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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의 곤충記] 시속 50km로 비행하는 나방 박각시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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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06일 17:00 프린트하기

※편집자주. 곤충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지구에 왔고, 지금도 우리보다 더 많은 수가 지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후에도 곤충은 여전히 지구를 지키겠지요. 하지만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과 마음에서 곤충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곤충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신비에서도 멀어졌지요.  그래서 우리 곁 곤충들의 한살이와 생태를 담은 글과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작은 알림이 됐으면 합니다.

 

축포처럼 터지던 봄꽃이 잦아들자 갓 나온 보들보들 연둣빛 잎으로 연구소 산 속은 온통 녹색이다. 꽃 떨어진 자리에 동그랗고 파란 자두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뜨거운 열기를 받아 열매를 맺고, 여무는 여름 시작.

 

자두나무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자두나무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흰독말풀, 두꺼비 기름과 보름달 밤에 날아다니는 갈색 나방(박각시)’을 넣고 걸쭉하게 끓이면 마녀의 비약이 된다. 마녀의 비법 레시피에 빠지지 않는 재료인 박각시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마녀사냥과 함께 출발한 박각시(나방)에 대한 편견은 무작정인 증오였지만 실용성이 뛰어난 백점짜리 생존 전략을 갖고 있는 그들의 치열한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까닭 없이 미워하기에는 너무 훌륭한 놈들이다.

 

대왕박각시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대왕박각시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낮이 점점 따뜻해지고 해는 길어지지만 아직은 해가 짧아 아침, 저녁 찬 기온이 도는 4월초. 어른 엄지손가락보다도 약간 크고 투박하며 굵직한 마디가 있는 번데기에서 대왕박각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박각시 나방의 알(위)과 부화한 알(아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박각시 나방의 알(위)과 부화한 알(아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날개를 달고 짝짓기 한 후 자두나무에 조심스럽게 낳았던 연둣빛 알이 부화 후 애벌레가 벌써 40mm. 고깔 모양머리와 몸통 끝 쪽 톱니 모양 긴 뿔이 달려있어 뿔 달린 벌레 ’Horn worm’으로 통하는 대왕박각시 애벌레가 부지런히 자두나무 잎을 갉아먹고 있다.

 

번데기(위), 대왕박각시 짝짓기(아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번데기(위), 대왕박각시 짝짓기(아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일교차가 심하고 기온이 높지 않을 때이지만 몸이 커 천적에게 유난히 잘 발각될 대왕박각시는 낮은 온도를 선택했다. 발육을 시작하는 문턱인 발육임계온도(Low Temperature Threshold, 9.734°C)가 애호랑나비(8.088°C)에 비해 조금 높지만 생장이나 발육에 필요한 전체 온도의 양인(온량:溫量) 유효적산온도(Thermal constant)는 109.53 Degree Day로 이른 봄에 출현하는 애호랑나비(150.18 DD)보다 약 5일 정도 빨라 가장 이르다.

생체시계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생체시계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천적을 피해 이렇게 빨리 발육을 시작했지만 털 없이 매끈해, 맛있어 보이는 대왕박각시 애벌레에 대한 천적들의 공격은 끊이지 않는다. 머리와 온 몸을 이용해 다가오는 사냥꾼을 집어던지고, 물러나지 않으면 튼튼한 턱과 이빨을 써서 물어 뜯고 체액을 내 뿜는다. 하지만 이 마저도 안 되면 소리로 막아본다.

 

애벌레에는 몸통 옆선을 따라 타원형의 하늘색 점으로 된 9개의 숨구멍이 있다. 숨구멍은 몸 속 조직에 산소를 운반하고 조직에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관이지만 천적을 쫓는 방어 무기로도 사용된다. 사냥꾼이 가까이 오면 가장 큰 제8배마디 숨구멍을 닫았다 열며 그 압력으로 쉭쉭 하는 소리(44~57dB, 5.0~8.7kHz)를 내어 천적을 놀라게 해 내쫓는다. 사람으로 치면 소곤소곤 대화하는 정도의 낮은 톤이지만 천적에게는 굉음으로 들릴 수 있다.

