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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카리스마는 어떻게 진화해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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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17일 11:00 프린트하기

몇 명의 위대한 사람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오랜 믿음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몇 명의 탁월한 천재, 시대를 앞서나간 지도자, 미래를 내다본 현자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물론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므로,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늘 카리스마 넘치는 초인을 고대해왔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세상을 구원해 줄 위대한 리더입니다. 오늘은 카리스마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인류는 늘 카리스마 넘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를 고대해 왔다. - 사진 GIB 제공
인류는 늘 카리스마 넘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를 고대해 왔다. - 사진 GIB 제공

카리스마

 

원래 카리스마(charisma)라는 말은 기독교 용어입니다. 성령이 내려주는 특별한 은혜 혹은 은사를 일컫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은 얻기 어려운 종교적 능력으로, 예를 들면 예언이나 기적 등을 행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이를 차용하여 사회를 이끄는 인물의 자질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했습니다. 권력자들이 가진 지도력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카리스마는 단지 어떤 사람의 지위나 계급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리스마가 없는 장군도 있을 수 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등병도 가능합니다. 카리스마는 보통 제도적인 권력이 아니라, 내적인 능력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뜻하곤 하죠. 


그래서 카리스마는 진화인류학적 차원에서, 가장 원시적인 권력이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추정하는 단서가 됩니다. 원시 사회는 구조도 단순하고, 계급도 없고, 재산의 차이도 없습니다. 하지만 리더는 있습니다. 리더는 조직을 단단하게 결속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자원을 얻고, 효과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누가 리더가 될까요?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카리스마를 인정받을까요?

 

카리스마는 원래 특별한 은사를 뜻하는 기독교 용어였다. - 위키미디어 제공
카리스마는 원래 특별한 은사를 뜻하는 기독교 용어였다. - 위키미디어 제공

 

 

카리스마의 조건

 

카리스마를 얻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우선 육체적 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이 가장 세다고 해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식하게’ 힘만 센 경우, 카리스마는 오히려 낮아집니다. 나이는 어떨까요? 흔히 연장자는 집단 내 지혜로운 조언자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연장자라고 해서, 반드시 카리스마가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카리스마는 흔히 성인기 초반의 개체에 부여되곤 합니다. 


재산도 카리스마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흔히 카리스마는 부의 축적을 용이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 역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명성이나 지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리스마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죠. 혈통이나 가문은 카리스마와 다소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작은 조건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태조 이성계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아돌프 히틀러 등의 가문은 그리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리스마는 일종의 성격입니다. 진화의학자 앤소니 스티븐슨과 존 프라이스는 카리스마가 바로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내적 신념과 미래에 대한 확신 등의 심리적 특성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카리스마는 종종 괴팍한 믿음, 과대 사고와 나란히 나타나죠. 물론 세상에 숱하게 널린 괴짜 중에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단 분리 가설을 제시한 진화정신의학자 존 스코트 프라이스. 그는 카리스마형 성격이 집단의 분리를 촉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다수준 선택 가설에 의거하고 있으며 실증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 johnprice 제공
집단 분리 가설을 제시한 진화정신의학자 존 스코트 프라이스. 그는 카리스마형 성격이 집단의 분리를 촉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다수준 선택 가설에 의거하고 있으며 실증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 johnprice 제공

 

 

카리스마의 진화

 

삶과 종교가 구분되지 않던 시절,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는 곧 집단의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적 리더였습니다. 샤먼이나 족장이죠. 이들은 집단 내의 갈등을 조율하고, 미례를 예측하고, 일관된 목표를 제시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흔히 신탁을 받아 집단의 구성원에게 내려주는데, 사실 신이 정말로 내려준 계시가 아니라 본인의 생각이죠. 다만 본인도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사기꾼과 다른 점입니다. 


스티븐슨과 프라이스는 이들이 기존의 집단을 분리하여 새 집단을 결성하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집단 분리 가설이라고 하죠. 사실 척박하고 험난한 원시 생태 환경에서,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지도도 없고, 먼저 가본 사람의 경험담도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지간하면 그냥 원래 살던 곳에 눌러 사는 편이 안전합니다. 


카리스마적 인물의 말은 큰 권위가 있습니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 새로운 곳에 대한 희망, 미래에 대한 과대한 생각을 가지고, 과감하게 고향을 떠납니다. 추종자가 그를 따릅니다. 아마 상당수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와 추종자 무리는 사막이나 바다 한 가운데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운 좋게 젖과 꿀이 흐르는 빈 땅을 발견하면, 대박이 터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책에 남게 되죠.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모세는 이집트 땅을 떠나, 40년을 헤맨 끝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보게 된다. - 위키미디어 제공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모세는 이집트 땅을 떠나, 40년을 헤맨 끝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보게 된다. - 위키미디어 제공

 

 

카리스마의 위험성

 

사실 카리스마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원동력은 맹목적으로 추종자입니다. 인간은 늘 불안해 하기 때문에, ‘확신에 찬 호언장담’에 기대고 싶어합니다. 설령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한번 추종을 시작하면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추종자가 늘어나면 집단 내 확증 편향이 심해지고, 카리스마형 리더는 거의 신적 존재로 부상하게 되죠. 인류사에서 늘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한 짐 존스 목사는 평등과 자유, 복지, 사회 정의, 인종 차별 반대 등 ‘옳은’ 가치를 지향하는,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고작 몇 명의 신도로 시작했지만 곧 교세를 크게 확장합니다. 모든 신도에게 공평한 대우를 하였고, 그들의 재산을 모두 모아 똑같이 나눠 주었죠. 많은 사람이 모여듭니다. 나중에는 아예 새로운 마을을 만듭니다. 남미 가이아나에 존스타운이라는 마을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 마을은 낙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과도한 육체적 노동과 폭행, 상호 감시 등으로 가득한 지옥이었죠. 1978년 미국에서 조사단이 급파되자, 존스 목사는 모든 신도에게 자살을 명령합니다. 그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상당수의 신도들은 아이에게 독약을 먹이고 자신도 차례에 따라 독약을 마십니다. 결국 918명이 자살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25명에 지나지 않았죠. 유명한 인민 사원 집단 자살 사건(Jonestown Massacre)입니다. 


이상한 사이비 교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역사에는 비슷한 사례가 가득합니다. 제 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나 소비에트 연방을 철권 통치한 스탈린은 모두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입니다. 엄청난 수의 추종자를 몰고 다녔죠. 하지만 결과는 아주 비극적이었습니다. 

 

1977년 마틴 루터 킹 인도주의 상을 받는 제임스 존스 목사. 그러나 이듬해 강제 노동과 폭행, 감금 등에 대해 조사를 받자, 그는 918명의 신도와 함께 목숨을 끊는다. - 위키미디어 제공
1977년 마틴 루터 킹 인도주의 상을 받는 제임스 존스 목사. 그러나 이듬해 강제 노동과 폭행, 감금 등에 대해 조사를 받자, 그는 918명의 신도와 함께 목숨을 끊는다. - 위키미디어 제공

 

 

에필로그

 

세상이 혼란스럽고 살기가 힘들수록, 우리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메시아를 고대합니다. 하지만 전술한 것처럼 카리스마는 단지 하나의 성격에 불과합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거침없는 행동, 범상치 않은 생각 등의 카리스마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모두를 매혹시키지만, 그 믿음과 생각, 행동이 정말 ‘바람직하고 합리적인지’ 여부와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대개는 정반대죠.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육체적 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씨름을 잘하니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정신적 카리스마도 마찬가지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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