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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전쟁은 인간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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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03일 13:00 프린트하기

1974년 1월 7일, 북부 세력은 느닷없이 남쪽 영토를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4년 전쟁(Four-Year War)’으로 불리는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북부를 지배하던 카사켈라 세력은 남부의 카하마 세력을 접수하고 영토를 크게 늘립니다. 남부 지역 남성 여섯 명이 사망하고, 여성 다섯 명이 죽거나 납치되었죠. 아. 사실 남성과 여성이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네요. 이들은 침팬지였으니까요. 

 

GIB 제공
GIB 제공

 

 

곰베 침팬지 전쟁 

 

원래 곰베 국립공원의 북부와 남부 지역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최소 수십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는데 리키라고 불리던 수컷이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1970년 말 리키가 사망합니다. 그러면서 북부와 남부의 교류가 중단됩니다. 1971년부터 균열이 점점 심해지더니 결국 74년부터 무려 4년 동안 피를 흘리는 참극이 계속됩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전쟁이 오직 인간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곰베 침팬지 전쟁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이런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었죠. 처음에는 침팬지가 인간 사회의 ‘나쁜 물’이 들어 전쟁을 한다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자연의 세계에서 동족 간의 전쟁은 없다는 오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된 연구를 통해서 이러한 고정관념은 점점 깨지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동물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침팬지 사회의 전쟁에 대한 다양한 보고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낭만적 믿음은 깨져버렸다. - pxhere 제공
오랫동안 동물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침팬지 사회의 전쟁에 대한 다양한 보고가 이어지면서, 이러한 낭만적 믿음은 깨져버렸다. - pxhere 제공

 

 

전쟁의 본능

 

4년 전쟁이 정말 ‘전쟁’이냐는 의문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제인 구달이 ‘의도치 않게’ 전쟁을 유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구달이 바나나를 주면서 침팬지 사이의 갈등이 생겼다고도 했죠. 그러나 비슷한 전쟁 사례가 계속 관찰되면서, 점차 반론은 수그러듭니다. 


우간다 은고고 침팬지를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미리 정찰병을 보내고 매복과 기습 전술도 구사했습니다. 약 10-14일 간격으로 주기적인 전투를 벌였는데, 전투원은 항상 수컷이었죠. 암컷은 전리품으로 확보하고, 상대측 새끼는 죽여버렸죠. 사실 죽여서 먹었습니다. 심지어 다른 부족의 침팬지를 용병으로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침팬지들이 이렇게 잔혹한 전쟁을 끊임없이 벌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미시간대의 존 미타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 전쟁의 주목적은 영토 확장입니다. 전투는 ‘국경’의 경계 밖에서 주로 일어났는데, 은고고 전쟁에서는 무려 22.3%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이들의 전쟁은 그 규모나 지속성, 그리고 목적으로 볼 때, 인간 사회의 전쟁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은고고 지역 침팬지의 전쟁. 총 21번의 전투 대부분은 영토 밖에서 일어났는데 영토 확장이 목표였다. 10년 간의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20% 이상 늘렸지만, 20마리에 가까운 전사자를 낳는 등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 sciencedirect 제공
은고고 지역 침팬지의 전쟁. 총 21번의 전투 대부분은 영토 밖에서 일어났는데 영토 확장이 목표였다. 10년 간의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20% 이상 늘렸지만, 20마리에 가까운 전사자를 낳는 등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 sciencedirect 제공

 

 

평화로운 구석기인

 

구석기 시대, 즉 1만년 이전에는 전쟁의 흔적이 없습니다. 물론 문자가 없던 시절이지만, 아무리 고고학적 연구를 들춰봐도 전쟁의 자취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동굴벽화에도 전쟁을 묘사한 그림은 없습니다. 발굴되는 화석이 아주 드문 수백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신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수십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고고학적 발굴 장소에도 전쟁의 증거가 전혀 없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실 전쟁은 문명이 시작된 이후, ‘발명’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신석기 혁명, 농업 생산력 확대와 정주 생활,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 사회의 시작, 자원과 영토를 둘러싼 갈등, 전쟁의 시작…… 대략 이런 식의 도식입니다. 자연 속에 평화롭게 살던 인류는, 문명의 타락과 함께 전쟁의 참화에 고통받게 됩니다. 심지어 전쟁이 인류 문명을 촉발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전쟁을 치르기 위한 명령 체계, 리더십, 자원 비축, 대규모 방어시설 등이 문명 사회의 시작이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침팬지들이 벌이는 전쟁을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전쟁은 발명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원시적인 전쟁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죠. 인간의 본성은 원래 평화로 가득한데, 일부 지배층의 욕심 때문에 하기 싫은 전쟁에 억지로 끌려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구석기인은 어떻게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까요? 


