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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텃세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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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3일 13:00 프린트하기

간호사 사회의 태움 문화가 화제입니다. 신규 간호사에 대한 ‘군기 잡기’의 문화입니다. 사실 이런 폐습에 문화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신체적, 정신적 방법으로 신참을 괴롭히는 악습은 간호사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 사회는 물론이고, 군대나 학교, 일반 직장에서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텃세의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텃세의 심리학 - GIB 제공
텃세의 심리학 - GIB 제공

 

 

신래침학(新來侵虐)의 전통?

 

예전에는 과거 시험에 급제한 자를 신래(新來)라고 했습니다. 흔히 신규 간호사를 신졸이라는 은어로 부르는데, 비슷한 것입니다. 인턴 과정의 의사나 OJT 수습을 받는 신입사원과도 유사합니다. 과거에 급제한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신래는 바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들에게 학대를 감수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연회를 열어 선배를 즐겁게 해주어야 했습니다. 

 

선배가 웃으라하면 웃고, 화를 내라 하면 화를 내고, 개가 교미하는 흉내를 내라면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이런 수모를 준 이후에는 직접적인 신체적 학대가 시작됩니다. 다들 둘러서서 발길질을 가하고 형틀을 만들어 괴롭혔습니다. 발바닥을 때리다가, 심지어는 못으로 말굽을 달기도 했습니다. 단종 때 승문원에 부임한 신임 급제자 정충화는 이런 신래침학의 풍습을 따르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율곡 이이는 이러한 폐습에 반대하여 신래침학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결국 이로 인해 직을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퇴계 이황은 이 소식을 듣고는 ‘신래침학이 무리인 시속이기는 하나, 이미 그걸 알고서 과거를 보지 않았느냐?’고 했다네요. 

 

율곡 이이. 그는 과거에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고도장원공이라는 별명이 붙은 천재 유학자였다. 그런 율곡도 신고식을 피하려다 승문원에 배정받은 직을 스스로 파하고 만다. - 동아일보 제공
율곡 이이. 그는 과거에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고도장원공이라는 별명이 붙은 천재 유학자였다. 그런 율곡도 신고식을 피하려다 승문원에 배정받은 직을 스스로 파하고 만다. - 동아일보 제공

 

 

텃세의 진화

 

집단을 이루고 사는 동물은 집단 내부의 질서를 만듭니다. 생태학적 자원은 제한되어 있으니, 이를 배분하는 원칙이 생기는 것이죠. 서열을 만들기도 하고, 집단의 우두머리를 내세우기도 합니다. 각각의 역할을 나누기도 하죠. 텃세, 즉 세력권 만들기도 이러한 생물학적 상호 작용 중에 하나입니다. 


텃세는 포유류만이 아니라, 조류나 어류에서도 관찰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주로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물러 지내는 종에서 텃세가 심하게 나타납니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새로운 침입자를 쪼거나 밀어내어 고통을 줍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이런 방법이 꽤 효과가 있습니다. 제한된 생태학적 자원을 독점할 수 있죠. 아마 많아야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친족 집단을 이루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 조상에게는 분명 효과적인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새 멤버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죠. 


그러나 거대한 집단 사회를 이루고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텃세라는 전략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생태학적 영역이 고정되지 않는 데다가, 배타성보다는 협력을 통해서 얻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죠. 텃세는 주로 작은 집단, 그리고 협력이 필요하지 않은 집단에서 일어납니다. 가장 약한 대상 즉 새로 들어온 대상을 주 표적으로 삼습니다. 닭장 같은 환경입니다. 

 

인간 사회의 텃세는 결국 ‘그런 곳이라면 절대 가지 않겠다’라는 반응을 유발합니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거든요. 구습에 젖은 집단으로는 새로운 구성원 유입이 중단됩니다. 신래자(新來者)는 자원을 빼앗아가는 라이벌이 아니라, 집단 전체에 이득을 주는 소중한 자원인데도 불구하고 근시안적인 태도가 이런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 어느 병원, 어느 부서는 텃세가 심하다더라’ 류의 소문은 금새 퍼집니다. 작은 집단은 큰 집단의 부분일 뿐이죠. 결국 텃세를 부리는 작은 집단은 보다 큰 수준에서 배척당하게 됩니다. 베푼 대로 당하는 것이죠. 

