서 다양한 상태의 감정을 느낀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의 경우 상대적으로 γ파가 낮게 나타났다. 창신동 일대는 불안한 상태에서 많이 나오는 β파가 높게 관측됐다.

 

미국 콜롬비아대 클라우드랩 연구진이 서울 시내 6곳에서 관람객들의 3가지 종류 뇌파를 분석한 결과. 공간마다 뇌파 패턴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볼 수 있다. - 클라우드랩
미국 콜롬비아대 클라우드랩 연구진이 서울 시내 6곳에서 관람객들의 3가지 종류 뇌파를 분석한 결과. 공간마다 뇌파 패턴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볼 수 있다. - 클라우드랩

큐레이터로 참가한 건축가 김경재 아뜰리에KJ 소장은 “열린 도시 공간에서는 빛, 온도, 바람 등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사람이 공간의 어떤 요소에 반응했는지 단번에 알기 어렵다”며 “어떤 데이터가 유의미한지 알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경건축학연구회의 조성행 마인드브릭 대표도 “아직까지 신경건축학은 세계적으로도 걸음마 단계”라며 “실제 건축물에 적용하려면 다양한 조건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경건축학연구회는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2011년 출범한 학술 단체로, 2014년부터 매년 관련 연구 성과를 서로 공유하는 신경건축학연구회 컨퍼런스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건축학과 학생들이 모여 전국대학연합 신경건축학연구회를 만들고, 국내외 신경건축학 동향을 전하는 등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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