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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공감은 항상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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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4일 15:00 프린트하기

공감 능력은 인류가 가진 독특하고, 위대한 정신 작용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류 외에는 공감 능력을 가진 동물이 거의 없습니다. 침팬지 등의 대형 유인원이나 돌고래, 코끼리, 개 등이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있지만, 인류가 가진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며 즉각적이며 정확한 공감 능력에 비견하기 어렵습니다. 인류가 신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선물입니다. 


하지만 공감 능력이 늘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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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란

 

공감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뜻으로 쓰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부터, 깊은 마음의 교감까지 층위와 대상이 다양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공감을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너무 개괄적인 정의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겠습니다. 


공감(sympathy or empathy)은 상호주관적인 공명(intersubjective resonance)입니다. 타인에 대한 다소 낮은 수준의 ‘동정(sympathy)’과 깊은 수준으로 상대의 마음에 들어가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공감(empathy)’으로 나누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 ‘공감’가는 주장은 아닙니다. 공감은 타인의 주관적 느낌을 자신 안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자신이 주체로서 경험하는 느낌과는 구분되는 어떤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GI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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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공감을 감정이입(einfuehlung)라고 했는데, 이는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리프스의 미학 이론과 일맥상통합니다. ‘미적 쾌감은 자기 자신의 활동을 대상 속에서 향유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감정이입이죠. 그의 저작, ‘집단심리학과 자아의 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Ego)’에 의하면, 흉내를 통한 동일시가 공감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다른 이의 정신 세계를 향해, 그 모든 지향을 받아들이는 기전’이자, ‘타인 속에서 우리의 에고가 낯설게 느끼는 어떤 것을 이해할 때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을 보고 그 슬픔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의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독특한 심적 상태죠. 

 

공감은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느끼는 인류의 독특한 정신 능력이다. - pixabay 제공
공감은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느끼는 인류의 독특한 정신 능력이다. - pixabay 제공

 

 

비정상적 공감 능력과 세일럼 재판

 

공감 능력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요?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려면 반드시 필요한 정신 작용인데다가, 공감을 못하는 사람은 왠지 감정이 없는 이기적인 냉혈한을 연상시키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공감 능력이 너무 과도하면 곤란합니다. 과도하게 공감 능력이 발달하면 피암시성이 커지게 됩니다. 타인으로부터 느낀 공감적 사고와 정서를 자신의 것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서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고, 타인의 주장에 곧잘 세뇌됩니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스 주, 세일럼 마을에 살던 한 목사의 딸과 조카가 발작을 시작합니다. 몇 주가 지나도 통 차도가 없자, 목사는 병의 원인이 마녀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의 딸과 조카는 하녀 한 명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하녀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다른 여자도 공범이라며 자백합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이 마녀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마녀 재판은 마을 전체로 확산됩니다. 어떤 사람은 가짜로 발작을 한 뒤 무고한 사람을 지목하는 방법으로 평소 원한을 해결하려고 했죠. 터무니없는 방법이었지만 통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발작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쉽게 공감했고, 그들이 지목한 마녀 혹은 사탄을 법정에 넘겼습니다. 고문을 받던 용의자들은 허위 자백을 하기도 했고, 일부는 정말 자신이 ‘마녀’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세일럼 재판. 발작 증상을 보이는 소녀의 지목에 따라, 185명이 마녀 혹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몰려 체포되었고,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세일럼 재판. 발작 증상을 보이는 소녀의 지목에 따라, 185명이 마녀 혹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몰려 체포되었고,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됩니다. 증거는 오직 소녀의 증언과 고문을 통한 자백이었습니다. 무거운 돌로 몸을 짓누르는 고문을 했는데, 80세의 나이에 기소된 한 노인은 돌에 눌려 죽었죠. 평소 평판이 좋던 인물들도 체포됩니다. 이들을 보고 소녀들이 발작 증상을 보였기 때문이죠. 변호에 나선 인물도 체포됩니다. 악마의 사주를 받은 혐의였죠. 결국 총 185명이 체포되고, 남성 6명, 여성 13명이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모두 25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마녀로 몰린 여인의 네 살 된 딸도 같이 감옥에 갇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감의 역설