 

대왕박각시 애벌레 및 제8배마디 숨구멍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대왕박각시 애벌레 및 제8배마디 숨구멍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전자현미경으로 본 숨구멍 0.03mm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전자현미경으로 본 숨구멍 0.03mm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어른벌레가 되면 가장 큰 천적인 박쥐의 공격을 막기 위해 더 많은 무기를 장착한다. 얇고 기다란 앞날개와 작고 둥근 뒷날개를 하나로 이어주는 ‘날개가시’라는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박각시는 시속 50km 이상으로 날 수 있는 비행의 명수다. 매처럼 빨라 ‘Hawkmoth’로 불리는 박각시를 따라 올 생물은 별로 없다.

 

날개가시 그림(위), 날개가시 사진(아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날개가시 그림(위), 날개가시 사진(아래)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빠른 날개 짓과 함께 몸통을 덮고 있는 기름 성분의 털은 박쥐의 초음파를 흡수해 레이더에 걸리지 않게 도와주는 또 다른 무기이다. 그러나 이런 무기만으로 박쥐를 막아낼 수는 없다. 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박쥐의 초음파 공격을 받게 되면 이를 교란시키는 놀라운 방법을 실행한다. 숨을 모아 내 쉬면서 만들어내는 애벌레 숨구멍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생식기 파악판(Genital valve)을 마찰시켜 만들어 낸 초음파(53.8 ± 15.2kHz)로 박쥐의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든다.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생식기 파악판(Genital valve) 2.5mm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생식기 파악판(Genital valve) 2.5mm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생식기 파악판 마찰 원리(그림)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생식기 파악판 마찰 원리(그림)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초음파 분석 - 2015. Kawahara, A. Y. and Barber, J. R.제공
초음파 분석 - 2015. Kawahara, A. Y. and Barber, J. R.제공

 

몸과 날개를 나무 표면에 밀착시켜 자신을 감추는 뛰어난 능력. 엄청난 속도 비행과 업그레이드 된 초음파 그리고 천적을 향해 소리치고 집어던지는 거대하고 당당해 보이는 애벌레. 최대의 크기와 최고의 무기를 장착한 ‘대왕박각시’야말로 대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가!

 

 

참고문헌

-2018. Sugiura Shinji and takanashi Takuma. Hornworm counterattacks: defensive strikes and sound production in response to invertebrate attackers. Bi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123:496-505

-2015. Kawahara, A. Y. and Barber, J. R. Tempo and mode of antibat ultrasound production and sonar jamming in the diverse hawkmoth radia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2(20), 6407-6412 (http://www.pnas.org/content/112/20/6407)

-2014. Kang-Woon Lee, J. R Lee and J. J. Ahn. Temperature effects on development on overwintering Luehdorfia Puziloi(Erschoff) (Lepidoptera: Papilionidae) pupa.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89-89 (http://db.koreascholar.com/article.aspx?code=287261)

-2014. Kang-Woon Lee, D. J. Lee and J. J. Ahn. Temperature-dependent development of overwintering Sericinus montela Gray (Lepidoptera:Papilionidae) pupae and its validation. Journal of Asia-Pacific Entomology. 17: 445-449

-2012. Kang-Woon Lee et al. Temperature effects on development of overwintering Papilio xuthus Linnaeus (Lepidoptera: Papilionidae) pupae. Korean Society of Applied Entomology. p145-145 (http://db.koreascholar.com/article.aspx?code=289036)

-2010. Bura Veronica L., Rohwer Vanya G., Martin Paul R., and Yack Jayne E. Whistling in caterpillars(Amorpha juglandis, Bombycoidea): sound-producing mechanism and function. The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14:30-37

-2016. 이강운. 캐터필러Ⅰ. 도서출판홀로세. p30-30
-2017. 이강운. 캐터필러Ⅱ. 도서출판홀로세. p24-24

 

 

※ 필자소개
이강운 곤충학자 (holoce@hecri.re.kr)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국립인천대학교 매개곤충 융 복합 센터 학술연구 교수. 과학 동아 Knowledge 칼럼 ‘애벌레의 비밀’을 연재했다. 2015년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Ⅰ 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 Ⅰ’(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2016년 캐터필러 Ι, 2017년 캐터필러Ⅱ(도서출판홀로세)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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