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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천재에게 좋은 인간성까지 바라지는 마세요”...아인슈타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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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19일 11:58 프린트하기

“나는 중국인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모르겠다... 중국 여성에게 도대체 무슨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서 아이들을 많이 낳는지 모르겠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여행 일기에서

 

그들(아스페르거 증후군 어린이들)은 전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도대체 없다. 이는 의식적인 거만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부족을 반영한다.
-한스 아스페르거

 

이 장애(아스페르거 증후군)의 핵심에는 환경과의 접촉 결핍이 있다. 그러나 정확히 이런 점이 추상화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공간적 거리를 창조해낸다. 가장 긍정적인 경우 이는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낳을 수 있다.
- 한스 아스페르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

지난주 동아일보에 ‘두 얼굴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아인슈타인이 1922~23년 아시아를 여행하며 남긴 일기가 최근 책으로 출간됐는데,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비하 발언이 곳곳에 등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출판 작업을 맡은 지브 로렌크란츠 미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조차도 “아인슈타인의 일기 중 상당한 내용이 불쾌했다. 특히 중국 관련 내용이 그랬다. 이는 위대한 인도주의자로 비쳤던 그의 이미지와 상반된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여행 일기를 소개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사설에서 “아인슈타인은 공감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과학자였다”라며 거들었다.

 

 

여행 일기 속 인종차별 발언 구설 올라

 

기사를 읽으며 필자는 사람들이 위대한 인물을 떠올릴 때 ‘위대한’의 범위를 너무 확대해서 적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해당 분야에서 아주 대단한, 즉 위대한 업적을 낳은 사람을 인간성을 포함해 전 영역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는 어린 시절 읽은, 위대한 사람들의 삶 전체를 미화한 ‘위인전’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사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의 인간성이 별로 좋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많다. 물론 사람이 악하다는 뜻은 아니고 가디언의 사설처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최근 아인슈타인의 여행 일기를 정리한 책이 출간되면서 그의 인종차별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1922년 아인슈타인이 일본에 갔을 때 삽화가 이페이 오카모토가 그린 캐리커처로 당시 43세임에도 노인처럼 묘사돼 있다. - AIP 제공
최근 아인슈타인의 여행 일기를 정리한 책이 출간되면서 그의 인종차별 발언이 구설에 올랐다. 1922년 아인슈타인이 일본에 갔을 때 삽화가 이페이 오카모토가 그린 캐리커처로 당시 43세임에도 노인처럼 묘사돼 있다. - AIP 제공

어찌 보면 자기를 돌보는 것보다도 일(연구)을 우선한 인물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목욕 에피소드를 보자. 하루는 아인슈타인은 욕조에 더운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일반상대성이론의 수식화에 골몰하다 보니 세 시간이 지났고 물은 이미 차가워졌어도 그냥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 남을 배려하기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다.

 

1946년 아인슈타인이 미국 링컨대 연설에서 “인종차별은 백인의 질병이다”라고 발언했다지만 이는 원론적인 언급 아닐까. 물론 유태인을 차별하는 히틀러 나치당을 피해 1933년 미국으로 이민 간 체험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역시 인간성(사회성)은 별로였던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내 주변의 러시아 사람들을 보면 참을 수 없이 경멸스럽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러시아인을 더욱 사랑한다”는 취지(정확한 인용은 아님)의 말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이 공개석상에서 한 발언 역시 개별 인간이 아니라 인류라는 개념을 두고 한 말 아닐까. 아인슈타인은 위선자(두 얼굴)가 아니라 다만 가슴이 ‘차가운’ 사람이었을 뿐이다.

