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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밀가루 글루텐 유해성, 여전히 논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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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29일 14:23 프린트하기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고들 하고 심지어 ‘인간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어떤 계기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거나 어떤 행동을 해서 놀라운 효과를 봤다면 바뀔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습관을 고치기는 어렵지만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 습관이 바뀔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습관을 고치기는 어렵지만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 습관이 바뀔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소유물 애착’을 주제로 지난주 과학카페 글을 준비하며 자료를 보다 저장장애가 집안에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것뿐 아니라 특정 대상, 즉 책이나 동물에 대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결과 40대 중반부터 실천하고 있는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는’ 방침에서 예외로 했던 책도 앞으로는 포함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책 저장장애’를 몰랐다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필자가 책을 버린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관련기사 : 마음이 허(虛)하면 소유물에 집착한다 https://goo.gl/EG2Go5)

 

아무튼 지난 주에 책 세 권을 샀고 책장에서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세 권을 골라 버렸다. 이제 책을 어디에 둘지 고민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사실 필자가 우연히 어떤 정보를 접한 뒤 행동에 반영해 큰 효과를 본 건 따로 있다. 2년 전 초가을, 필자는 한 친구와 점심을 하다 ‘그레인 브레인’이라는 책에 대해 알게 됐다. 과체중이던 친구는 이 책을 읽고 고지방 다이어트를 시작해 일주일 만에 3kg를 뺐다며 좋아했다. 

 

마침 그 무렵 고지방 다이어트가 유행해 필자는 이에 대해 글을 준비하며 ‘그레인 브레인’을 읽어봤고 에세이에서 ‘유익한 내용이 많지만 곡물(grain)에 대한 비난은 지나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 주제에서 나와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주장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밀가루 글루텐의 유해성은 여전히 논란 중이다 - GIB 제공
밀가루 글루텐의 유해성은 여전히 논란 중이다 - GIB 제공

밀가루 음식 섭취를 확 줄여 보니...

 

필자는 평소 알레르기 비염 증세가 있고 봄가을 환절기에 심해진다. 이비인후과에 가도 코를 시원하게 뚫어주는 처치를 하고(얼마 못 가 다시 막힌다) 항알레르기약을 처방해주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그레인 브레인’에서 밀이 면역계 문제(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 만성 염증)를 일으킨다는 주장을 읽어보니 꽤 설득력이 있었다.

 

환절기를 앞두고 코막힘을 각오하고 있던 필자는 ‘밀가루 음식을 끊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실천했다. 다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비염 증세는 계절적 요인이 큰 반면 밀가루 음식이야 연중 비슷하게 먹었을 것이므로 ‘논리적으로’ 봤을 때 둘 사이에 관계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밀이 알르레기나 만성 염증을 일으킨다는 주장에 따라 밀가루 음식 섭취를 확 줄여 보니...? - 사진 GIB 제공
밀이 알르레기나 만성 염증을 일으킨다는 주장에 따라 밀가루 음식 섭취를 확 줄여 보니...? - 사진 GIB 제공

 

2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필자는 라면, 짜장면, 햄버거는 입에도 안 댔고 어쩌다 샌드위치나 빵 한두 조각을 먹는 게 고작이다. 다만 파스타는 예외로 했는데, 그래 봐야 한 달에 한두 번이다(중년 남자가 점심약속을 파스타집으로 잡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결과 밀가루 섭취량이 90%는 준 것 같다.

 

필자가 이처럼 대단한 실천력을 발휘한 건 그 효과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이해 가을 환절기에 비염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고 겨울을 나며 한두 번 감기에 걸렸을 때도 코막힘이 예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지난해 봄과 가을 환절기에도 비염 증세는 없었고 올봄도 무사히 지나갔다. 지난 겨울엔 운 좋게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 밀가루 음식을 확 줄인 뒤 알레르기 비염 증세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이런 결과를 토대로 “그동안 밀가루 음식 때문에 비염이 생긴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려면 적어도 예전처럼 밀가루 음식을 먹었을 때 비염 증세가 다시 생기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겠다고 이런 실험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카페에서 커피향을 맡지 못하고 입으로 숨 쉬다 불편해 잠을 깬 적이 있는 사람은 필자의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파스타면은 보통밀이 아니라 듀럼밀로 만든다. 이들은 염색체도 종도 다르다 - 사진 GIB 제공
파스타면은 보통밀이 아니라 듀럼밀로 만든다. 이들은 염색체도 종도 다르다 - 사진 GIB 제공

‘그런데 왜 파스타는 예외로 했지? 밀가루가 다른가?’ 이런 의문이 들 독자도 있을 텐데, 필자가 파스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정말 밀가루가 다른 것도 이유다. 빵이나 다른 면류는 빵밀로도 불리는 보통밀(common wheat)을 쓰지만 파스타면은 듀럼밀(durum)로 만들기 때문이다. 빵밀과 듀럼밀은 품종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종이다. 염색체 개수도 빵밀은 42개인 반면 듀럼밀은 28개다.