 

닭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닭의 세계에 텃세가 얼마나 심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텃세는 조류와 어류, 포유류 등에서 폭넓게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 세계에서는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 되기 어렵다. - 위키미디어 제공
닭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닭의 세계에 텃세가 얼마나 심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텃세는 조류와 어류, 포유류 등에서 폭넓게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 세계에서는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 되기 어렵다. - 위키미디어 제공

 

 

태움과 갈굼의 악습

 

텃세는 신입 멤버에 대한 신고식에 그치지 않습니다. 고의적인 트집과 과도한 압력, 부당한 업무 지시와 집단적인 따돌림을 통해서 혼이 빠지도록 괴롭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잘 아는 사람도 없고, 업무도 미숙한 이에게, 집단 전체가 곤욕을 주는 것이죠. 게다가 ‘나도 전에 당했었는데’하는 부채 의식이 결합하면, 정말 잔인한 수준으로 심해집니다. 


이런 텃세의 방향은 직책의 높고낮음을 가리지 않습니다. 성종 때 당상관을 지낸 변종인은 자신보다 급이 낮은 하사관에게 심한 신래침학을 당한 일이 있습니다. 성종이 이를 질책하고자 하급자를 불러 문책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변종인이 참판을 지낸 당상관이지만, 고풍(古風)보다야 더 높을 리가 있겠습니까?”

- 이규태,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텃세에 대한 강력한 전통은 당상관이라는 지위도 무시했고, 심지어 임금의 질책에도 공고했습니다. 군대에서 종종 일어나는 소대장 길들이기 혹은 새로 부임한 부서장에 대한 부서원의 은밀한 따돌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연륜있는 사람도, 일단 터줏대감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아야 합니다. 한번 눈에 거슬리면 어떤 지시도 제대로 먹히지 않습니다. 진취적인 리더가 무엇인가를 개혁해보려다, 이런저런 집단적 태업과 터무니 없는 투서에 당하고, 결국 교묘한 훼방과 망신을 겪고 난 끝에 굴복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진정한 라이벌은 외부에서

 

사실 신입 멤버에 대한 태움과 갈굼의 전통은, 기존 멤버에게는 아주 유리합니다. 유리한 지위를 누리면서 부여받지 않은 권력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설령 상급자가 바뀌어도, 똘똘 뭉쳐서 기득권을 지켜내려 합니다. 이런 구습이 못마땅한 사람도 드러내고 반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자신이 표적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한 곳에서 농사만 지으며 대대로 살아가는 환경이라면 모를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이런 텃세의 문화는 절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습니다. 뜻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그런 집단에 들어가 수모를 견뎌낼 이유가 없습니다. 

 

GIB 제공
GIB 제공

 

 

“처음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은 사과(四科), 즉 성균관, 예문관, 승문원, 교서관에서 신래로 지목하여 곤욕을 주고 괴롭히는데, 그 하지 않는 짓이 없을 정도입니다. 대개 호걸의 선비는 과거 시험 자체를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는데, 하물며 갓을 부수고 옷을 찢기며 흙탕물에 굴러 체통을 잃고 염치를 버린 후에야 벼슬에 오르게 된다면, 그 어떤 호걸의 선비가 세상에 쓰이기를 원하겠습니까?” 
율곡 이이가 선조 2년, 임금에게 아룀. 

 

 

그렇게 텃세를 부리고 신참자를 괴롭히는 재미에 정신을 못 차리던 조선의 벼슬아치들은, 더 큰 외부의 적 즉 왜의 침략을 받습니다. 율곡 이이가 신래침학의 악습을 없 애달라고 선조에게 청한 지, 불과 23년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신참자를 못 살게 구는 데는 재주가 출중하던 이들은, 정작 왜군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조선 팔도는 처참하게 도륙당합니다. 


내부에서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집단은 외부의 적에 대한 취약성을 보이게 됩니다. 갈굼과 태움으로 유지되는 집단에 진정한 결속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조직이 무너지면 ‘에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꼴 좋다’며 콧노래를 부를 내부 직원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집단의 에너지는 외부를 향해야 합니다. 진취적인 확장의 가치, 그리고 능력 위주의 포용적 문화가 없는 곳이라면, 굳이 텃세를 견디며 버텨봐야 얻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끝이 좋지 않습니다. 

 

 

에필로그

 

율곡 이이는 한때 출가하여 승려의 길을 걸었을 정도로, 출세 자체에는 초연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율곡의 눈에, 능력있는 선비들이 폐습에 막혀 벼슬길을 고사하는 상황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그가 개탄하던 당시 조선의 상황이나 5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상황이나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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