 

사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아인슈타인이 유별난 것도 아니다. 필자는 과학자 전기를 즐겨 읽는데, 대체적인 소감은 ‘생각보다 업적은 더 위대했고 인간성은 더 별로였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을 넘어 부재, 즉 ‘제로’인 대표적인 과학자로는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추앙받는 아이작 뉴턴과 반물질을 제안한 폴 디랙(공교롭게도 둘 다 영국인이다)이 떠오르는데 특히 디랙이 경악스럽다. 오죽하면 2009년 나온 전기 제목이 ‘가장 이상한 사람(The Strangest Man(국내 미번역)’일까. 디랙은 평생 단 한 번 눈물을 흘렸는데, 1955년 아인슈타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라고 한다!

 

사실 이런 현상이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만 보이는 건 아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1984년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해진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음악가 살리에리는 “저런 천박한 영혼이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할 수 있을까”라며 절규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우아함의 정수(精髓)이지만 정작 모차르트의 정신세계는 속물 그 자체라는 말이다. 필자는 예술가 전기도 꽤 읽어봤는데, 역시 대체로 ‘생각보다 업적은 더 위대했고 인간성은 더 별로였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처럼 남 생각을 별로 안 하는 사람들이 ‘인생을 바쳐’ 창조해낸 과학과 공학, 예술의 성과물들이 오늘날 인류문화를 만들었다는 게 또한 아이러니다. 물론 인류의 위대한 창조물들이 모두 이런 사람들의 작품은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특정 부분에서 관련 종사자들도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은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일까. 둘 다 재능, 즉 선천적인 능력으로 하나가 뛰어나면 다른 하나는 떨어지는 관계라도 된다는 말인가.

 

 

자폐 유전자의 양성선택

 

놀랍게도 유전학과 뇌과학 연구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하고 있다. 즉 대인관계가 서툴러 사회성이 많이 부족한 경우를 ‘자폐 성향’이라고 부르는데, 과학이나 예술에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의 경우 사회성이 떨어지는 개체는 도태돼야 할 것 같지만 사람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비율로 존재하는 건 그 대가로 얻은 이런 비범한 재능 덕분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2월 학술지 ‘플로스 유전학’에는 대규모 게놈 데이터 분석 결과 자폐스펙트럼장애와 관련된 유전자 가운데 일부가 양성선택됐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란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로, 보통 정신지체를 수반하는 자폐증에서 언어나 인지 측면은 별문제가 없는 아스페르거(아스퍼거) 증후군이나 서번트 증후군까지 폭이 넓다. 양성선택(positive selection)이란 어떤 유전자에 변이가 생겼을 때 뭔가 이점이 있기에 솎아지지 않고 선택돼 인구집단에서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현상이다.

 

GIB 제공
GIB 제공

즉 자폐 성향을 일으키는 여러 유전자형 가운데 어떤 경우는 심각한 자폐증을 유발해 솎아질 가능성이 높지만(이런 사람은 자손을 보지 못할 확률이 높으므로) 몇몇 유전자는 변이형인 사람들이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면이 있어 많은 자손을 둘 수 있었기 때문에 솎아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유전형은 어떤 이점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유전자들을 개별적으로 들여다보면 변이가 생겼을 때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쳐 인지능력이 높아지고 공간 지각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집중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도의 집중력(주변 상황 무시)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즉 인지를 위해 감성을 희생한 결과가 자폐 성향으로, 이게 지나쳐 인지까지 무너진 게 자폐증이라고 볼 수 있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를 그린 사람은 자폐 성향?
 
학술지 ‘열린 고고학’ 5월호에는 구석기시대 벽화가 현생인류의 진화에서 자폐 성향 유전형이 양성선택됐음을 보여주는 한 예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실렸다.

 

지난 2월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유럽 스페인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게 확실시되는(적어도 6만4000년 전 것으로 현생인류가 진출하기 전이므로) 동굴벽화에 대한 연구결과가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당시 언론은 ‘네안데르탈인은 예술가였다’라며 대서특필했지만, 막상 그림을 보면 뭘 그린 건지도 모를 정도라 좀 실망스럽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고 얼마 안 된 3만여 년 전 현생인류가 프랑스 쇼베동굴에 남긴 벽화를 보면 너무나 생동감 있는 사실적 묘사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잘 그리긴 했지만 나도 미술을 배우면 저 정도는...’이라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라. 멀리서나마 사자를 보고 그린 것도 아니고 컴컴한 동굴에서 횃불을 들고 오직 기억에 의존해 그린 그림이다!