 

밀속(屬) 식물의 진화를 재구성한 결과 여러 차례 이종교배가 일어나며 게놈이 늘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듀럼밀은 4배체(AABB)이고 빵밀은 6배체(AABBDD)다. 밀 게놈 진화는 다소 복잡한 주제로, 관심이 있는 독자는 <곡물 게놈 해독이 동물 것보다 복잡할까? https://goo.gl/NdXKwy> 를 읽어보기 바란다. 

 

밀은 밀속(屬) 식물을 통칭한 이름으로 여러 종이 있다. 밀의 진화를 재구성한 결과 2배체(diploid)인 야생밀(T. urartu)과 염소풀(Aegilops속)이 교배해 4배체(tetraploid)인 엠머밀(emmer)나왔고 여기서 듀럼밀(durum)을 만들었다. 그 뒤 다른 염소풀(A. tauschii)이 끼어들어 6배체(hexaploid)인 스펠트밀(spelt)과 보통밀(common wheat)이 나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밀은 면과 빵을 만드는데 최적인 작물이 됐지만 동시에 유해성도 커졌다. 오늘날 보통밀이 전체 밀 생산량의 90% 이상을, 듀럼밀이 5~8%를 차지하고 있다. - ‘식품과학 및 식품안전성 종합리뷰’ 제공
밀은 밀속(屬) 식물을 통칭한 이름으로 여러 종이 있다. 밀의 진화를 재구성한 결과 2배체(diploid)인 야생밀(T. urartu)과 염소풀(Aegilops속)이 교배해 4배체(tetraploid)인 엠머밀(emmer)나왔고 여기서 듀럼밀(durum)을 만들었다. 그 뒤 다른 염소풀(A. tauschii)이 끼어들어 6배체(hexaploid)인 스펠트밀(spelt)과 보통밀(common wheat)이 나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밀은 면과 빵을 만드는데 최적인 작물이 됐지만 동시에 유해성도 커졌다. 오늘날 보통밀이 전체 밀 생산량의 90% 이상을, 듀럼밀이 5~8%를 차지하고 있다. - ‘식품과학 및 식품안전성 종합리뷰’ 제공

 

글루텐의 두 얼굴

 

과학자와 의학자들은 밀가루 음식이 인체에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을 연구해왔고 글루텐 단백질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글루텐은 면에 쫄깃쫄깃한 식감을 부여하고 효모가 발효과정에서 내보내는 이산화탄소를 머금어 빵반죽을 부풀게 한다. 밀가루 없이 제대로 된 면이나 빵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글루텐이 셀리악병 같은 면역계 이상에서 오는 장질환의 원인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밀가루 음식을 먹은 후 호소하는 배탈, 복부팽만, 설사, 두통, 가려움증, 천식 등 다양한 증상의 배후에도 글루텐이 있다는 발견이 잇달았다. 그 결과 밀을 주식으로 하는 서구사회에서 ‘글루텐이 없는(gluten-free)’ 식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유전적 요인이 있고 소장벽을 이루는 세포 사이가 느슨할 경우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글루텐이 틈 사이로 투과해 자가면역반응을 일으켜 소장벽 세포를 파괴한다. 그 결과 영양결핍과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게 셀리악병이다. 많은 경우 글루텐이 없는 음식을 먹으면 증상이 사라진다. - ‘네이처 리뷰 면역학’ 제공
유전적 요인이 있고 소장벽을 이루는 세포 사이가 느슨할 경우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글루텐이 틈 사이로 투과해 자가면역반응을 일으켜 소장벽 세포를 파괴한다. 그 결과 영양결핍과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게 셀리악병이다. 많은 경우 글루텐이 없는 음식을 먹으면 증상이 사라진다. - ‘네이처 리뷰 면역학’ 제공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밀가루 음식 섭취 관련 증상의 원인이 글루텐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즉 밀에 들어 있는 다른 단백질이 면역반응을 유발한 결과일 수도 있고 심지어 탄수화물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꼭 밀가루 음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 수도 있다. 즉 밀, 그 가운데서도 글루텐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2014년 ‘글루텐을 위한 변명 https://goo.gl/MbLL6i 참조).