 

공감에 기반한 연대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자양분으로 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같이 나눈 사람에게 더 큰 공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여길수록, 고통받는 자에게 더 쉽게 공감하고 연대하게 됩니다. 17세기 이민 초기의 미국 사회가 바로 그랬죠. 이들은 척박한 땅을 어렵게 개척하며 마을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삶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강력한 공감의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한 시기에 연대하던 이들은, 행복한 시기에는 분열하게 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힘을 합쳐 성공하는 순간, 각자의 공적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각자는 자기가 공동의 성공에 기여한 유일한 공로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서히 소외감에 빠진다’라고 했습니다. 강력한 공감에 기반한 공동체 내에 소외감과 박탈감의 불이 붙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집단 반응을 유발합니다. 따뜻한 공감은 증오의 공감으로, 협력의 연대는 분열의 연대로 바뀌게 됩니다. 


세일럼 마을 사람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신대륙 개척 초기의 숱한 고통을 함께 겪으며 살아온 마을 사람에게, 사탄의 공격을 받아 발작하는 소녀의 고통은 절대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녀를 공격하는 마녀를 응징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으로는) 정의롭고 옳은 일이었겠죠. 하지만 결국 네 살 먹은 아기부터 여든 살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됩니다. 

 

세일럼 사건은 지역 사회 일대를 초토화시켰지만,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마녀에게 저주받은 어린 소녀의 고통, 식민지 개척지의 어려운 현실, 기독교적 공유 문화 등의 여러 상황은, 사회지도층이나 지식인도 세일럼 재판에 잘못 공감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이를 비판하는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었던 인크리즈 매더의 글, <악령에 대한 양심적 사례>가 발표되면서 점차 사태가 수그러들지만 이미 19명이 교수형을 당하고, 6명이 옥사한 뒤였다. - 위키미디어 제공
세일럼 사건은 지역 사회 일대를 초토화시켰지만,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마녀에게 저주받은 어린 소녀의 고통, 식민지 개척지의 어려운 현실, 기독교적 공유 문화 등의 여러 상황은, 사회지도층이나 지식인도 세일럼 재판에 잘못 공감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이를 비판하는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었던 인크리즈 매더의 글, <악령에 대한 양심적 사례>가 발표되면서 점차 사태가 수그러들지만 이미 19명이 교수형을 당하고, 6명이 옥사한 뒤였다. - 위키미디어 제공

게다가 마녀를 지목한 소녀 중 한 명은 푸트넘 가문이었는데, 포터 가문과 토지 문제로 분쟁 중이었습니다. 포터 가문에서만 무려 46명의 마녀가 지목된 이유입니다.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절제가 결여된 과도한 공감 능력은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더 깊이 공감되는 쪽의 역성을 들게 합니다.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은 아주 소중한 인간성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더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고 하여, 그 것이 더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공감의 역설입니다. 

 

 

에필로그

 

세일럼 재판 당시 이에 우려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세일럼 주민 중 일부는 다른 마을로 피신했고, 많은 사람은 지목을 당할까 싶어 숨 죽이며 살았습니다. 마녀 재판의 열풍은 세일럼 마을을 넘어 매사추세스 주 전역으로 퍼져나가려고 했죠. 

당시 하버드 대학의 인크리스 매더 총장은 세일럼 마을의 재판을 비판하는 글을 용감하게 발표합니다. 결국 주 총독이 직접 재판 중지를 명령하고, 이듬해 감옥에 갇힌 사람을 석방하면서 사건이 모두 종결됩니다. 당시 매더 총장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한 명의 무고한 사람에게 잘못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열 명의 진짜 마녀들을 풀어주는 것이 더 낫다” 

 

 

 

※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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