 

왼쪽은 적어도 6만40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그래픽 처리한 것이고(원 그림은 알아보기도 어렵다) 오른쪽은 3만여 년 전 현생인류가 남긴 사자 그림으로 사실적 묘사의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기억만으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비범한 재능이다. - ‘사이언스’ / 위키피디아 제공
왼쪽은 적어도 6만40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을 그래픽 처리한 것이고(원 그림은 알아보기도 어렵다) 오른쪽은 3만여 년 전 현생인류가 남긴 사자 그림으로 사실적 묘사의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기억만으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비범한 재능이다. - ‘사이언스’ / 위키피디아 제공

그림 솜씨가 꽤 좋은 사람이라도 기억만으로 이처럼 디테일이 살아 있는 사실적 묘사를 하기란 특정 대상을 오랫동안 반복해 그리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영국 요크대 고고학과 페니 스피킨스 교수 등 저자들은 논문에서 자폐 성향인 사람이 이 벽화를 그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폐 성향인 사람이 보이는 고도의 인지능력 가운데 하나가 사진 같은 시각 기억력과 대상을 3차원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공간 지각력이다. 이들은 특히 디테일에 강하고 여러 장면을 겹쳐 그리는데도 능하다. 연구자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실적 묘사의 재능을 조사했는데, 자폐 성향인 아이들 가운데서는 놀라운 재능을 지닌 경우가 드물지 않았지만, 뇌 발달이 보통인 아이들 153명 가운데서는 이들에 비교할 수준에 이른 경우가 한 명도 없었다. 평범한 아이들은 그림을 배워도, 그림을 배우지 않은 이런 재능 있는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3만 년 전 유럽의 동굴벽화가 자폐 성향인 사람의 작품이고 따라서 이때 이미 인류는 이런 사람들을 우대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재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예술 활동’에 전념하도록 배려해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시 인류는 이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깨달음에 이른 것일까.

 

연구자들은 당시 인류가 생존하는데 이런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고위도 지역에서 빙하기가 찾아와 추운 날씨가 지속되면서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 그린 사실적 그림과 이런 사람들이 만든 정교한 사냥도구가 살아남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운명을 가른 건 우리가 의사소통 능력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는 말이다.

 

코르크마개뽑이와 꽃이 담긴 꽃병을 그린 그림으로 왼쪽은 사실적 묘사에 재능을 타고난 자폐 성향인 열 살 아이의 그림이고 오른쪽은 그런 재능이 없는 같은 나이 아이의 그림이다. 왼쪽 코르크마개뽑이 그림을 보면 3차원 구조에 대한 이해가 명쾌함을 알 수 있다. - ‘자폐 및 발달장애 저널’ 제공
코르크마개뽑이와 꽃이 담긴 꽃병을 그린 그림으로 왼쪽은 사실적 묘사에 재능을 타고난 자폐 성향인 열 살 아이의 그림이고 오른쪽은 그런 재능이 없는 같은 나이 아이의 그림이다. 왼쪽 코르크마개뽑이 그림을 보면 3차원 구조에 대한 이해가 명쾌함을 알 수 있다. - ‘자폐 및 발달장애 저널’ 제공

 

 

뉴턴과 디랙은 아스페르거 증후군인 듯

 

설사 아인슈타인이 ‘공감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과학자였더라고 이를 자폐 성향까지 연결하는 건 좀 억지 아닐까.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자폐 성향을 지녔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지난 2003년 영국의 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아인슈타인과 뉴턴이 자폐 성향을 보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두 사람이 아스페르거 증후군의 증상을 보인다는 케임브리지대의 자폐 전문가 사이먼 배런-코헨 교수의 주장을 소개했다.