 

예를 들어 D게놈에서 유래한 단백질이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빈도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즉 D게놈이 없는 듀럼밀로 만든 파스타는 보통밀로 만든 다른 밀가루 음식보다 면역반응이 덜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가 파스타를 예외로 둔 배경이다. 그렇다고 과거 필자의 비염이 “D게놈에서 유래한 단백질 항원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결과”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단백질 면역반응 vs 탄수화물 소화불량

 

학술지 ‘사이언스’ 5월 25일자에는 ‘글루텐 전쟁(The War on Gluten)’이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의 심층기사가 실렸다. 오늘날 연구자들 대다수가 밀가루 음식으로 인한 문제가 허구가 아니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배후가 무엇이냐에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는 내용이다.

 

학술지 ‘사이언스’ 5월 25일자에는 밀가루 음식 유해성의 주요 원인이 글루텐인가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와 과학자들의 논쟁을 다룬 심층기사가 실렸다. - ‘사이언스’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5월 25일자에는 밀가루 음식 유해성의 주요 원인이 글루텐인가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와 과학자들의 논쟁을 다룬 심층기사가 실렸다. - ‘사이언스’ 제공

먼저 허구론을 잠깐 들여다보자. 밀가루 음식 관련 질환이 부각되고 그 원인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지면서 일각에서 이게 ‘노세보 효과(nocebo effect)’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즉 대중매체에서 밀가루 음식이 몸에 안 좋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걱정이 커져 결국 다양한 생리적 증상으로 나타나 환자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물론 셀리악병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글루텐 프리 음식을 먹어서 효과를 본 것 역시 ‘위약 효과(placebo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필자가 밀가루 음식 섭취를 확 줄이자 비염 증세가 사라진 것도 위약 효과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대단한 ‘마음의 힘’이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소화기내과의 크누트 룬딘 교수는 밀가루 음식 관련 질환이 마음의 병일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밀가루 음식(글루텐)이 원인임이 확실한 셀리악병 환자와 불확실한 비셀리악병(nonceliac) 환자들의 심리상태를 조사했다. 후자가 노세보 효과 때문이라면 심리적 스트레스 수치가 높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심리적 측면에서 두 그룹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미국 컬럼비아대 면역학자 아르민 알레디니 교수는 셀리악병이 아니면서도 글루텐에 민감하다고 주장하는 환자 80명의 혈액을 조사한 결과 이들 대다수가 정말 글루텐에 대한 항체 수치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20명을 대상으로 글루텐 프리 식단을 6개월 행하게 한 뒤 검사를 하자 항체 수치가 크게 떨어졌다. 이에 대해 알레디니 교수는 “이 결과로 글루텐 자체가 병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아직 확인 안 된 밀의 어떤 성분이 장벽의 투과성을 높여 글루텐 같은 단백질이 안으로 들와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밀가루 음식 섭취로 사람들이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게 꾀병이 아니라는 데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글루텐을 포함한 단백질 면역반응 진영과 밀과 다른 음식에 들어있는 탄수화물의 장내 발효 영향 진영 사이의 대립이 팽팽하다.

 

밀가루 음식 섭취로 나타나는 증상은 글루텐을 포함한 단백질 면역반응과 탄수화물의 장내 발효 영향 진영 사이의 대립이 팽팽하다 - 사진 GIB 제공
밀가루 음식 섭취로 나타나는 증상은 글루텐을 포함한 단백질 면역반응과 탄수화물의 장내 발효 영향 진영 사이의 대립이 팽팽하다 - 사진 GIB 제공

단백질 쪽은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후자의 주장을 잠깐 살펴본다.

 

이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은 호주 모나쉬대 소화기내과의 피터 깁슨 교수로 밀가루 음식 관련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의 일부는 글루텐이나 다른 단백질이 원인이겠지만 다수는 다른 게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여기에 포드맵(FODMAP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FODMAPs는 ‘발효가 되는 올리고당류, 이당류, 단당류 및 폴리올(fermentable oligosaccharides, disaccharides, monosaccharides, and polyols)’의 머리글자다. 