흥미있는 가설이 있습니다. 인류가 창을 발명하면서 역설적으로 평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고도로 효과적인 투창 기술로 인해 서로 막대한 피해를 입자 전쟁을 포기했다는 주장입니다. 마치 냉전 시대 미소의 힘의 균형, 즉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통한 공포의 평화를 연상하게 하는 주장입니다. 물론 설득력은 대단히 약합니다. 근거도 없을 뿐 더러, 왜 방패는 만들지 않았냐는 간단한 의문도 풀지 못하는 가설이죠.  


아주 단순하고 믿을만한 가설이 있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단지 ‘전쟁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호모 에렉투스가 살던 시대의 인구 밀도는 아주 낮았습니다. 약 170만 년 전부터 수십만 년 전까지 살던 호모 에렉투스의 인구 데이터는 불명확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아도 세계 인구는 최대 6만명이 되지 않았으리라 추정합니다. 6만명이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의 광대한 영역에 넓게 퍼져 살았죠.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후에도 많아야 30만명에 불과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광대한 생태학적 적소가 있으니, 굳이 다른 집단과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습니다. 좁은 밀림에서 살아가는 침팬지와 달리, 두발 걷기를 진화시킨 인류는 대단히 먼 거리를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높은 지적 능력을 사용하여 다른 동물이 살아가지 못하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아주 잘 적응합니다. 사막에도 살고, 북극에도 삽니다. 치고 박고 싸우기보다 차라리 새로운 땅으로 떠나는 편을 택한 것입니다. 

 

구석기 시대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가설 중 하나는 낮은 인구 밀도다. 인류는 좁은 생태학적 환경을 두고 경쟁하기 보다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 적응하는 편을 택했다. (녹색: 호모 에렉투스, 황색: 네안데르탈인, 적색: 호모 사피엔스)  - 위키미디어 제공
구석기 시대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가설 중 하나는 낮은 인구 밀도다. 인류는 좁은 생태학적 환경을 두고 경쟁하기 보다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 적응하는 편을 택했다. (녹색: 호모 에렉투스, 황색: 네안데르탈인, 적색: 호모 사피엔스) - 위키미디어 제공

 

 

새로운 땅을 향해서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은 약 600만 년 전에 갈라졌습니다. 인간 본성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는 전쟁을 향한 원시적 본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침팬지와 따로 살기로 결정한 후, 불과 1만년 전까지 인류는 아주 평화롭게 살아왔습니다. 수백만 년 간의 유례없는 평화를 일궈낸 일등 공신은, 유엔도 아니고 평화유지군도 아닙니다. 강력한 힘의 균형도 물론 아닙니다. 다름 아닌 새로운 땅,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입니다. 


인류는 좁은 영토를 두고 싸우기보다 새로운 곳을 개척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월등한 지적 능력은 이를 가능하게 해 주었죠.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을 지나, 시베리아와 극지방을 지나 신대륙으로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바다 건너 호주까지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원래 살던 곳을 고수하던 인류의 사촌 침팬지는 600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여전히 좁은 밀림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며 살아갑니다. 


물론 위의 비유는 과학적으로는 조금 잘못된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어느 날 다같이 모여서, ‘우리 이제 그만 싸우고, 차라리 신대륙을 찾아 나서자’고 합의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새로운 적소를 찾는 편이 훨씬 높은 적합도를 보였을 것이라고 해야 정확한 말입니다. 어쨌든 인간 정신에는 전쟁을 몰고오는 파괴적 본능도 있지만, 또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창조적 본능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것을 꺼낼 것인지는 우리 선택에 달린 일입니다. 

 

 

에필로그

 

한반도 정세가 요동칩니다.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섣부른 낙관론은 금물입니다. 곰베 침팬지 전쟁을 보고 제인 구달은 크게 낙담합니다. 그녀는 침팬지의 잔혹한 동적 살해 행동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분명 부정할 수 없는 ‘본성의 어두운 측면(dark side)’였죠. 

하지만 우울한 비관론도 피해야 합니다. 호미닌의 역사를 600만년이라고 치면, 인류는 599만년 간 평화롭게 살았고 고작 1만년간 전쟁을 벌이며 싸웠습니다. 침팬지와 구석기인 그리고 현대인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일까요? 평화를 유지하는 힘은 새로운 땅, 즉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입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은 총을 들지 않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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