 

즉 아스페르거 증후군의 3대 증상인 특정 대상에 대한 강박적인 관심, 사회적 관계의 어려움, 의사소통에서의 문제를 봤을 때 뉴턴은 아스페르거 증후군의 전형적인 예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하인이 두고 간 식사를 다음 날 아침까지 손도 대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강의가 엉망이었고(학생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사적인 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역시 대표적인 증상인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성향도 있었는데, 심지어 다른 사람이 앉았던 의자에 앉는 것도 불편해했다. 그는 훗날 물리학 지식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타인과의 ‘간접적인 접촉’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소아과의사 한스 아스페르거는 1944년 발표한 대학교수 자격 논문에서 지능은 정상이나 타인의 감정과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결핍된 아이들의 사례를 보고했다. 아스페르거가 한 어린이에게 심리테스트를 하는 모습이다. 아스페르거가 74세로 사망하고 1년이 지난 1981년 영국의 자폐증 전문의 로나 윙은 이런 증상을 ‘아스페르거 증후군’이란 이름으로 자폐스펙트럼에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오스트리아 빈의 소아과의사 한스 아스페르거는 1944년 발표한 대학교수 자격 논문에서 지능은 정상이나 타인의 감정과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결핍된 아이들의 사례를 보고했다. 아스페르거가 한 어린이에게 심리테스트를 하는 모습이다. 아스페르거가 74세로 사망하고 1년이 지난 1981년 영국의 자폐증 전문의 로나 윙은 이런 증상을 ‘아스페르거 증후군’이란 이름으로 자폐스펙트럼에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예전에 내가 의자에 앉아 나보다 ‘먼저 앉아 있던 사람’이 의자에 남겨놓은 열의 흔적을 느꼈을 때, 나는 약간 찜찜함을 느끼곤 했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완전히 사라졌네. 왜냐하면 열은 완전히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물리학이 내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라네.”

 

물론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심리학자도 있다. 무엇보다도 아인슈타인은 유머 감각이 있었는데 이는 자폐 성향과 거리가 먼 특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기자가 “상대성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하자 “난로 위에 있으면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고 미인 옆에 있으면 한 시간이 1분처럼 느껴진다”고 재치있게 답했다. 반면 뉴턴 이상으로 전형적인 아스페르거 증후군을 보인 디랙은 “반물질의 철학적 의미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난 그런 거 모른다. 그저 계산(수학)의 결과일 뿐”이라고 퉁명스럽게 답하며 말을 끊었다.

 

설사 아인슈타인이 자폐 성향이 아니었더라도 10년 넘게 고도로 집중해서 상대성이론 연구를 하다 보니 사회성이 꽤 떨어졌을 것이다. 1944년 아스페르거 증후군 어린이들을 처음 보고한 오스트리아의 소아과 의사 한스 아스페르거는 “사실 완벽하게 정상적인 사람에게서도 외부 세계로부터의 거리를 증대시키는 것이 추상적 사고의 최고치를 얻는 전제 조건인 것 같다”고 쓰고 있다.

 

역시 자폐 성향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는 찰스 다윈은 자서전에서 오랜 연구 생활로 다른 영역에서는 감수성을 잃어버린 자신의 상태를 씁쓸하게 고백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천재들이 삶을 소진해 탄생시킨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식어버린 감성도 따뜻하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단 한 줄의 시도 읽기가 어려워졌다. 최근에 셰익스피어를 읽어보려고 했지만 너무 지루해서 구토가 날 정도였다. 미술과 음악에 대한 취미도 완전히 잃어버렸다. … 내 정신은 온갖 사실을 다 모아놓은 것에서 일반 법칙을 이끌어 내는 일종의 기계가 된 듯하다. …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적어도 매주 한 번은 시와 음악을 즐기는 규칙을 세울 것이다. … 이런 취향을 잃는다는 것은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6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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