 

즉 포드맵은 소장에서 소화가 잘 안 되는 물질로 대장으로 넘어가서 장내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그 결과 발효 과정에서 가스가 차고 복통, 설사 같은 증상이 생길 수 있다. 포드맵은 밀뿐 아니라 양파, 우유, 사과 등 다양한 음식에 들어있지만, 밀을 주식으로 할 경우 섭취하는 포드맵의 절반은 밀의 탄수화물인 프룩탄(fructan)이 차지한다. 

 

과민대장증후군인 사람이 FODMAP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 섭취를 줄이자 증상이 완화된다는 연구결과 있다. 다음 중 FODMAP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은? (정답은 에세이 끝에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과민대장증후군인 사람이 포드맵(FODMAP)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 섭취를 줄이자 증상이 완화된다는 연구결과 있다. 다음 중 포드맵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은? (정답은 에세이 끝에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개인에 따라 포드맵이 소장에서 소화되는 정도와 대장에서 발효되는 정도가 다르다. 예를 들어 우유에 들어있는 이당류 젖당(유당)도 포드맵이지만 소장에서 젖당분해효소가 충분히 나오는 사람에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반면 효소를 전혀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우유를 조금만 마셔도 배탈이 난다. 결국 밀가루 음식에 민감한 사람이 밀가루 음식을 줄이면 속이 편해지는 것도 글루텐이나 다른 밀 단백질이 아니라 포드맵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게 원인인 환자들은 굳이 글루텐 프리 식단을 택할 이유가 없다.

 

사실 크누트 룬딘 교수는 원래 단백질 면역반응 진영이었다가 최근 포드맵 진영으로 전향했다. 룬딘은 피터 깁슨 교수의 실험실에 2주 동안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주장을 반박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공동실험을 제안했다. 이들은 글루텐 프리 식단을 실천하고 있는 59명을 모아 과자 세 종류를 나눠주고 일주일에 한 가지씩 먹게 했다. 세 가지 다 맛과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각각 글루텐이 포함된 것과, 포드맵이 들어있는 것, 둘 다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룬딘은 당연히 글루텐이 들어있는 과자를 먹는 기간에 몸 상태가 가장 나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설문지를 분석한 결과 24명이 포드맵이 들어있는 과자를 먹었을 때 몸이 가장 나빴다고 보고했고 22명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과자를 먹었을 때라고 답했다. 글루텐이 들어있는 과자일 때라고 답한 사람은 13명에 불과했다. 룬딘은 깁슨과 함께 지난해 11월 학술지 ‘소화기내과학’에 이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필자가 보기에 밀가루 음식을 먹었을 때 몸에 이상을 일으키는 원인은 위에 나열한 모두가 아닌가 한다. 즉 어떤 사람은 글루텐이, 어떤 사람은 다른 단백질이, 또 다른 사람은 포드맵이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정말 노세보 효과일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글루텐이나 다른 밀 단백질에 대한 항체반응이 없는 환자들 가운데서도 글루텐이 들어있는 음식 섭취를 줄이면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의 소화기내과의 알레시오 파사노 교수는 이런 환자들에게도 글루텐 프리 식단을 권하는데, 기사에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여기(병원) 있는 건 과학을 하기 위한 게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누군가를 낫게 하기 위해 땅바닥에 뼈다귀를 던지거나 달을 쳐다봐야 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옛날 같았으면 ‘그래도 의사이고 대학교수인데 이런 말을 하다니 너무하다’라고 생각했을 텐데 필자 역시 밀가루 음식 섭취를 확 줄이고 나서 어쨌든 비염이 사라져 삶의 질이 높아지다 보니 수긍이 간다.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과학이 아니라 낫게 하는 치료법이 절실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GIB 제공
GIB 제공

우리나라 역시 지난 수십 년 사이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 과민대장증후군 등 소위 ‘선진국병’을 앓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대해 환경오염, 스트레스, 정크푸드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고 있다. 이 가운데 환경오염은 물론이고 스트레스도 개인이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음식은 여지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kg으로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1985년 128.1kg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쌀(밥) 섭취 감소량의 상당 부분을 면이나 빵 같은 밀가루 음식이 대신했을 것이다. 이런 변화가 선진국병 급증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쌀에는 글루텐이 없고 포드맵도 미미해 과민대상증후군인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음식목록에 포함돼 있다.

 

 

(정답: 포드맵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은 , 사과, 양파, 우유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6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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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29일 14:23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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